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몸값 치솟는 4차 산업 기술들
대구의 한 의료원 음압병실에서 일하는 김현희 간호사는 “최근 구매한 360도 VR(가상현실) HMD(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병실 폐쇄회로TV(CCTV) 등과 연결된 VR HMD는 국내 한 스타트업이 환자 관리 편의성 증진을 위해 개발한 초기 개발 모델이었는데, 뜻밖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정국으로 실전에 긴급 투입됐다. 이는 개인보호장구가 부족해 의료진들이 감염 위험에 노출됐을 때 큰 성과를 거뒀다. 병실에 들어가지 않아도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특히 의료진이 크게 부족할 때 VR HMD 한 대가 두세 사람 몫을 했다.
코로나19 난세에 치료·방역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과 함께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도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빅데이터, AI는 코로나19를 치료할 약물(약물 재창출)을 찾거나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DNA) 구조를 분석해 신속 진단기기를 개발한다. 이동 통신망은 확진 환자 동선을 신속히 찾는 조력자로 접촉자 최소화에 큰 힘을 보탠다. 로봇은 사람 대신 체온을 재고 광범위한 지역에 방역 활동도 펼치는 등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런 ‘ICT 코벤져스(코로나19와 어벤져스 합성어)’의 영웅적 면면을 들여다본다.
그림 1. 기어VR를 써보는 어르신
출처: 삼성전자
그림 2. 코로나19 의료진을 따라가는 운송 로봇 따르고
VR·AR, 비대면 사회·문화 최고 기대주로 급부상
VR·AR(가상·증강현실) 등의 실감형 미디어 기술은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후 비대면(언택트) 사회·문화가 확대 되면서 몸값이 가장 많이 오른 기술 중에 하나다. 특히 의료시장의 ‘러브콜’이 잇따른다.
먼저 의료 서비스·재활 치료 분야를 보면 부산대병원은 이동통신사 KT와 의료 전문 스타트업 ‘테크빌리지’와 함께 VR 기반 게임형 원격 재활 훈련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뇌 질환 중증 환자가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될 팔·손 부위 마비 증상을 개선, 환자의 일상 회복을 돕는다. 원리는 이렇다. 환자가 VR 기기를 쓰면 눈앞에 펼쳐지는 입체 현실 속에서 망치질, 블록 쌓기 등의 훈련을 한다. 이러면 운동 기능을 담당하는 뇌 신경체계가 자극 받아 환자의 어깨·팔·손 운동력이 점차 향상된다는 설명이다.
수술 현장에도 VR 기술이 접목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조환성 교수팀은 최근 AR 기술로 골종양 수술에 성공했다. 조 교수팀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공학과 홍재성 교수팀과 함께 환자 다리에 발병한 암의 정확한 위치 및 크기를 태블릿 PC에 실시간 AR 기술로 구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수술에 도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등 영상진단 이미지를 통해 확보한 종양의 위치·크기를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종양의 위치 정보가 태블릿 PC에 표시된다. 홍 교수는 “불필요한 절제를 최소화하면서 종양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VR·AR는 나아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제2의 눈’이 되어준다. 삼성전자 사내벤처 C랩이 개발한 ‘릴루미노’가 대표적이다. 저시력자가 ‘갤럭시 기어 VR’을 쓰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받아들인 영상이 AR 데이터로 변환돼 시각 장애인들이 쉽게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 C랩 관계자는 “굴절 장애, 고도근시를 겪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유용하다”고 말했다. 외상 후 증후군 등 정신과 심리치료에도 활용된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삼성전자와 함께 VR 클리닉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VR 치료를 통한 호전율은 80~90%에 달한다.
일각에선 VR·AR 기술이 교육·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새로운 ‘부스터’가 되어 줄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 7월 방탄소년단(BTS)의 온라인 공연 ‘방방콘 더 라이브’(이하 방방콘)가 라이브 스트리밍 콘서트 최다 시청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랐다. 당시 100여 개국에서 최대 75만 6,000여 명이 동시 접속한 것으로 집계 됐다.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 공연 15회와 맞먹는 수치다. 이 콘서트에 VR·AR 기술을 입히면 팬들에게 더 큰 만족도를 제공함과 동시에 연예기획사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코로나19 확산 막는 통신기술
‘문 앞에 위생물품과 안내문을 배부할 예정입니다.’ 직장인 김혹시 씨(가명)는 퇴근 후 이 같은 자가격리 통지 문자를 받았다. 코로나19 확진자와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것으로 파악돼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됐다. 방역 당국은 김 씨의 접촉 여부를 김 씨가 직접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이동통신 위치추적 기술이 포함된 ‘코로나19 역학조사지원시스템’ 감시망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된 가운데 전 세계가 ‘K방역’에 주목한다.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주요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방역 노하우·기술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애초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의 확진자 동선 파악은 여러 기관을 거치는 방식으로 수일이 걸렸다. 예컨대 질본이 A씨를 확진자로 판별하면 경찰청에 A씨의 동선 확인을 요청하고 경찰청은 이동통신사에 A씨 동선 자료를 요구한다. 이런 과정을 단순화한 것이 ‘역학조사 지원시스템’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연계 방식으로 자동화해 수일이 걸리던 처리 과정을 10분 내외로 줄였다”고 전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도 함께 제공돼 확진자 감염 경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ICT 방역 시스템은 앞으로 글로벌 전염병 대응 공조 시스템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KT가 국제사회에 제안했던 GEPP(감염병 확산방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GEPP는 휴대전화 로밍 데이터와 기지국 이동정보를 검역에 활용해 전염병 확산을 막자는 게 골자다.
