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아기상어, 보람 유튜브…
팬덤을 만들 수 있는 R&D를 고민하라
최근 우리나라 콘텐츠 파워는 실로 눈부시게 발전 중이다. 첫 출발은 BTS다. 2013년 데뷔 후 주로 유튜브에서 활동하며 팬덤을 키운 방탄소년단은 명실 공히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보이밴드가 되었다. 모든 데이터가 그것을 입증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21세기 비틀스로 불리며 엄청난 팬덤을 쌓았고 신곡만 발표하면 여전히 전 세계가 열광 중이다. BTS의 성공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따른 혁명의 본질을 보여준다. 혁명은 기존의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새롭게 변화하는 현상이다. BTS는 음악시장에서 자본과 방송이 차지하던 절대 권력을 모두 파괴했다. 그들은 방송이 아닌 유튜브에서 활동했고 그들을 키운 것은 자본이 아니라 팬덤, 즉 아미(ARMY)였다. 그래서 BTS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상징이자 파괴의 신이다.
실제로 방송 권력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KBS는 2019년 1,300억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는 1,0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더 이상 소비자들이 TV를 안 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0명 중 7명 이상이 저녁 7시 이후 가장 많이 보는 매체로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이제 TV는 30%도 보지 않는다. 미디어 소비의 표준이 스마트폰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렇게 인류의 소비 표준은 모든 관점에서 새로운 문명 시대로 진입해버렸다. 이 시대를 필자는 ‘포노 사피 엔스(Phono Sapiens)’ 표준 시대라고 정의한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활용하는 인류가 이제 지구의 표준인류가 되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디어를 보는 것도, 유희를 즐기는 것도, 금융거래도, 음식 소비도, 생필품의 구입도 이제 우리는 인공장기처럼 변해버린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더구나 코로나19가 지구를 덮치면서 비대면 소비생활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심지어 강제로 이 디지털 문명으로 전 인류가 옮겨가는 중이다. 이미 스마트폰 사용자는 52억을 넘어 인류의 70%에 이르렀고 특히 우리나라는 사용자 비율 95%로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산업생태계가 포노 사피엔스를 표준으로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2020년 1월 1일 기준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이끄는 7대 플랫폼(애플, MS,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의 시총 합계는 6,880조 원으로 우리나라 모든 기업 시총 합계의 3배를 넘어섰다. 그리고 코로나19가 터지자 정확히 6개월 만에 무려 1,800조 원이 늘어 이 합계는 8,604조 원이 되었다(2020. 6. 30. 기준).
기업의 주식가격은 투자자가 결정한다. 모든 투자자는 미래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의 주식을 구입한다. 거대 투자금융기업부터 동학개미에 이르기까지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이끌 기업들은 7대 플랫폼, 포노 사피엔스 기업들이라고 선택한 것이다. 문명의 표준이 바뀌었다는 것을 데이터가 입증한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계가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다. R&D도 포노 사피엔스 문명시대에 맞는 혁명적 대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는 한국판 뉴딜 10대 과제를 발표했다. 국민안전 SOC 디지털화, 지능형정부, 데이터댐, 그린 스마트 스쿨, 스마트 의료 인프라, 스마트 그린 모빌리티, 그린 에너지 등 이것만 실현되면 정말 공상 과학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 다 현실이 될 것 같은 멋진 계획이다. 방향도 잘 잡았다. 포노 사피 엔스 시대에 모두 필요한 기술들이다. 문제는 엄청난 R&D 비용이 투자되는 각 분야에서 실제 상용화가 제대로 이루어져 좋은 기업과 일자리가 탄생하고 이를 다시 선순환 시킬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화 성공을 위한 명확한 R&D 투자의 기준이 필요하다. 지금 콘텐츠 산업이 일으키고 있는 시장경제의 변화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등장은 음악과 방송시장만 파괴하고 혁신한 것이 아니다. 이미 유통과 제조업으로까지 혁명의 태풍이 몰아치는 중이다. BTS의 등장은 나비가 일으킨 바람과 같다. 이 나비효과가 무엇을 바꿨는지 살펴보자. 유튜브는 이제 전 세계 인류의 표준 미디어 플랫폼이 되었다. 가장 수입을 많이 올린 유튜버는 8살 미국 꼬마 라이언이다. 라이언의 채널 수입은 2019년 303억 원이었다. 구독자는 2,580만 명. 전체 영상 조회 수는 400억 회를 넘겼다. 당연하게도 아이들 완구를 만드는 사람들은 라이언이 자기 장난감을 소개해 주고 갖고 놀기를 바랄 것이다. 이것이 광고 산업과 유통산업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었다. TV 광고 시장은 2019년 15% 감소한 반면, 모바일 광고시장은 17%나 성장했다. 이미 1조 2천억 원 대 3조 2천억 원으로 거의 3배 차이가 나는데 부침은 어느 때보다 극명해지고 있다.
