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실패'를 용인하는 도전적 R&D

 


 

 

“2020년부터는 각 연구자가 1년에 3편의 논문만 출판할 수있도록 재정 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함”, “원천기술 혁신을 독려하기 위해 연구자의 논문 수, 직함, 학력, 수상 경력을 평가하지 않고 대표 논문과 연구업적의 과학적 수준 및 학술적 평가에 기반하여 연구비를 지원함”

 


그림 1. China bans cash rewards for publishing papers
출처: Nature, News 2020. 2. 28.


 

이 기사는 지난 2월 28일 ‘Nature’ 뉴스(그림 1)에 중국 과학 기술부가 발표한 내용과 3월 초에 중국 5개 부처가 중국 기초 연구 분야 원천기술 연구 성과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발표한 기초연구 강화 방안(출처: 중국과학기술 격주간동향,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에서 발췌한 것이다. 중국 과학기술 연구자는 9천여 개가 넘는 SCI 저널에 2019년에 45만 건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불과 10년 전인 2009년에 12만 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매년 폭발적인 증가세다. 중국은 이에 멈추지 않고 또 한 번의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과학기술 연구자들을 평가할 때 ‘발표한 논문 수’를 중요시하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 R&D 본연의 목표를 달성하는 혁신을 위해 과감하게 2020년부터 과학기술 평가시스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 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연구자의 논문 수보다는 논문의 과학적 수월성, 과학과 사회 난제 해결 등에 대한 기여도 및 임팩트에 중점을 두고 연구의 질적 성과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응용형 기초연구 프로젝트의 경우, 경제, 사회 발전 및 국가 안보 등을 포함한 주요 분야의 과학적 난제 해결 능력과 응용 가치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혹자는 “이것이 무슨 혁신이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 연구 현장에 주는 메시지는 나비효과처럼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이미 미국의 최상위권 모 대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종신직 교수가 1년에 임팩트가 큰 논문 한 편(대략 30여 페이지 리뷰)만 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래디컬(Radical, 근본적 변화) 혁신은 의외로 작은 것부터 시작될 수 있다. 2018년 설립 60주년(그림 2)을 맞은 DARPA(미국 국방고등연구기획국)는 그동안 탁월한 성과 창출과 DARPA Model로 불리는 독특한 R&D 운영방식으로 래디컬 혁신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혁신 모델에 따라 에너지부(ARPA-E: DOE), 국토안보부(HSARPA), 국가정보국(IARPA: CIA) 등 미국의 다수 부처에서 DARPA를 벤치마킹한 R&D 운영관리기관을 설립하였고, EU도 DARPA와 상응한 기구를 설치하려는 시도가 있을 정도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혁신시대보다 앞서 DARPA는 새로운 변혁적(Transformative) 기술을 발굴하여 드론과 정밀유도 군수품 등의 개발로 국가방위를 혁신하고, 휴대용 GPS 수신기,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자율 주행 자동차, 인터넷 전신 ARPANET 발명과 인터넷 상용화로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놀라운 역할을 했다.
 


그림 2. 설립 60주년을 맞은 DARPA(미국 국방고등연구기획국)

 


 


그러면 DARPA의 목표 지향적이고 과감한 R&D 혁신 방식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MIT의 본빌리안(William Bonvillian) 교수는 R&D 혁신 강의에서 미국과학재단(NSF)과 비교하여 확실하게 차별화되어 있는 DARPA 혁신모델을 강조하였다. 그중의 하나는 연구주제 선별과 평가에 있어 DARPA의 PM(Project Manager)이 독특하게 ‘4개의 No’를 가지고 있다는 점으로 비교하였다. 즉 연구과제와 연구자 선발에 있어서 1) No Peer Review, 2) No Stage Gate, 3) No Review Panel, 4) No Consensus Decision Making의 4가지 원칙이다. 본 빌리안 교수는 바로 “이러한 차별화 전략과 실행이 60여 년이 지난 현재, DARPA의 성공 사례를 창출한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또한 HIGH RISK, HIGH REWARD R&D(고위험, 최고 보상 연구개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래디컬 DARPA 혁신 방식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수 있는 자료로 스탠퍼드 대학에서 ‘래디컬 기술 혁신으로 비전의 가치를 창출한 DARPA’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타미 칼튼(Tammy Carleton)의 논문을 추천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확산에 따른 시장의 변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초연결 지능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산업구조의 대변혁이 요구되는 지금, 한국 과학계는 ‘혁신적 리더’로 도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정부의 높은 연구개발 투자에도 불구하고 질적 성과는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 이유가 연구자 집단이 기술 혁신보다는 손쉬운 연구 프로젝트 따기에 급급한 이익집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제 과학기술이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연구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창의적 난제 해결 연구에 도전하는 연구 환경이 필요하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어도 “도전 자체로 가치 있는 실패”를 용인하는 선진국형 연구문화에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결과로 진정한 과학기술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성창모 특임교수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기술정책대학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석사 학위, 미국 리하이대학에서 신소재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올해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과학난제도전 지원단장으로 변혁적 R&D 혁신을 통한 선진국형 성과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