이상 징후 사전 파악!
전력설비 담당 주치의
‘ARMOUR’ 개발 성공사례
효성중공업㈜
전기는 2차 산업혁명 이후 사회, 경제, 과학, 문화, 산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인류의 거의 모든 활동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물과 공기 다음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도시와 산업 현장 그리고 각 가정까지 보내오는 과정에서 변전소를 거치면서 전압을 높이거나 낮추어 송전과 배전을 용이하게 해주어야만 한다. 당연히 변전소의 기기와 설비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만 우리는 안정적이고 편리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그동안은 항상 사람이 직접 점검하는 정기적 관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노후 전력 설비가 날로 증가함에 따라 설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수명을 연장해 줄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에 대한 요구가 증가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효성중공업이 40년 전력 사업 노하우로 개발한 변전소 자산관리 솔루션이 주목받고 있다.
전력설비 관리의 잠재적 니즈
전기를 물처럼 필요할 때 어느 곳에서나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그 중요성을 잘 모를 수 있으나 초연결시대인 현재는 물론 미래에는 전기의 안정적 공급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만 하며, 만약 전력 설비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를 일으켜 잠시간이라도 공급에 차질이 생기게 되면 천문학적인 피해를 피할수 없게 된다. 과거에는 전력을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면 이제는 안정적 공급을 위해 사전에 문제 발생을 어떻게 예방하고 관리할 것인가 또한 매우 중요한 숙제가 되었다.
전력설비들은 일반적으로 한 번 설치하면 약 30년 동안 운영된다. 그러는 동안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약 3년마다 정기적으로 사람이 직접 점검해 주고 일정 시기가 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부품이나 모듈을 교체해 주어야만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자동차를 구입해 10년을 잘 타고 싶다면 정기적인 점검과 수리 및 교체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전력설비의 유지관리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기술자들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일정 주기를 기준으로 부품을 교체하는 방식이 지난 수십 년간 보편화된 아날로그적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다.‘동일 부품은 모두 수명이 동일한가?’ 하는 것인데, 자주 운행하는 자동차와 가끔 운행하는 자동차의 부품 수명은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전력설비를 운용하는 고객 입장에서도 사용량과 작동 빈도수에 따라 전력설비에 대한 합리적인 유지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난 과거에는 합리적인 유지관리를 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도 없었거니와 합리적이라 할 만한 부품의 수명 데이터도 확보할 수 없었다. 부품이나 모듈의 수명을 관리하기 위해 서는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데이터가 필요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쉽게 합리적 관리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없었기에 지금까지 아날로그적 방식에 의존해온 것이 다. 이러한 잠재적 니즈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40년 빅데이터를 담아낸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
효성중공업은 1969년 국내 최초로 154kV 초고압 변압기 제작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전력 관련 설비를 개발, 생산, 관리 서비스하는 전문 기업으로 전통적인 제조업이면서 기반산업 중 한 분야를 담당해온 회사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들어서는 지난 40년간 쌓아온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변전소 내 전체 전력설비를 실시간으로 진단하여 이상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인공지능 솔루션 아모르(ARMOUR: Asset Remote Management System for Operational Utility’s Reliability) 개발에 성공하여 2019년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2020년 20주차 IR52 장영실상을 수상하였다.
‘아모르(ARMOUR)’는 소위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인 빅데이터, 인공지능, IoT, ICT,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모두 녹아있는 변전소 자산 관리 솔루션으로, 변전소 내 각종 전력설비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해 주는 전력설비 관리 시스템이다. ‘ARMOUR’를 활용하면 이상 징후를 조기에 파악해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설비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과거의 경쟁이 누가 더 제품을 잘 만들고 어떤 제품이 더 신뢰성이 높은가의 경쟁이었다면, 빅데이터 시대의 경쟁은 누가 더 데이터를 잘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가의 싸움으로 패러다임이 변했다.
변전소 자산관리 솔루션 ARMOUR 개발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효성중공업이 1982년부터 지금까지 40년간 축적한 약 15,000건의 설계 및 제작정보와 고장, 사고, 유지 보수 이력 데이터이다. 오랜 기간 설비의 개발 및 제작, 유지관리를 해오면서 직접 축적한 생생한 빅데이터는 기기의 상태 평가, 수명 예측, 유지 보수 및 교체 의사결정이 가능한 인공지능 기술로 재탄생하였고 여기에 사물인터넷(IoT)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하여 변전소 설비자산을 실시간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 낸 것이다. 효성중공업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독일의 지멘스나 스웨덴의 ABB와 같은 글로벌 경쟁사들도 이미 실시간 관리가 가능한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효성중공업의 ARMOUR는 보다 차별화된 가치에 도전하였다.
