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4

아세안 디지털 경제와 국내 기업의 진출방안

아세안 디지털 경제는 젊은 층의 높은 인터넷 이용률과 대규모 펀딩을 기반으로 최근 4년간 3배 이상 성장했다. 전자상거래와 차량공유 서비스가 고속성장의 주축으로, 산업 간 파트너십이 늘어나고 디지털 금융이 부상하는 등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내 기업의 적극적인 현지 시장 진출 및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세안은 2018년 제24회 아세안 경제장관회담에서 디지털 경제를 그해의 핵심 분야로 선정했다. 글로벌 4차 산업혁명 흐름에서 값싼 노동력과 자원에 의존한 성장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새로운 비전 패러다임 도입을 결정한 것이다. 아세안은 젊은 인구구조와 중산층 비중의 증가세, 높은 인터넷 이용률을 바탕으로 향후 디지털 경제 성장에 있어 높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아세안의 디지털 산업 현황을 살펴보고 국내 기업의 진출방안을 모색한다. 

 

아세안의 IT 및 인터넷 이용 현황 

아세안은 스마트폰 이용 비중이 높은 젊은 층을 기반으로 인터넷 보급 속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사용 인구가 약 3억 6천만 명(2019년)으로, 2015년의 2억 6천만 명 대비 연평균 약 8.5%(CAGR)씩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모바일) 접속시간 상위 5개국에 아세안 국가가 3개(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나 포함되는 등 아세안의 인터넷 이용 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Digital 2019’, Hootsuite, We Are Social) 디지털 시장 규모와 인터넷 사용 비중은 국가별로 크게 상이하다. JP Morgan 등에 따르면 아세안 국가 중 필리핀(72%)과 말레이시아(80%)의 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편이며, 스마트폰 이용률은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앞서고 있다. 


 

아세안의 디지털 산업 현황 및 전망

구글과 테마섹, 베인&컴퍼니의 공동연구 “e-Conomy SEA 2019”에 따르면 아세안 디지털 경제 규모(GMV 기준)는 2015년 320억 달러에서 2019년 약 1,000억 달러로 성장했으며, 2025년에는 3,00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선진국 대비 상대적으로 낙후된 산업구조와 인프라, 기술역량으로 인해 4차 산업혁명 도입 후 제조업 위축, 실업 증가 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글로벌 흐름 속에 이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컨센서스 아래 각국 정부는 최근 관련 대응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인도네시아는 ‘Making Indonesia 4.0’을 발표해 4차 산업혁명의 5대 핵심 기술과 10대 우선과제를 수립하고 투자 및 정책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태국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인 ‘태국 4.0’을 수립해 산업 전반에 ICT를 접목하고 신산업을 중점 육성할 계획이다.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말레이시아는 Industry 4.0 대응정책인 인더스트리포워드(Industry4WRD)를 발표해 4차 산업혁명 지원을 통한 투자 인센티브 제공, 제조업 밸류체인 구축 지원 등을 중점 추진할 방침이다.

