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 - 하나금융그룹 CICTO / 하나금융티아이 김정한 부사장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등을 알아봅니다.
금융과 기술의 만남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공동 작성. 안준모 교수(서강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보통 금융이나 은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느낌이 있다.
검정색 수트를 차려 입은 직원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높은 빌딩과 깔끔한 오피스, 수많은 고객과 직원이 대면하는 창구 등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캐주얼을 차려 입은 넉넉하고 온화한 표정의 김정한 부사장을 만난 장소는 이러한 이미지와는 상반된 캐주얼 카페 같은 공간이었다.
소위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핫 플레이스’처럼 보였다.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은 작정하고 ‘융합’을 위해 설계된 듯 보였다.
지하의 레스토랑을 리모델링한 공간 한편에는 바와 아일랜드 식탁이 마련되어 있으며, 가운데에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쉴 수 있는 소파 등이 놓여 있었다.
회의실과 개인 업무를 볼 수 있는 부스 형태의 1인 사무실들도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어 마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시설을 연상케 했다.
여느 금융회사와 달리 공간부터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하나금융융합기술원에서 하나금융그룹의 CICTO이자 CDO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김정한 부사장을 만나 그의 경영철학과 하나금융그룹의 비전을 물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 열어가는 CICTO
하나금융그룹 내에서 김정한 CICTO의 역할은 독특하다. 하나금융융합기술원장, 하나금융티아이의 부사장이자 그룹 전체의 CICTO(Chief ICT Officer) 겸 CDO(Chief Data Officer)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그룹이 그에게 이처럼 여러 중책을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금융회사에는 CIO개념이 있었는데, 최근 금융에도 다양한 첨단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금융 관점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자는 의지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김정한 부사장은 고객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적인 금융이 첨단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편의성을 중시하는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이 제공하는 기본 서비스는 여신, 수신 그리고 고객 편의성인데, 이 세 가지 요소가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같은 차세대 기술에 의해 진보되어 고객들이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실제 그가 이끌고 있는 하나금융융합기술원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용도 평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로 인공지능의 한 분야) 기술을 활용해 더 나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로보 어드바이저, 고객의 민원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챗봇(Chat-bot) 등 다채로운 서비스를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다.
최근 금융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지만 이처럼 새로운 시도들을 이어 나가는 게 어렵지는 않을까?
김 부사장은 자신이 가진 멀티-롤(Multi-role)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금융서비스에 새롭게 적용되어야 할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장(하나금융융합기술원장)이기도 하지만, 그룹 전체의 CICTO이자 CDO이기 때문에 이러한 여러 역할이 그룹 전체에 새로운 기술을 전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강남과 을지로, 인천 청라에 있는 여러 그룹사들을 오가며 금융에 새로운 기술을 넣는 기획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챙기고 있다고 한다.
그가 가진 멀티롤의 역할을 십분 활용해 그룹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금융과 기술의 융합 이끄는 인재관리
2017년 말 하나금융그룹이 김정한 부사장을 새 CTO로 영입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2018년 디지털 전환을 선포한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은 금융과 디지털을 융합하는 정체성을 만들어줄 것을 그에게 주문했다.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전자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필립스 반도체를 거쳐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소장을 지낸 김정한 부사장은 소프트웨어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주역이었던 그가 금융맨으로 변신한 지 3년이 됐다.
그동안 그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을 만들고 이어왔을까?
처음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의 모체가 된 DT Lab(Digital Transformation Lab)은 별도의 사무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위워크(WeWork)를 임대하여 가볍게 시작했고, 지금은 약 50명 인원에 19명의 박사급, 22명의 석사급 인재를 가진 하나금융융합기술원으로 성장했다.
그의 시도는 린 경영방식(Lean management, 생산, 유통, 마케팅 등 여러 기업활동에 불필요한 요인을 제고하고 낭비를 최소화하여 최대의 효율을 내는 경영)으로 스타트업의 도전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한 방편으로 보인다.
실제로 레스토랑을 개조해 직원 간 소통과 교류를 강조한 공간 배치나, 칸막이 없는 사무공간들은 그가 얼마나 융합을 강조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은 공간은 물론 직원 선발방식이나 조직문화까지도 융합에 지향점을 두고 있다.
기술 연구소라고 해서 인공지능 전문가만 뽑는 게 아니라 챗봇을 통한 사람 수준의 금융 상담을 위해서 금융 용어 및 그 의미 파악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언어학자도 채용하는가 하면, 소비자 편익 제고를 위해 소비자 심리를 이해하고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심리학자나 행동경제학자와도 산학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하나금융융합기술원에는 컴퓨터 공학, 수학, 금융 공학 등 다양한 전공 분야의 인재가 근무 중이며 은행 현업의 직원들도 파견 나와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모이다 보니 갈등과 분열은 없는지, 협업은 잘될지 다들 의아해 하시는데 각자 분야가 다르니 싸우지 않고 오히려 더 잘 지냅니다.”