그림 1. 설비를 구성하는 여러 개의 모듈별 신뢰도 지수를 통해 고장확률을 계산하는 ARMOUR
첫째, 설비의 건정성 및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건강지표(Health Index)는 인공지능 기술(Gradient Boosting)을 적용하여 예측 정확도가 95% 이상으로 높다는 점이다.
둘째, 최적화 기법(Dynamic, Linear Programming) 을 통해 비용과 성능 목표 관리치에 만족하는 최적의 투자 의사결정 및 유지 보수 관리 전력을 산출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신뢰도 99%의 높은 재현성을 보여준다.
셋째, 가장 중요한 차별화 포인트는 높은 정확도와 재현성으로 인해 전력설비의 사고 및 고장에 따른 리스크 비용을 84% 이상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장복구와 유지 보수 비용 등을 30% 이상 절감할 수 있어 고객사들의 경제적인 운용을 돕는다.
위의 세 가지 차별성의 핵심은 예측 정확도로부터 비롯된다. 예를 들어 경쟁 제품들이 기기 단위로 정보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반면, ARMOUR는 기기를 구성하고 있는 19개의 모듈 상태를 모두 파악하여 고장 확률을 판단한다. 병원에서 전체적인 상태만 보고 진단을 하는 것과 부위별로 19개의 검사 결과를 종합해 정밀진단하는 것과 어느 쪽이 정확한 진단일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라 하더라도 빅데이터의 질과 양에 따라 우리가 얻을수 있는 가치는 달라진다. 효성중공업이 40년간 꼼꼼 하게 기록해온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없었다면 이런 가치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경쟁사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벤치마킹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빅데이터라는 원석이다.
사업 관점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모순 관계
전력설비는 한 번 설치하면 약 30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 수요의 증가에 따라 공급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시장이 포화된 상황에서는 설비 공급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 반면 설비의 유지관리는 폭발적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오랜 기간 지속적인 매출이 발생할 수 있는 시장이다. 전력 설비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비즈니스 모델이 이 두 가지를 축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중 유지관리 시장은 아날로그 방식이 가장 보편화되고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 아날로그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잠재적인 니즈가 발생한 상황이고 보다 능동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전력설비에 있어서도 특히 변전소 설비는 발전소와 달리 사람이 상주하면서 가동하지 않는 무인변전소도 많기 때문에 아날로그적 관리는 분명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디지털적 관리를 필요로 하는 잠재적인 니즈가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적 관리란 과연 무엇인가? 건강 상태를 매일매일 체크할 수 있다면 이상이 생긴 후 병원에 가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자동차를 운행하기 전 육안으로 문제를 파악 하는 것보다 매번 스스로 자가점검할 수 있다면 너무나 편리할 것이다. 전력설비 또한 주기적인 점검과 일정 주기가 되면 기계적으로 부품이나 모듈을 교체하는 방식에 비해 평상시에 실시간으로 점검하여 고장 징후가 발생하는 경우에 한해 교체할 수 있다면 인적, 물적, 시간적 낭비를 줄일 수 있으며 사고 또한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즘 쉽게 접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에 의한 ‘스마트 케어’라 할 수있다. 고객의 가려운 부분을 해결해 주는 스마트 솔루션으로 과거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치이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림 2. 변전소 전력설비의 실시간 진단 및 전 생애 주기 동안 체계적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ARMOUR의 시스템 구성
일정 주기에 따라 점검과 교체를 하던 기존 방식은 매출과 수익을 쉽게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비교적 단순한 사업 모델이라면, 스마트 솔루션은 현재로선 매출과 수익이 쉽게 예상되지 않는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의 위축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20세기의 제조업이 21세기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과정에서 가장 큰 사업적 리스크 중 하나이다. 전통적인 제조업의 기술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큰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데 사업성은 불투명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일 수 있다. 기술적인 진보와 사업적 변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많은 이해관계와 어려움이 상충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효성중공업의 ARMOUR 개발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 빅데이터 시대 성공의 조건을 제시하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기술혁신 과정과 성공 요인
① 과제 기획을 위한 NABC 접근법
ARMOUR 개발을 위한 과제 기획이 처음 시작된 것은 2013년으로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때이다. 당시 전력설비 제조업이면서 유지관리 서비스를 기본 사업으로 하는 효성중공업에서 인공지능 기반 솔루션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 만큼 새로운 기술이자 새로운 사업영역이었다.