한편 경제발전 단계가 상대적으로 낮은 베트남은 2017년 응우엔 총리의 4차 산업 육성 지시문을 기점으로, 2019년 국가 혁신센터 설립 로드맵을 발표했으며, ‘산업혁명 참여지침 및 정책에 관한 정치국 결의’를 통해 디지털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를 2018년 4%에서 2025년 20%, 2030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e-Conomy SEA 2019”는 디지털 경제를 전자상거래, 온라인 여행업, 온라인 미디어 및 차량공유·호출 서비스 등 4개 부문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아세안 디지털 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부문은 전자상거래 부문과 차량공유·호출 서비스이다. 플랫폼 이용자를 끌어들여 규모를 확장하는 온라인 여행업과 온라인 미디어와는 달리, 전자상거래와 차량공유·호출 서비스 부문은 아세안 소비자들의 소비자행동(Consumer Behavior)을 변화시키는 역할로서 그 중요도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두 부문의 발전을 통해 소비자들은 집에서 온라인 쇼핑을 하고, 차량호출 서비스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음식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라이프스타일의 큰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아세안 전자상거래 시장은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할인행사(쿠폰, 프로모션 등)와 엔터테인먼트 연계(인플루언서의 언박싱 영상 등) 등을 통해 가장 빠르게 성장했으며, 싱가포르의 라자다(Lazada)와 쇼피(Shopee), 인도네시아의 토코피디아(Tokopedia)가 동남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편 차량공유·호출 서비스는 싱가포르의 그랩(Grab)과 인도네시아의 고젝(Go-Jek)이 투톱 업체로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차량공유 업체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차량호출 서비스에 국한되지 않고 음식 배달, 식료품 배송, 청소, 마사지 등 사업범위를 빠르게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음식 배달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본 부문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신규 서비스 제공을 위해 기업 간 협력이 늘어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 예로 Grab은 오픈 플랫폼인 ‘그랩 플랫폼’을 통해 타 스타트업과의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HOOQ),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핑안굿닥터), 보험 서비스(종안인터내셔널), 호텔 예약 서비스(부킹닷컴), 티켓 예매(BookMyShow)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최근 자산관리 스타트업 ‘벤토’를 인수하는 등 금융상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디지털 기업은 사용자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자체 서비스에 국한하지 않고 타 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으며, 신규 이용자 확보와 브랜드 신뢰 제고를 두고 기업 간 경쟁도 더욱 가열되고 있다.

아세안 디지털 경제의 성장에서 디지털 금융의 부상도 중요한 화두이다. 높은 은행 문턱으로 인해 아세안 6개국 4억 명의 성인 인구 중 약 75%가 은행계좌 개설 등 금융서비스를 원활히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향후 디지털 금융을 통해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편리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자결제, 온라인 대출, 크라우드 펀딩 등 전통 금융에서 벗어난 다양한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으며, 그중 모바일 페이(전자지갑 등)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그랩과 고젝은 디지털 금융 기술을 도입해 차량호출 서비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전자결제 서비스(그랩페이, 고페이) 및 대출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중국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모바일 지갑 등 핀테크 서비스를 동남아에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진출방안

아세안 디지털 경제에 대한 대내외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5년 11억 달러에 불과했던 투자는 2018년 141억 달러로 12배 이상 증가했으며,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필두로 현재 아세안에는 11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아세안 디지털 경제에 대한 중국 IT 기업의 대규모 투자 사례들이 주목받고 있다. 중국 IT기업 중 아세안 디지털 시장에 최초로 진출(2016년)한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금융 서비스 및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투자를 주도하고 있으며, 뒤이어 진출한 텐센트는 소셜네트워크 및 온라인 게임 산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는 아직 디지털 경제 생태계가 완전히 구축되지 않은 동남아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소프트뱅크를 포함한 일본 자본도 최근 대규모 펀드를 결성해 인도네시아 AI, 공유차량 기업에 투자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기업의 동남아 디지털 경제 진출은 저조한 수준이다.

아세안 디지털 시장 진출 시 국가 간의 디지털 수준 격차는 국내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 중 하나이다.

현재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는 디지털 경제의 초기 단계(전자상거래, 차량호출 서비스 등)를 넘어 공유 오피스, 핀테크 산업 등으로 고도화되어 가고 있는 반면, 베트남, 필리핀 등 후발주자들의 디지털화는 아직 저조한 수준이다. 또한 국가별로 상이한 경제발전 수준, 인프라, 종교 등 사회적인 요소까지 고려하여 구체적인 진출 및 투자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디지털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자상거래 시장은 차량공유와 온라인 여행업 대비 진입문턱이 비교적 낮은 편으로, 전자상거래 시장을 통한 아세안 소매유통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한 현지 유망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또는 파트너십을 통해 국내 기업의 선진화된 기술과 현지화 마케팅을 결합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야 한다. 




글/ 이화정 연구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