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과학

COVID-19와 싸우는 세 가지 방법

 

‘세계 9위.’ 2019년 말 발표된 ‘세계안전보건지수’에 나타난 한국의 성적표다. 세계안전보건지수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과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함께 개발해 발표한 국가별 감염병 대응 체계 순위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감지 및 보고, 신속대응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그리고 반년가량 지난 현재, 전 세계를 휩쓰는 COVID-19 사태에서 한국의 감염병 대응 역량은 재평가 받고 있다.

 


 

팬더믹 시국을 돌파하게 한 원동력, 한국식 방역의 비결

그림1. 경기도 고양시에 설치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신속하고 광범위한 검사는 한국식 방역 모델의 상징이 됐다. ©고양시


 

한국은 봉쇄령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COVID-19 확산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처럼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한국식 방역’은 대규모 감염병에 대응하는 새로운 모델로 주목 받으며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다. 특히 세계 각국이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선거를 미루거나 집권세력의 권한을 강화하는 와중에 치러진 4월 15일 총선은 한국식 방역의 성과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한국식 방역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일상생활과 방역의 조화’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공격적이고 광범위한 검사에 있다. COVID-19 확산 초기 단계부터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감염 의심 단계에 있는 단순접촉자까지 적극적으로 검사해 왔다. 공격적인 검사는 확진자 숫자를 단기간에 크게 늘렸지만 이를 통해 2차, 3차 감염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질병의 확산세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외신에서 한국의 대규모 검사에 주목한 이유는 검사의 종류에도 있다. 일반적으로 광범위한 검사를 할 때는 적용이 간편하고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검사를 사용한다. 언론에서 흔히 ‘간이검진키트’라고 부르는 항체를 이용한 검사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전문 장비가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정확도가 높은 ‘분자진단’ 방법을 초기부터 사용해 왔다. 정확도 높은 진단으로 확진자를 신속하게 가려내고 광범위한 역학조사를 병행해 확산경로를 세밀하게 통제해 온 것이다.

이처럼 감염병과의 ‘전선’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설정함으로써 ‘후방’에 해당하는 절대다수 국민의 일상생활을 평소와 다름없이 지켜낼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4월 15일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다시 한번 입증됐다.

 

간단하지만 부정확한 항체검사

그림2. 항체검사는 혈액을 이용해 빠르고 간편하게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정확성이 낮고 잠복기 감염자를 찾아내기 어렵다.


 

항체 검사의 원리는 임신진단 방법과 유사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체는 병원체의 침입을 막기 위해 면역체계를 가동한다. 우선 염증반응을 일으켜 바이러스의 활성을 억제하고, 면역을 관장하는 림프구가 바이러스의 정보를 파악해 항체를 생성한다. 생성된 항체는 바이러스와 생화학적으로 결합해서 바이러스가 몸의 세포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고 백혈구나 대식세포와 같은 ‘포식자’가 바이러스를 먹어 치우기 좋게 한다. 일종의 맞춤형 수갑이나 포승줄인 셈이다.

이처럼 병원체가 침입하면 항체가 거의 반드시 생성되므로 COVID-19에 대응하는 항체가 있는지 검사하면 감염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 항체검사법이다. 항체와 쉽게 결합하는 물질을 부착시킨 검진키트에 검체를 넣으면 10분 이내에 항체가 있는지 확인 가능하다. 항체가 검출되면 이미 COVID-19에 감염된 적이 있어서 면역력을 보유했다는 뜻이다.

항체검사는 간편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긴 경우 감염된 상태에서도 항체가 생성되지 않아 항체검사에 ‘음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잠복기에서도 타인에게 전염은 가능하므로 항체검사만 사용한다면 방역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셈이다. 잠복기 문제가 아니라도 항체검사의 정확성은 낮은 편이다. 바이러스가 몸에 침입해도 사람에 따라 항체 생성이 느리거나 아예 제대로 생성되지 않을 수 있고, 항체가 생성됐더라도 검진 키트에서 항체를 제대로 검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간이 임신 테스터의 정확도가 그리 높지 않아 실제 임신 여부를 판별하려면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래서 항체를 이용한 신속 검사는 전염병 확산 단계에서 정밀검사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무증상 확진자, 음성 전환 뒤 항체가 생성된 환자를 가려내는 정도에만 사용한다. 항체가 검출된 환자는 다시 감염될 가능성이 매우 낮아져서 방역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으므로 방역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유용하다.

 

정확하지만 번거로운 분자검사

그림3. PCR을 통한 분자검사 방법 ©매일경제


 