유통에서도 소셜미디어에 기반한 판매채널이 급격히 성장 중이다. 가장 빠르게 변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왕홍’이라는 개인 방송을 통해 물건을 파는 직업군이 크게 활성화되어 2019년 총매출 100조 원을 넘었다. 중국 전체 온라인 시장의 규모는 1,652조 원인데 그중 3분의 1인 519조 원이 소셜커머스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현상은 우리나라 패션과 뷰티산업 전반의 혁명을 불러오는 중이다. 소셜커머스의 원조 격인 스타일난다의 김소희 대표는 22살 때 동대문에 디지털 스토어를 내고 13년 만에 6천억 원 기업으로 키워 로레알에 매각했다. JM솔루션의 김정웅 대표는 중국 소셜 마켓에서 급성장하며 기업 가치를 1조 5천억 원으로 키워 2019년 포브스가 선정한 대한민국 부자 30위에 이름을 올렸다. 무신사의 조만호 대표도 거래금액 9천억 원을 돌파하며 2조 2천억 원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외에도 AHC(3조 4천억 원), 닥터자르트(2조 원) 등 많은 기업들이 소셜커머스 시장에서 성공신화를 만들고 있다. 이들의 성공 비결도 BTS처럼 자발적 팬덤의 형성이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상품을 경험한 소비자들은 스스로 마케터가 되어 다른 사람한테 권유하고 이 팬덤이 크게 번지면서 이들 기업의 가치를 높인 것이다. 이제 기업의 가치는 열광하는 팬덤의 크기라고 부를만하다. 그러고 보면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7대 플랫폼 모두가 엄청난 팬덤을 기반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기업이다.
BTS의 나비 효과는 방송, 광고, 유통 시장에 태풍으로 번졌고 이제는 제조까지 덮치고 있다. 스타일난다, 닥터자르트, JM솔루션 등을 키운 제조기업은 코스맥스와 콜마 같은 화장품 제조 기술력을 30년간 축적한 기업들이다. 최근 코스맥스는 이러한 유통방식의 변화를 직감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했다. 스타일난다의 김소희 대표처럼 누구나 파워 인플루언서라면 자기 브랜드를 만들 수 있도록 사업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초기 물량에 대한 제한도 없애버렸다. 팬덤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법칙이 제조사의 사업방식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팬덤이 기업의 가치를 얼마나 높이는지는 이미 애플이 보여주고 있다. 7억 명의 아이폰 사용자는 무조건 아이폰을 사는 ‘애플빠’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2019년에는 에어팟 하나로 14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애플의 시총은 1,800조 원이 넘는다. 최근에는 자동차로도 번졌다. 2019년 37만 대의 차를 판 테슬라가 900만 대의 차를 판 토요타(시총 250조 원)를 제치고 시총 300조 원을 돌파하며 세계 1위 자동차 회사가 되었다. 자동차 제작 기술도 아직 미흡한 이 회사는 차가 나오기도 전에 예매에 나서는 광팬들이 애플빠를 닮았다.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테슬라빠가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어떨까. 애플도 거품이다, 테슬라도 거품이라고 폄하만 하는 중이다. 기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기술은 우리 기업들이 훨씬 낫다. 그렇다면 수천만 명의 선택이 틀린 것일까? 아니다. 우리의 상식이 틀린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스스로 팬이 되게 만드는 기술이다. R&D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자. 세계 최초 기술만 적용하면 잘 팔릴 것이라는 생각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상용화된 것이 없다. 고객이 열광하지 않는 기술은 팔리지 않는다. R&D 선정 기준에 과연 ‘고객 감동’이 일어날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산업계의 R&D는 기초과학이 아니다. 먼 미래를 보고 가는 기초과학 연구와 달리 5년 후의 생존이 달린 절실한 투자다.
BTS가 아미를 만들었고, 보람이가 2,500만 명의 구독자를 만들었으며 아기상어가 유튜브 세계 2위 기록인 62억 뷰를 달성했다. 넷플릭스에서 투자해 만든 우리 드라마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중이고, 네이버 웹툰은 만화의 종가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웹툰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콘텐츠의 팬덤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어떤 제품의 팬덤도 만들 수 있다. 이미 화장품과 패션 산업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팬덤이 지배하는 시대, 모든 권력은 소비자의 손끝에서 나온다. 그들 손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R&D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처럼 기술 스펙만 만드는 R&D가 아니라 사용자 경험이 젊은 세대의 팬덤을 일으킬 수 있는지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소비자 중심의 R&D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이 제조기술 강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진정한 도전의 시작이 될 것이다.
글/최재붕 교수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워털루 대학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 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서비스융합디자인대학원 학과장을 겸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시작이라고 정의하면서 융합을 기반으로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엔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