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새로운 문명의 시작
제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문명의 교체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상징한다고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 해당 분야 기술은 아직 산업화 단계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그러나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 현상을 우리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정의한다. 문명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 문명의 표준이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간)’라는 신인류로 교체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혁명의 본질은 문명교체 현상이다.
2007년 신화처럼 등장한 아이폰은 불과 십여 년 만에 문명의 표준을 바꾸는 변화를 창조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계 인구는 40억 명을 넘었고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 95%가 사용 중이다. 2020년 1월 1일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대 기업을 보면, 무려 7개가 포노 사피엔스를 표준으로 하는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창조한 기업 애플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인공장기처럼 쓰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한 기업들로 과거의 문명체계를 모두 바꿔버린 기업들이기도 하다. 이들 기업에 축적된 자본만 무려 6천 8백조 원을 넘었고, 애플의 시가 총액만으로도 우리나라 코스피 상장기업의 시가 총액 합계를 넘은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다시 말해 세계의 투자 자본은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창조하고 리드하는 기업에 모두 투자 중이며 그 엄청난 자본은 당연하게도 세계 경제를 거대한 변화와 충격으로 바꾸고 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슬기롭게 생존하려면 나는, 또 우리 회사는 얼마나 포노 사피엔스라는 새로운 표준 문명에 적응하고 변화하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이끄는 GAFA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대표기업을 GAFA라고 한다.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의 스콧 갤러웨이 교수는 ‘The Four’라는 저서를 통해 Google, Apple, Facebook, Amazon이 인류를 어떻게 바꿨는지 기술하고 있다. 애플은 욕망을 자극해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도록 했고 이후 구글은 인간의 정보습득체계를 바꿔 지식의 영역과 전달체계를 바꿔버렸다. 페이스북은 모든 SNS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인류의 인간관계가 SNS를 통해 완전히 달라졌음을 암시한다. 아마존은 인간이 소비하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바로 스마트폰을 열어 구매할 수 있게 만들어 소비의 표준방식을 바꾼 기업이다. 결국 GAFA를 쓰는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을 마치 인공장기처럼 활용하며,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소비하는 것도 모두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생활하는 새로운 인류를 의미한다. 즉, 디지털 플랫폼에서 생활하는 인류가 바로 포노 사피엔스이고 이것이 이제 새로운 우리 인류의 표준문명이라는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명백한 사실이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문명교체 현상
2018년 12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63.5%가 이미 디지털 뱅킹을 활용 중이다. 비록 20~40대의 모바일 뱅킹 이용 비율이 거의 80%에 이르는 반면, 50대 50%, 60대 13%, 70대 6%로 세대 간의 차이가 극심하지만, 이제 우리나라 뱅킹의 표준은 모바일 뱅킹이다. 2018년 실시된 어느 조사에서 ‘저녁 7시 이후 어떤 미디어를 시청하십니까?’라는 설문에 응답자의 57%가 유튜브라고 응답했고, TV를 시청한다는 사람들은 27%에 불과했다. 이것도 50대 이후가 대부분이었다. 유통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유통은 매년 18~20%씩 성장 중이고 오프라인 유통은 5%씩 계속 감소하고 있다. 대형마트들이 2019년 사상 첫 적자를 기록했고, 롯데그룹의 경우 200개의 대형매장을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이 모든 데이터는 사람들의 생활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 중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문명이 교체할 때 적응이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표준문명이 바뀐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서는 더욱 중요하다. 10년 내에 인류 문명의 모든 표준이 바뀐다. 마치 구한말 시대가 서구 대륙 문명의 등장으로 갑작스럽게 끝나버렸듯이. 혁명시대 생존의 선결 조건은 내 마음속 문명을 ‘포노 사피엔스’ 문명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에게도 마찬가지다.