소통이 가능한 좋은 사람들을 모이게 해 인연을 맺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으며, 소통과 융합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한다.
가장 학술적인 조직이 가장 사업적인 조직이다
김정한 부사장이 평소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가장 학술적인 조직이 가장 사업적인 조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자세히 들어보았다.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가치 있는 기술과 스타트업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가장 학술적인 조직이 가장 사업적인 조직이라는 생각으로 직원들이 스스로 첨단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학술논문 읽기를 생활화하도록 강조하는가 하면 해외 학술대회에서 자신들의 연구내용을 발표하게 하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사실 스타트업이라 해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기보다는 기존에 개발된 기술을 응용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경쟁에서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들보다 앞서 새로운 기술의 가치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계에서 일어나는 연구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연구자들을 강사로 초청해 함께 고민하는 등 다양한 학술적 교류를 가져야 합니다. 논문을 읽는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와 깊은 대화와 토론을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철학을 가지고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을 만들었고, 이것이 기업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의 활동을 살펴보면 여느 기업연구소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국내 기업연구소들이 기술유출 등을 우려하며 인하우스(in-house) 컨설팅에 집중하고 있는데,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은 대외 학술활동 및 기술개발 협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실제로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은 작년 세계적 권위의 인공지능(AI) 학회인 ‘인공신경망학회(NeurlIPS)’가 주관한 AI 경진대회 ‘AutoCV’에서 총 84개의 AI 연구팀 중 금융권으로 유일하게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으며, 헝가리에서 개최된 세계적인 AI학회 IJCNN(International Joint Conference Neural Networks)에서 자체 개발한 AI 딥러닝 기술에 대해 발표하는 등 인공지능 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산책과 대화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김정한’식 리더십
김정한 부사장은 현재 금융 분야 신기술연구소를 이끌고 있지만, 수십 년 동안 제조업에서 잔뼈가 굵은 리더다.
삼성전자에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센터장을 역임했으며, 메모리 사업부에서 SSD 소프트웨어 개발을 이끌며, 삼성전자 SSD 제품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제조업과 금융업의 결이 다른데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전통 금융 분야에 모바일이라는 기술이 접목되면서, 다름에 대한 인정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융합적인 사고와 유연성이 필요하죠. 결국에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김정한 부사장의 온화하고 낙천적인 성품 때문일까?
인터뷰를 진행하며 어쩌면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이야말로 그의 리더십을 발휘하기에 최적의 조직이 아닐까 싶었다.
“하나금융융합기술원 같은 조직은 다양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금융권 인재도 뽑아서 새로운 시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죠. 물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존중하고 협업할 수 있는 문화가 먼저 조성되어야 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직원들 개개인이 각 도메인의 전문가가 될 것을 주문하죠. 그 분야의 전문가를 비전문가가 비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문 분야가 다른 데서 오는 문화적 차이가 불만으로 누적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평소에도 직원들과 산책하며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특히 멘토링을 할 때는 틈나는 대로 일대일 점심식사 겸 산책을 같이 하며 내면까지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 내용을 토대로 정책과 인사에 반영하고 있다.
“사람을 정확히 알아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가능한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모든 문제의 답은 내면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직원들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꼭 일 얘기만 하는 건 아니고 가정생활이나 취미 같은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직원들의 큰아이 이름 정도는 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연말이면 직원 가족들을 회사에 초대해 송년 파티를 열고, 개인의 사정에 따라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것으로 직원들의 심리적 안정감 형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인재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글로벌 금융기업의 꿈
CICTO에 CDO, 하나금융융합기술원장 겸 하나금융티아이 부사장까지 여러 개의 역할을 소화하고 있지만 김정한 부사장은 ‘리더는 바쁘면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 대신 사색과 독서에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내면의 힘(회복 탄력성)을 기르기 위해 독서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회의시간에는 직원들의 말을 잘 경청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행보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진정한 리더는 무조건 자기 의견을 앞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김정한 부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자신이 사용하는 집무실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룹사별로 여러 개의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지만 CICTO의 사무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무척 소박해 보였다.
그 소박한 공간 안에서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글로벌 진출’과 ‘인재육성’을 강조했다.
“동남아시아 및 유럽, 러시아 등의 해외도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도 글로벌 진출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저희가 만들어 나가는 금융을 바탕으로 금융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훌륭한 후배들을 키워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이 설립된 지 2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술이 절실히 필요한 모바일 시대를 맞이하여 금융회사에 융합의 판을 깔아주고 씨를 뿌리는 단계라고 설명하는 김 부사장은 훌륭한 인재를 키워놓으면 우리 금융은 충분히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올해에는 박사급 직원 30%를 포함해 전체 직원 수 1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이 훌륭한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곳이 되도록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고 외부 기술도 흡수해 적용해 나갈 계획입니다.”
글로벌 금융기업들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기술혁신을 강조하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김정한 부사장이 가져오고 있는 금융기술의 새로운 변화가 우리나라 금융기업의 글로벌 진출과 기술 리더십 확보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