KT 관계자는 “휴대전화 로밍 데이터를 보면 발병지 혹은 오염 지역을 다녀왔는지 알 수 있다”며 “전염병 지역으로 출국하는 여행객들에겐 전염병 정보와 예방수칙을 알리고 입국 시 능동 감시 대상자를 추려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본은 KT·SK텔레콤·LG유플러스 등 이동 통신 3사와 손잡고 이동통신 로밍 및 기지국 정보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방역시스템을 구축·운영하고 있다. 평시엔 개인정보 이용에 동의한 사람에게만 감염병 위험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모든 이용자의 방문정보를 파악해 서비스를 하게 된다. 이 시스템을 통해 질본은 발생국 경유자 검역률을 2017년 36.5%에서 지난해 90.4%로 끌어올렸다.
그림 3. 블루오션로보틱스 uvd로봇
그림 4. 살균로봇 유버
인간 대신 코로나19戰 속으로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체온을 재는 건 사람이 아닌 로봇이 한다. 스마트 방역케어로봇 ‘테미’의 몫이다. 열화상카메라로 체온을 측정하고 이상 징후가 보이면 “발열 체크하라”는 음성과 함께 가까운 선별진료소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테미의 입사 동기인 ‘따르고(트위니)’는 운송로봇이다. 오염된 의료폐기물을 의료진 대신 나르는 업무를 맡고 있다. 코로나19 중증환자들이 입원한 음압병실에서 UV LED(자외선 발광다이오드)를 쏘며 방역 활동도 펼친다.
로봇은 의료 현장에서 부족한 일손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의사·간호사 대신 투입돼 의료진의 안전을 지킨다. 이장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혁신전략연구소장은 “코로나19가 미래 로봇 기술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장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덴마크의 블루오션로보틱스는 살균용 자외선을 쪼여주는 병원용 멸균 로봇(UVD) 수백 대를 중국에 공급했다. 병원 곳곳을 다니며 단파장 자외선(UV)으로 병실·수술실을 소독한다. 회사 측은 “자외선을 이용한 소독 작업은 사람에게 위험한 일”이라며 “로봇이 소독하는 동안 의료진은 환자를 돌보는 데 더 신경쓸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제2차 감염을 막기 위한 ‘검체 채취 로봇’도 있다. 중국 공학연구기관인 중국공정원 연구진은 우주정거장에서 쓰는 로봇팔 기술을 응용해 환자의 코·입에 면봉을 넣어 타액·가 래를 채취하는 로봇팔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로봇팔과 내시경을 장착한 이 로봇을 선별진료소 등에 투입하면 채취 과정에서 의료진의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 학계와 관련 산업계는 향후 새 감염병 출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에 따른 의료인력 부족 사태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다양한 로봇기술들을 개발·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윤철 서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는 “의료기관의 의료 플랫폼은 하나의 거대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변할 것이며, 여러 가지 검사·수술 대부분은 컴퓨터와 로봇이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 5. 삼성전자 시각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
출처: 삼성전자
그림 6. 휴림로봇 ‘테미’
AI 모니터링으로 사각지대 최소화
서울시 120다산콜재단은 최근 AI 모니터링 콜시스템을 도입했다. 코로나19 모니터링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는 자가격리자 등을 대상으로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발열·기침·오한 여부 등을 체크하고 데이터를 관리한다. 서울시는 AI 콜을 통해 코로나19 모니터링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성남시도 네이버가 제공한 AI기반 음성봇 서비스로 관내 능동감시자를 대상으로 하루 2차례 자동으로 전화해 발열과 기침 등 호흡기 증상유무를 확인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코로나19 방역 현장 곳곳에 AI가 투입돼 있다. 기계학습으로 방대한 빅데이터를 빠르게 습득하고 이를 통해 코로나 확산을 사전에 파악한다.
캐나다의 블루닷은 AI 알고리즘을 통해 전 세계 뉴스와 항공권 판매, 인구통계학 자료, 기후데이터 등 100가지 데이터세트를 분석,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세계보건기구(WHO)보다 앞선 지난해 말 처음 감지했다. 발병위험이 높은 도시를 예측하기도 했다. 프랑스 소르본대 연구팀도 아프리카 대륙의 코로나19 발병 위험을 분석하는 모델을 개발, WHO가 인력·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집행하도록 돕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 확산세와 역학조사에 AI를 응용하는 시도는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구글의 딥마인드는 알파폴드(AlphaFold) AI시스템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단백질 구조 예측결과를 내놓고, 이를 전 세계 제약·의료업계에 제공했다. 중국 검색포털 바이두도 바이러스 구조를 예측한 AI알고리즘 ‘리니어폴드(Linearfold)’를 개발했고, IBM도 슈퍼컴퓨터인 ‘서밋’으로 기존 허가된 의약품에서 새로운 약효를 찾는 약물 재창출 연구를 시도해 7개 약물을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로 추천했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코로나 19의 장기화·재유행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과학기술·ICT 활용·지원제도를 보다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류준영 기자
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카이스트(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석사, 한양대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디넷코리아, 이데일리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머니투데이에서 과학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