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바꾼 전염병
10~13세기 동안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던 제노바는 흑해 무 역의 이권을 재빠르게 확보하면서 크게 번성했다. 크림반도는 그 전진기지였다. 제노바인은 이 지역을 지배하던 킵차크 칸국 과 협력 관계를 이어가며 반도 남쪽 해안에 정착해 번영을 누렸 다. 그러나 제노바의 확장은 유럽에 새로운 병원체가 유입되는 경로가 되기도 했다. 킵차크 칸국에는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에 서 전파된 괴질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크림반도의 제노바인이 상선을 타고 지중해 곳곳을 누비면서 괴질도 함께 옮긴 것이다.
풍요로움의 역설, 구대륙을 바꾼 흑사병
괴질은 크림 반도에서 감염자가 발생한 1347년 이후, 불과 1년 사이에 유럽 대륙 전역으로 전파됐다. 검은 부종 때문에 ‘흑사병’이라고 불린 이 괴질은 1351년 잦아들 때까지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연구자에 따라 추정치가 다르지만 희생자의 수는 대략 7,500만 명에서 2억 명 사이, 당시 유럽 인구의 30~50%에 해당하는 규모다.
<©Anton Koberger, 1493>
그림 1. 흑사병을 묘사한 15세기의 판화. 흑사병 이후 유럽인의 정신 세계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CDC/Dr. Pratt>
그림 2. 흑사병의 매개체인 동양 쥐벼룩(Xenopsylla cheopis). 14세기 에는 쥐벼룩이 흑사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유럽 의 도시는 쥐가 쉽게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이라 흑사병이 창궐 하기에 유리했다.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일할 사람이 줄어들자 중세 유럽을 떠받 치던 상업과 장원경제가 불과 3년 사이에 마비됐다. 피해는 구 대륙 전반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인구의 40%가 희생되며 강성하던 원나라가 급속히 멸망했으며 중앙아시아와 몽골 지역에서 상인으로서 번성하던 네스토리우스교 공동체 들은 완전히 ‘증발’해버렸다. 지중해 무역의 주요 거점인 이집트 도 인구의 1/3이 사망하면서 무역중심지 지위를 상실했다. 중 세의 사회와 국제질서는 사실상 붕괴했다.
흑사병이 불과 5년이 되지 않는 동안 중세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병과 당시의 환경이 전염병 피해를 내기 좋은 특성을 고루 갖췄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치사율이 높은 질병 은 일단 증상이 발현하면 몸을 극도로 쇠약하게 해서 숙주의 이동이 어려워지므로 전염이 제한된다. 그런데 흑사병은 치사 율이 높음에도 감염 후 2주 가량의 잠복기를 두고 증상이 나타 난다. 이 기간 동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보균자가 사망하면 시 신이 새로운 진원지가 되어 다시 질병을 퍼뜨린다. 당시 번성하 던 상업과 도시도 중요한 원인이다. 13세기 서유럽을 풍요롭게 한 교역로는 그대로 전염병의 이동경로가 됐다. 국제적인 교역 망이 없었다면 불과 1년 사이에 흑사병이 크림반도에서 남유럽 의 거점항으로 퍼져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서유럽에 서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이 밀집해 생활하는 도시가 발달하면서 전염병 확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James Gathany (photo), CDC>
그림 3. 서아프리카의 전통 신앙인 요루바 신앙에 나오는 천연두의 신, 소포나의 목각상. 천연두는 기원전 1200년 경 인도와 중국 남부, 이집트에서 발병한 것으로 추정된다. 3000년 전 이집트 의 왕인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천연두의 흔적이 발견됐을 정도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생소한 질병은 아니었 을 것이다.
흑사병은 중세의 경제와 사회, 정치를 끝장냈다. 그러나 죽음이 휩쓸고 간 땅에는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았다. 여러 명으로부터 동시에 상속 받아 갑자기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후대의 부르주 아지로 발전했다. 사태 해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종교는 권 위를 잃고 세속 군주와 귀족들이 권력을 차지하면서 유럽은 빠 르게 지방분권화됐다. 여기에 더해 중세 유럽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신앙 역시 합리적인 사고에 자리를 내주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대가 개막됐다. 흑사병은 종말이자 새로운 시작이 었던 셈이다.
신대륙 생태계의 패배, 천연두
16~17세기의 대항해시대에 유럽인과 접촉한 신대륙 원주민들 의 운명은 14세기의 유럽인보다 훨씬 가혹했다. 신대륙 주민들 은 역사상 처음으로 천연두 바이러스와 맞닥뜨리면서 거의 절 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새로운 시작 따위는 없는 순수한 ‘종말’이었다.
천연두는 구대륙에서는 오랜 역사를 지닌 질병이었다. 보기 흉 한 수포가 발생하고 고열을 동반하는 이 질병은 어린이에게 특 히 치명적이었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소아 질병이 그렇듯 성인 은 면역력을 갖고 있어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구대륙과 바다로 단절된 신대륙 사람들에게 천연두는 처음 접하는 질병이었다. 면역력이 없으니 신대륙에서 천연두의 치사율은 25~50%에 달했다. 1518년경을 시작으로 유럽인들 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진출하는 16세기 내내 천연두는 뱃길을 따라 진출하며 중간에 머무는 모든 섬과 대륙에서 원주 민 공동체를 무너트렸다. 피해 지역에서 피신하는 원주민도 종 종 있었는데, 천연두의 잠복기도 흑사병과 마찬가지로 약 2주 라 숙주가 충분한 거리를 이동한 후 증상이 나타났기에 병의 확산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천연두 피해는 섬과 해안에만 그치지 않았다. 미시시피강을 따 라 내륙 깊숙이까지 질병이 이동했으며, 현재의 분석에 따르면 오대호 연안은 물론이고 북서부 해안 지역에까지 천연두가 퍼 진 것으로 보인다. 천연두는 이후 200년 이상 북미 대륙에서 주 기적으로 유행하며 원주민에게 타격을 입혔다. 종두법이 남미 국가들에 도입되고 나서야 천연두 유행이 비로소 진정됐지만, 그때쯤이면 원주민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버린 이후였다. 신대륙의 원주민들은 천연두 이후 끝없는 내리 막길을 걸었으며 신대륙은 ‘제2의 유럽’이 됐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많은 연구자는 인간 주거환경 을 둘러싼 생태계 다양성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사람은 가축과 함께 생활하면서 주거지 주변으로 작은 생태계를 형성한다. 구 대륙의 유목민과 농경민은 가축이나 야생동물과 긴밀하게 접 촉하며 생활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끼리 부대끼는 동안 가축 에 서식하는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쳐 사람에게 감염돼 ‘인수공 통감염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가축과 함께 하는 생활은 끊임 없이 새로운 병원체에 노출되는 생활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사 람은 다양한 질병에 대한 면역을 얻는다. 이렇게 얻은 면역은 여 러 지역을 연결하는 교역로를 따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지속적으로 교환되고 풍부해진다. 가축이 적고 도시 간 교역도 적었던 신대륙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은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줬다. 크게는 흑사병이나 천연두부터 나폴레옹의 러시아 정벌을 좌절시킨 장 티푸스, 19세기 아시아 국가들의 몰락을 부채질한 콜레라에 이 르기까지 역사의 중요한 분수령에는 전염병이 있었다. 반나절이 면 병원체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발병원이나 감염경로를 특정 할 수 있는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 나-19 역시 역사에 새로운 분수령을 만들지 모른다. 물론 흑사 병이나 천연두처럼 파괴적인 위력을 내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바꾸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글/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