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아세안 시장분석
아세안 선발국가들은 광대한 영토와 인구, 경제규모를 가지고 글로벌 생산기지 겸 현대적 소비시장으로 급성장 중이다.
이들 아세안 선발국가들과 신남방정책을 활용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가별로 공동개발이 가능한 산업협력 영역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현지 정부기관 등 프로젝트 발주처들과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소비재 분야에서 현지 제조법인 진출 혹은 현지 기업과 합작을 통한 글로벌 시장공략 기반 공동구축을 추진해 가야 한다.
선발 아세안 경제의 현황
1967년 8월 8일 ASEAN의 창립을 선언했던 ASEAN 5개국(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이 지금도 아세안의 발전을 주도해 가고 있다. 이들 동남아 선발국 중에서 1인당 GDP에서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지만, 인구가 현저하게 적은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표 1의 4개국이 미래의 동남아 성장을 주도할 대표국가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역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을 달성해 ‘동남아의 선진국’으로 불리고 있으며, GDP 대비 상당한 교역규모를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GDP에서부터 인구, 영토 모든 분야에서 ASEAN 전체 규모의 35~40%를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인 ‘아세안의 맹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가이다. 필리핀은 교역규모도 작고 1인당 국민소득도 낮지만, 가장 견실한 성장을 달성하고 있고, 무엇보다 1억 명이 넘는 인구를 기반으로 거대한 소비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아세안 선발국가들은 광대한 영토와 인구(4억 7천만 명), 그리고 높은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포스트 차이나 지역으로서 아세안 지역의 성장을 주도해 가고 있다.
선발 아세안 시장의 특성
이들 선발 ASEAN 4개국은 이미 1980년대부터 일본과 서구 선진국들에 의해 동남아 생산기지로 점진적으로 개발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말레이시아는 페낭에 서구 반도체기업들이 진출했고, 태국과 인도네시아에는 일본 자동차기업들이 진출해 제조업 기반을 구축 했다. 한국도 1990년대부터 섬유·봉제와 신발, 그리고 가전제조업 등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이렇게 동남아 주요국들이 생산기지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현지 정부들은 자본을 축적해 이를 다시 점진적으로 국가적인 교통·통신 인프라 개발에 투입해 왔다.
이와 더불어 다수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면서 선발 아세안국가들도 현대식 소비시장으로 개편되어 급성장하고 있다. 아세안이 생산기지로 성장하면서 증가하고 있는 중간재·자본재 수요와 더불어, 소비시장의 성장 속에 글로벌 트렌드를 따르는 다양한 소비재와 콘텐츠 수요도 함께 늘고 있다. 특히 무선통신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출현은 아세안 선발국가들에서 SNS를 통한 소통과 전자상거래의 도입 및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선발 아세안 시장은 이미 우리나라의 주요 건설·플랜트 시장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석유화학·철강·자동차·가전·통신 등 중화학 분야 및 고부가가치 산업 진출 무대로도 부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베트남 북부 투자진출과, 포스코와 인도네시아의 인도네시아 진출, 롯데케미칼과 한화큐셀의 말레이시아 사업 확장 등이다.
선발 아세안 지역을 이제는 한국 사양산업의 종착점이나 한국 제품들을 일방적으로 수입해 쓸 수밖에 없는 저개발지역으로 봐서는 안 된다. ‘한류’를 통해서최신 유행이 무엇인지를 실시간으로 인지하고 있고, 우리와 함께 글로벌 소비트렌드를 쫓아가는 동시대의 소비자들인 것이다.
또한 선발 아세안 국가들도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벤치마킹하면서, 더 나아가 4차 산업혁명 흐름 속에서 신재생에너지와 전자상거래 등 새로운 분야를 활용한 경제 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의 잠재 파트 너이기도 하다.
일본의 직접투자, 중국과의 경제협력 상황
일본은 이미 1970년대부터 동남아 지역에 대한 투자를 시작해 동남아를 생산기지로 육성해 왔다.
