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

혁신의 아이콘 다이슨의
'날개없는 비상'

 

선풍기, 청소기, 헤어드라이어 등 어느 집에 가더라도 있을 법한 생활가전제품을 어떻게 하면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익숙하게 사용하는 다수의 생활가전제품은 이미 완성형 기술로 더는 혁신할 부분이 없어 보인다. 산업디자이너였던 제임스 다이슨은 기존 생활가전제품이 지니고 있던 익숙하지만 불편했던 요소를 과감하게 없애거나 바꾸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불편함의 이유를 찾다

선풍기의 날개를 없앨 수 있을까? 오랫동안 선풍기에 달린 날개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핵심 부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날개는 자칫하면 부상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작동 중 소음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특히 날개가 차지하는 부피 때문에 공간을 많이 할애해야 했으며, 아무리 디자인을 개선해도 기존 형태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이슨은 선풍기의 날개를 아예 없애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영국의 전자회사인 다이슨을 창업한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은 불편함에서 혁신을 찾고자 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먼지봉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백리스(bagless) 타입 진공청소기를 개발했다. 그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불편함을 그냥 넘겨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9년에 영국의 한 청소기 제조사의 제품으로 집을 청소하던 제임스 다이슨은 청소를 하면 할수록 청소기의 흡입력이 떨어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흡입한 먼지가 먼지봉투의 구멍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다이슨은 이 문제에 무려 5년 동안 집중했다. 그러다 나무를 가공하는 제재소에서 공기 회전을 통해 공기와 톱밥을 분리하는 장면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이슨이 채택한 싸이클론(Cyclone)은 청소기가 흡입한 공기와 먼지를 원심력을 활용해 공기는 배출하고 먼지는 먼지통으로 보내는 기술이다. 5,127개의 시제품을 제작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제임스 다이슨은 1984년 세계 최초로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발명했다. 이후 많은 기업이 이 청소기의 영향을 받아 백리스 타입 청소기를 선보였다. 기존 생활가전 시장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한 것이다.

이후에도 다이슨은 기존 생활가전의 한계에 주목해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였다. 2009년에 출시한 날개 없는 선풍기는 비행기의 제트엔진과 비행기 날개의 원리에서 착안했다. 작으면서도 단순한 구조의 선풍기는 기존 선풍기보다 매우 높은 가격에도 인기를 끌었다. 날개가 없어 안전사고 위험이 덜한 데다 바람의 세기도 균일했다.


 

 

디자이너의 심미안과
엔지니어의 기술력

1947년에 영국에서 태어난 제임스 다이슨은 전자업계에서는 드물게 산업디자이너 출신의 창업자다.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근무하며 고중량 화물을 빠르게 옮길 수 있는 고속 상륙선 설계 업무를 통해 엔지니어링에 대한 감을 익혔다. 직장생활 4년 동안 경험을 쌓은 그는 과감하게 창업에 나서 1974년에 전 직장동료와 의기투합해 ‘커크-다이슨’을 설립한다. 정원이 많은 영국에서 이들이 선보인 정원용 손수레는 기대 이상으로 잘 팔렸다. 이 제품으로 제임스 다이슨은 1977년 ‘빌딩 디자인 이노베이션’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모방 제품이 시장에 풀려 이들이 만든 제품이 판매량이 늘어나지 않았고, 이에 제임스 다이슨은 신제품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제임스 다이슨은 산업디자이너 출신답게 기능성과 심미성을 두루 갖춘 제품들을 선보였다. 흔히 ‘디자인’이라고 하면 ‘제품 외관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이는 실제와 다르다. 제품 본연의 기능성이 떨어진다면, 외관이 아무리 근사해도 그 제품의 가치는 높을 수 없다. 다이슨에서 출시한 제품들이 높은 가격에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이유다.

제임스 다이슨은 “좋은 디자인은 어떻게 생겼는가가 아닌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고려할 때 나온다(Good design is about how something works, not just how it looks.)”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다이슨의 디자인 철학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편함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속에서 소비자의 욕구를 확인하며,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결합한 디자인으로 제품 본연의 핵심 기능에 집중하는 것이다.


 

 

경력보다 발상을 실현할 인재 영입

이를 위해 제임스 다이슨은 회사에 ‘디자인연구개발센터(RDD, Research Design and Development)’를 개설하고 직원의 3분의 1가량을 디자인 엔지니어로 충원했다. 다이슨의 디자인 설계를 책임지는 디자인 엔지니어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산업디자인은 물론 기계공학이나 유체공학, 소프트웨어, 화학, 미생물학 등 얼핏 생활가전제품 디자인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분야의 전공자들도 많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충전하는 또 하나의 비결은 젊은 인재 영입이다. 제임스 다이슨은 대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을 적극적으로 발탁하고 있다.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으나, 젊은 인재의 색다른 접근방법과 발상 그리고 열정에 더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실제로 현재 다이슨에서 근무하는 디자인 엔지니어의 평균 연령은 만26세다.

더불어 제임스 다이슨은 ‘제임스 다이슨 재단(James Dyson Foundation)’을 설립해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에 재능을 지닌 인재들을 발굴하는 국제대회인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James Dyson Award)’를 개최하고 있다. 우승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재정 지원을 받는다. 다이슨은 재정 지원을 할 뿐, 저작권과 판매권 등 해당 아이디어에 대한 모든 권리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지원은 제임스 다이슨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처음 선보였을 때, 동업자의 반응은 냉담했고 생산해줄 회사를 찾기까지의 과정도 어려움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생활가전제품에서 혁신을 이룬 다이슨의 최근 관심사는 자동차였다.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냄새와 연기가 나는 내연 엔진 대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전기차 개발에 나선 것. 아직은 성공보다 실패에 가깝게 보이지만, 제임스 다이슨은 새로운 혁신 제품 발명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 않고 있다. 그의 첫 자서전 제목은 「계속해서 실패하라」다. 과거 5,126번의 실패 끝에 세계 최초로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들었던 것처럼, 어쩌면 현재의 실패는 성공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기획/ 편집실
글/ 정라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