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박원주 청장 특허청
차량공유서비스의 대중화를 가져온 우버는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승승장구를 거듭해 왔다.
차량공유로 확보한 가입자와 인프라를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의 꽃인 자율주행차 분야를 주도할 강력한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던 이 유니콘 기업이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140조 원(1,200억 달러)에 달하던 기업 가치는 68조 원(580억 달러)으로 반토막 났다.
경쟁사의 지식재산을 함부로 사용한 것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2017년 구글의 자율주행차 부문 자회사인 웨이모가 우버를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 관련된 증거를 투명하게 교환하는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해 불리한 내부 문서들이 공개되기 시작하자, 우버는 2,900억 원(2억 4,500만 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구글 측에 넘기는 합의서에 서명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합의서에 따라 실시한 외부 전문가 감정에서 우버의 자율주행 기술이 구글의 영업비밀에 기반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우버는 자율주행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개발하든지, 아니면 구글 측에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추가로 지불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되었다.
우버뿐 아니라, 우버로 이직하며 구글의 영업비밀을 유출한 직원 역시 큰 대가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1,500억 원(1억 2,800만 달러)에 달하는 영업비밀 침해 손해배상 결정을 받았고, 별도 진행 중인 형사 소송에서도 최고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우버와 구글의 영업비밀 분쟁에 등장하는 1,000억 원 이상의 금액들이 놀랍지만, 미국에서는 이 정도 손해배상액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C형 간염 치료제 관련 특허 소송에서는 무려 3조 원(25억 4,000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고, 한국 대기업 역시 미국 기업의 첨단 섬유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한 혐의로 1조 원(9억 2,000만 달러)이 넘는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러한 천문학적인 숫자를 보면, 미국이 지식재산을 얼마나 강하게 보호하는지 알 수 있다.
우버 같은 글로벌 기업도 경쟁사의 지식재산을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이직하면서 영업비밀을 유출하는 직원은 혹독한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혁신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 무임승차와 반칙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 밸리가 혁신의 요람이 된 것은 혁신의 결과물인 지식재산이 이처럼 제대로 보호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지식재산 보호는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출원량은 세계 5위안에 드는 강대국이지만, 지식재산 보호에 관한 각종 평가에서는 30위 내에도 못 드는 것이 현실이다.
지식재산을 침해당해도, 침해 사실과 손해액을 입증하기 어려워 소송에서 이기기 쉽지 않다.
게다가 천신만고 끝에 승소하더라도 손해배상액은 충분하지 않다.
특허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액 중앙값이 6천만 원에 불과하여, 피해를 보상받기에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지식재산이 제값을 받지 못하니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보다 일단 침해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인식이 퍼질 수밖에 없다.
침해가 만연하면서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사업화하여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또한 저평가된 지식재산으로 인해 기술거래, IP 금융, M&A도 위축되므로, 성장을 위한 자금 확보나 엑시트를 통한 투자금 회수도 어렵다.
결국 혁신을 위한 투자와 기술창업 의욕이 저하되어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 개발이 위축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특허청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식재산보호 제도의 획기적인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먼저 작년 7월부터 고의적인 특허,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손해배상액을 최대 3배까지 증액하는 제도를 시행하였다.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징역형을 최대 15년으로 상향하는 등 형사처벌을 대폭 강화하였고, 특허·영업비밀·디자인 침해 범죄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특허청 산업재산 특별사법경찰’도 출범하였다.
특허침해자가 자신의 구체적 실시 태양을 제시하도록 하여 특허권자의 입증 부담도 완화하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악순환의 고리가 자리잡은 지식재산 생태계를 살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손해배상의 부족함과 입증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먼저 지식재산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1배 배상’을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3배 배상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기준이 되는 1배 배상이 적다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특히, 대규모 침해를 당해도 손해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중소·벤처기업을 실효적으로 보호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권리자의 생산·판매능력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침해자가 대부분의 증거를 보유한 지식재산 소송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는 가장 강력한 증거 확보 제도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대륙법계인 우리나라 법제에 도입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특허청은, 우리 법체계와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한국형 증거확보 제도를 설계해 나갈 계획이다.
영국은 근대 특허제도를 최초로 도입해 1차 산업혁명을 이끌었고, 미국은 특허 중시(Pro-patent) 정책으로 2차, 3차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4차 산업혁명 역시, 지식재산으로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강력히 보호해 산업혁신을 촉진하고 핵심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뒤늦은 산업화를 극복하고 경제 발전을 이뤄낸 우등생이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우등생으로 남으려면,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1등의 자리에 오르려면 혁신으로 무장한 선도자(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
강력한 지식재산 보호를 통해 혁신 기업들이 마음껏 실력을 펼칠 환경을 마련한다면, 우리 기업들이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을 뛰어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