정재룡 팀장을 비롯하여 총 7명 인원으로 구성된 개발팀은 인원, 전문가, 자료, 경험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자료조사와 스터디를 끊임없이 이어나갔고, NABC라는 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의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접근법을 사용하여 무려 1년간의 기획 과정을 거쳤다.
NABC란 Needs(고객 요구), Approach(접근 방법), Benefit(이점), Competition(경쟁 관계)의 단순한 항목으로 이루어진 방법론이다. 이를 1년간 거의 2주에 한 번꼴로 검토와 피드백을 받아 재작성을 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린 끝에 과제 계획을 할 수 있도록 승인 받았다. 다시 말하자면 과제 기획에서 계획 단계로 넘어가기까지 1년 동안이나 기획을 한 셈이고, 효성중 공업에서 GOM이라 불리는 목표(Goal)와 일정 계획(Milestone)을 구체적으로 세워 과제계획을 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거의 2년 만인 2014년 말에 비로소 과제에 착수할 수 있었다.
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반드시 기술혁신의 필수요건은 아니지만 좋은 과제를 기획하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화려한 기법이나 멋진 자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있다.
그림 3. 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의 NABC 접근법
② 산학협력 모델(HULab)을 활용한 오픈 이노베이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3년 당시 정재룡 팀장을 비롯한 개발팀원은 7명이었다. 연구개발에 착수하기 에는 전문인력, 개발자금 등 모든 면에 있어서 부족했으며,연구소 대부분의 인력이 전력기기 하드웨어 개발자들이었기 때문에 내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때문에 정재룡 팀장과 팀원들은 자료 수집과 정보를 얻기 위해 학회와 전시회, 외부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기술 트렌드를 익혀야 했으며 부족한 개발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한전의 용역과제나 정부 부처의 R&D 자금을 지원받는 과제를 매해 평균 3개씩 수주하여 진행하였다.
이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효성중공업만의 독특한 산학협력 모델인 Hyosung-University Lab(HULab)이다. HULab의 개념은 지속가능한 전략적 협력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설립된 효성-대학간 공동연구실의 개념으로, 인력구조 고도화 및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하여 대학의 우수 Lab과 협력해 상호 윈-윈하는 효성의 산학협력 모델이다.
2020년 현재 27개의 Lab이 운영 중이며, 이 중 3개의 Lab에서 ARMOUR 개발에 참여하였다. 많은 기업들이 대학과 연구과제를 수행하거나 위탁을 주는 연계활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기업의 성과라는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밀착된 연구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ARMOUR는 하드웨어인 전력기기 및 부품에서부터 IoT, ICT, 빅데이터, 인공지능기술 등이 융합된 제품이다. 7명의 팀원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각 분야의 전문성과 전문 인력 부족 문제를 HULab이라는 훌륭한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을 활용 하여 극복한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이는 앞으로 글로벌 기업들과의 기술경쟁을 위해서는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오픈 이노베이션의 좋은 사례이다.
그림 4. 포스코 스마트 변전소(위)와 SK에너지(아래)의 구축 사례
ARMOUR 개발이 가지는 의의와 향후 전망
2019년 본격적인 런칭을 통해 ARMOUR는 포스코, SK에너지 및 SK에어가스, 모잠비크 전력청 등에 적용하는 실적을 거두었다. 앞으로 전망 또한 밝다. 국내에만 약 2,000여 개의 변전소가 있어 약 1조 원의 잠재시장이 있으며, 해외시장 또한 큰 성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ARMOUR 개발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효성중공업이 내놓은 여러 제품 중 하나의 신제품이라는 것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효성중공업이 지향해야 할 정체성을 결정짓는 이정표 같은 제품이라는 점이다.
효성그룹의 조현준 회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기존 제조업 역시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여 신규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기존의 전력사업 분야에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해 고부가가치 신사업을 육성하고 토털 에너지 솔루션 업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기업의 정체성은 그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의해 결정된다.
ARMOUR 개발이 현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또 한 가지는 플랫폼 기술이라는 점이다. 1차적으로는 변전소 전력설비 관리를 위해 개발되었지만 향후 산업용 중·대형 모터, 에너지저장장치(ESS), Pump, HVDC(초고압 직류 송전 시스템), 스태콤 (STATCOM, 정지형 무효전력 보상장치) 등의 관리로 확대 적용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다양한 산업군에서 스마트 공장(Smart Factory), 스마트 변전소(Smart Substation), 스마트 플랜트(Smart Plant) 등을 구현할 수 있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진정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성공하는 기술혁신 사례가 계속 탄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재룡 팀장
효성중공업㈜
공동 작성/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