특히 일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엔고 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계기로 본격적인 ‘탈일본러시’가 이뤄진 바 있다. 이때 이미 진출 기반이 구축되어 있던 ASEAN 지역에 대한 직접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일본기업 전체 대외투자의 30% 이상을 ASEAN이 차지했다. 일본은 이미 아세안 지역에서 인프라 개발 등에 ADB, JBIC 등을 통한 금융지원을 하면서, 향후 아세안 지역에서의 인프라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해 놓은 상황이다.
중국은 이미 2004년 ‘중-아세안 FTA’를 추진하면서 자국 농수산식품 시장을 아세안국가에 개방했고, 같은 해부터 ‘중-아세안엑스포’를 개최해 아세안국가들의 중국시장 진출을 돕는 등 적극적인 아세안 경제포용정책을 펼쳐왔다.
또한 아세안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설립과 ‘일대일로’ 정책 등을 통해 아세안 인프라 개발을 주도해 온 일본을 제치고 아세안 지역에서의 인프라 개발협력 주도권을 잡아나가고 있다.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사업을 일본과 경쟁해서 중국이 따낸 사례나, 비록 무기한 연기되기는 했지만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사업도 중국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주도해 가고 있었던 것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미 아세안 선발국들에게 중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일대일로’ 정책이 경제적 예속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경계심 속에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려는 전략적 선택이 선발아세안 국가들의 공통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립지대에 있는 한국과의 협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틈이 만들어지고 있는 바, ‘신남방정책’에 대한 아세안 선발국가들의 호응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선발 아세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와 같은 선발국가들은 점차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중진국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과 전략을 공유 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또한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의 경우에는 제조업 기반을 구축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견실한 성장을 희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제조기업들의 진출과 이를 기반으로 한 산업별 제조업 생태계 육성에 관심이 많다.
아세안 선발국가들의 이러한 ‘상생’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별로 공동개발이 가능한 산업협력 영역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태국과 일본의 자동차 산업 협력, 베트남과 한국의 휴대폰·가전 산업 협력과 같이, 상대국의 산업도 일으켜 주면서 우리의 글로벌 경쟁력도 키워가는 모델들이 더 나와야 한다. 태국과 전기자동차·신재생에너지 협력, 인도네시아와 자동차·조선·전자상거래 협력, 말레이시아와 석유화학·해양플랜트 협력 등을 구체화하기 위해 좀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세안 선발국가의 인프라 개발과 프로젝트 시장 진출에 있어서도 우리가 자본력에서는 일본에, 가격 경쟁력에서는 중국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 영역은 장기간에 걸친 탄탄한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라서 단기간에 공략이 쉽지 않다. 하지만 ‘신남방정책’을 활용해 공관및 현지 진출지원 공공기관들과 협력하면서 현지 정부 네트워크를 단기간에 구축하고, 일본과 중국 간의 경쟁구도 속에서 틈새시장을 잘 찾아낼 수 있다면 오히려 어부지리로 우리 쪽에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결정권은 결국 현지 정부에 있기 때문에 자본력과 가격경쟁력보다 네트워크 경쟁이 더 결정적일 수 있다. 마케팅은 결국 투입 시간보다는 집중력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소비시장의 공략도 ‘한류’만 믿고 한국에서 일방적인 제품 수출을 모색하기보다는 현지 제조법인 진출 혹은 현지 기업과 기술·인력 파견을 통해 합작을 통한 글로벌 시장공략 기반 구축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아세안 선발국에 진출한다면 저렴한 생산인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원자재 공급도 가능하고,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의 경우 ‘할랄인증’ 취득과 같은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디딤돌로 아세안 역내 시장을 먼저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우리 제약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생산법인 으로 진출한 사례들이야말로 이러한 장점들을 고려한 선도적인 포석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화장품, 식품 등 다양한 소비재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아세안 투자진출과 글로벌 마케팅 성공사례 창출을 기대해 본다.
글/ 복덕규
인니비즈니스협력센터 운영팀장
KOTRA 자카르타무역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