문명교체기의 저항은 자연스러운 현상
새로운 문명이 도래하면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저항은 당연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버다. 2009년 등장한 우버는 택시라는 문명을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맞춰 새롭게 정의한 서비스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컸지만 결국 새로운 인류의 선택을 받아 이제 우버(또는 우버 유사 서비스)는 세계 문명의 표준이 되었다. 현재 우버 서비스를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 일본,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이렇게 딱 다섯 나라뿐이다. 그 이유는 한번 서비스의 편리함을 경험한 고객들이 이 새로운 서비스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단 한 번의 압도적인 경험으로도 30년간 익숙했던 서비스를 순식간에 지워버린다. 모바일 뱅킹의 편리함을 경험한 고객이 은행지점 방문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우버, 타다, 배달의민족 등 새로운 플랫폼의 성장을 직면할 때마다 과거의 잣대를 들이대며 비판하고 저항하고 있다. 문명교체에 대한 저항은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정해진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도태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생존하려면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코로나19로 강제로 경험하게 된 포노 사피엔스 문명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쇼크’ 이후 우리의 생활도 완전히 달라졌다. 가능한 재택근무를 하고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으며, 모든 소비도 온라인 기반으로 전환되었다. ‘언택트(Untact) 문명’이라는 새로운 현상은 우리를 강제로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포노 사피엔스 생활공간으로 이동시켜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는 이 강제적 경험으로 생존 가능성이 높은 것이 어느 쪽인지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쇼크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들이 더 발전 가능성이 높을까? 언택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이미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중국, 미국, 일본 등은 시범사업 중이던 원격진료 서비스를 확대해서 활용 중이다. 의료진과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다. 향후 인류의 표준 헬스케어 서비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학교는 모두 온라인 플랫폼 구축 및 활용에 난리법석이다. 관련 업체들은 주문이 폭주하고 교사들도 새로운 교육방식에 적응하느라 분주하다. 이 문명에 적응하는 학교와 교사가 각광받게 될 것은 명백하다. 온라인 유통업체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이미 아마존은 10만 명을 특별 고용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우리나라도 폭주하는 주문에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언택트 서비스를 준비해왔던 모든 기업들에게는 이번 사태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된 셈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재택근무를 위한 클라우드 서비스, 화상회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람들은 큰 어려움 없이 자기 역량을 발휘하고 있지만, 디지털 문명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결국 팬데믹 쇼크는 포노 사피엔스 문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사례를 통해 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략
글로벌 기업들은 두 가지 관점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진행 중이다. 우선 소비시장을 포노 사피엔스 문명 표준으로 설정하고 사업 전략을 수정한다. 대표적인 기업이 아마존과 넷플릭스다. 아마존은 도서 판매로 시작해 세계 최고의 유통 플랫폼이 되었다. 아마존과 넷플릭스는 포노 사피엔스들이 무엇을 중시하고 좋아하는지에 집중했고, 사업의 확장도 TV 광고가 아니라 SNS 문명을 기반으로 소비자 스스로 팬덤이 되도록 유도해 만들어냈다. 그것이 1억 5천만 명이 넘는 유료 정기 구독자를 만들어낸 비결이다. 기술적으로는 두 기업 모두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을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우리 기업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활용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 중심의 사고, 즉 포노 사피엔스 표준문명에 근간을 두고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표준 소비자를 포노 사피엔스로 전환하고 사업모델 자체를 바꾸는 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임무다.
두 번째는 소비자 소비방식 변화에 따라 회사의 조직과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구글, 페이스북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다. 구글은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국가 간 경계 없이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진행한다. 표준 업무 자체가 클라우드 기반이고 화상회의가 원칙이다. 그래서 크롬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통합된 브라우저를 만들 수 있었고 결국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밀어내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중심으로 모든 조직의 의사결정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기반으로 진행한다. 소비자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의 힘을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계 최고의 플랫폼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티아 나델라 CEO가 등장하면서 과거의 관습을 버리고 클라우드 시대로 진입하며 재도약한 기업이다. 윈도우즈와 오피스 판매에 안주해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장을 맡은 나델라는 클라우드 서비스로의 전환을 위해 조직과 KPI를 모조리 바꾸며 혁신을 유도했고, 그 결과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 세계 1위를 차지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두 번째 업무는 조직과 인재를 포노 사피엔스 문명 방식으로 모두 전환하는 것이다.
소상공인으로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이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생존을 위해 강제로 가야할 길이 되어버렸다. 그 출발은 내 마음의 문명 표준을 바꾸는 일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공부하기 이전에 내 마음속의 표준, 우리 회사의 표준은 과연 어느 문명을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표준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기술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미래는 정해졌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 역변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글/ 최재붕 교수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