스크리닝을 거쳐서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검체에는 정확도가 더 높은 ‘분자검사’를 적용한다. 바이러스에게만 있는 특정 유전자 조각이 검체에 존재하는지 판별하는 검사다. 바이러스의 생활사는 독특하다. 숙주가 감염됐다고 해서 바이러스 자체가 통째로 숙주 세포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단백질로 이루어진 껍데기는 숙주 세포 바깥에 둔 채, 유전물질만 세포에 주입한다. 숙주 세포에 들어간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은 숙주 유전자인 DNA의 특정 부분을 자르고 그 자리에 끼어들어간다. 숙주는 바이러스가 끼워 넣은 유전정보를 자신의 유전정보로 착각해서 열심히 복제하고 발현시킨다. 따라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는 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반드시 남으며, 이 유전정보가 있는지 검사하면 높은 정확도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분자검사에서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남긴 흔적을 검출한다. 검체에서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검출됐다면 검사 대상이 해당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세포에 남은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양이 워낙 적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수준의 검사결과를 낼 만큼 양을 늘려야 한다. 다행히 인류에게는 PCR(중합효소 연쇄 반응)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다. 검사할 세포의 유전자와 함께 유전자를 복제하는 효소를 넣어서 유전자가 스스로 복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PCR 과정은 조금 복잡하다. 효소와 유전자를 섞는다고 반응이 저절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유전자를 복제하려면 온도를 높여 이중나선으로 단단하게 결합된 DNA를 단일 사슬로 분리되도록 해서 유전정보를 담은 염기서열이 노출돼야 한다. 염기서열이 드러나면 이번에는 온도를 낮춰서 복제를 시작하는 출발점 역할을 하는 ‘프라이머’를 DNA 사슬에 결합시켜야 한다. 이후에는 다시 온도를 높여서 Taq과 같은 DNA 중합효소가 프라이머에서 시작해서 염기서열을 그대로 복제해 새로운 DNA를 만들게 한다. 이 과정을 n번 반복하면 2n개 만큼의 유전물질이 복제된다. 검진 목적의 PCR은 보통 40번 반복하는데 여기에만 6시간가량 소요된다.

한편 PCR의 각 단계는 정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DNA 분리 단계에서는 94도, 프라이머 부착 단계에서는 55도, DNA 합성 단계에서는 72도를 유지하는 것이 최적 조건이다. 단계마다 정확한 온도를 신속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정교한 장비가 필요하므로 PCR은 검사 현장에서 바로 수행하기 어렵다. 반드시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춘 실험실이 있어야 하고,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분자검사를 시행하려면 전문 연구시설과 함께 만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림4. RT-PCR 절차. 증폭과 확인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EURORealTime Analysis Software


 

그렇다면 현재 한국에서는 어떻게 검체 채취 후 6시간 만에 결과를 낼 수 있었을까? COVID-19 검사에 활용하는 PCR이 ‘실시간’ 검사인 RT(Real-Time Reverse Transcription) PCR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바이러스 감염 분자진단검사는 PCR로 유전자를 증폭한 후 이를 두 단계 과정을 거쳐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RT PCR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만 존재하는 유전자 두 개를 PCR로 증폭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분석을 진행한다. 검사하려는 유전자 염기서열에 부착하는 프라이머를 넣고 이로부터 생성된 유전자 조각이 PCR 과정 동안 얼마나 검출되는지 모니터링하는 방법이다. 이를 이용하면 한 번의 검사로 최소 3시간이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PCR 검사로는 이론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최소 시간이다.

 

한국식 방역을 넘어서

그림 5. 현재 기존 검사방법의 단점을 보완한 다양한 COVID-19 진단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국내 기업에서도 항체검사의 정확성을 높인 검사키트를 개발했다. ©셀트리온


 

결국 COVID-19 검사는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부정확하더라도 빠르게 검사결과를 내 의심환자를 분류할 것인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가려낼 것인가. 한국식 방역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더라도 정확한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가려내는 데 중점을 둔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가 방역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장비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분자검사라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문제는 한국식 방역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는 어려운 모델이라는 것이다. 한국식 방역의 두 축은 탄탄한 PCR 인프라와 확진자에 대한 투명한 정보다. 한국이 바이오 분야 인력을 충분히 양성하지 못했거나 관련 생산 인프라가 부족했다면 하루에 2만 건 가까운 검사를 소화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감한 개인정보인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는 데 대해 사회적인 공감대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투명한 역학조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독일이나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해 여러 국가가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에 자문해서 유사한 방역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한국 수준의 신속성과 투명성을 달성한 경우는 많지 않다.

다행히 최근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진자를 가려내는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항체검사의 정확도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국내 제약사는 항체검사와 방식은 같지만, 항체 자체가 아니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만 있는 단백질을 검출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항체검사와 원리는 동일하므로 빠르고 간편하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바이러스의 유무를 직접 판별한다는 점에서 항체검사보다 높은 정확도를 기대할 수 있다.

유전자 편집에 사용하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진단법도 개발 중이다. 이 방법은 DNA가 아니라 숙주 세포 속에 있는 RNA를 검사 대상으로 활용한다. 바이러스가 숙주의 DNA에 끼워 넣은 유전정보가 세포 속에서 발현되는 RNA에 그대로 전사된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RNA를 절단하는 ‘CAS12’ 유전자가위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RNA 염기서열을 찾아가는 가이드를 부착해서 세포 속 RNA로부터 해당 서열을 찾는다. 해당 서열을 찾아내서 CAS12가 작동하면 형광물질이 방출돼서 양성임을 알려준다. 이 방법의 장점은 DNA PCR처럼 정교한 온도 조절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RNA는 DNA보다 결합력이 약해서 분해하기 위해 90도 이상의 온도로 높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자검사의 높은 정확도는 유지하면서 검사장비를 간소화할 수 있다.

이들 새로운 방법은 곧 임상시험을 거쳐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방역 체계에 투입하려면 아직 많은 테스트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빠르고 정확한 검사가 가능해진다면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를 맞아 인류 공동의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물론, 경쟁국 대비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 왔던 국내 바이오 산업 역량도 크게 신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글/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