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심상형 연구위원 포스코경영연구원 경영컨설팅센터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에 대한 무역과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끊어진 글로벌 밸류체인을 재구축하는 데 일본을 가장 적합한 파트너로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통상압력과 동아시아 전략 변화에 직면한 일본도 시장과 혁신성을 가진 중국을 자국경제의 활로로 이용하려 한다.
수출 중심의 한국 산업은 새롭게 구축되고 있는 역내 밸류체인에서 중국 및 일본과 새로운 협력의 방향성을 정하고 포지셔닝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일 경제협력 관계와 최근의 변화
동북아 경제협력, 과거사와 국제 정치 전략 결부 갈등 내재
지난해 7월 일본 정부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치 소재로 사용되는 3가지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을 금지했다.
강제징용공 배상 등 역사문제와 남북, 북미 관계에서 일본 역할론에 대한 시각 차 등 누적됐던 한일 양국의 잠재 갈등이 무역갈등 형태로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는 세계 제조업 생산의 38.7%(세계은행, 2018)를 책임지는 거대한 글로벌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지만, 3국 간의 역사적, 정치적인 문제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지역전략까지 가세하며 역내 경제협력 관계에서 늘 불확실성이 존재해 왔다.
중국과 일본 역시 2012년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 문제로 대립하며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1972년 양국 수교 초기 10억 달러 내외였던 무역액은 2002년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2006년 2,000억 달러, 2011년 3,000억 달러를 초과하며 확장세를 지속했지만, 이후 2016년까지 4년간 역성장이 이어졌다.
일본의 대중국 외국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역시 1990년대 연평균 30억 달러에서 2012년 73.5억 달러까지 증가했지만,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2017년부터 중일 관계가 빠르게 회복되며 그간의 부진에서 벗어나 2018년 양국의 무역액은 총 3,277억 달러로 전년보다 8.1% 성장하는 실적을 기록하였다.
일본은 유럽, 미국, 동남아에 이어 중국의 4대 수출시장이며, 개별 국가 기준으로는 2위의 수출대상국이다.
또, 일본에 있어 중국은 2019년 미국을 제치고 수출의 19.5%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 되었다.
중일, 센카쿠 열도 갈등 이후 2017년부터 관계 회복
일본의 대중국 직접투자 역시 2017년에 와서 5.2% 증가했고, 2018년에는 16.5%로 더 큰 폭으로 성장했다.
2018년까지 누계로 일본의 대중투자는 1,120억달러(중국국가통계국)에 이른다.
약 800억 달러(중국 국가통계국)인 한국보다 많은 금액이지만, 일본 전체 해외투자 누계에서 중국투자 비중은 7.5%(일본대외 무역기구)로 14%(한국수출입은행)를 점유하는 한국보다는 낮다.
일본경제 규모와 해외투자 규모에 비하면 대중국 투자는 보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과거 일본 경제계를 풍미했던 차이나 리스크 경계의 영향이다.
일본의 차이나 리스크 우려는 극단적으로 2012년 중국이 붕괴할 것이라는 예언부터 중진국 함정 가능성, 공산당 일당 독재에 의한 비즈니스 리스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특히, 중국이 경제 군사 대 국화로 영향력이 확대되는 반면 일본 산업의 중국투자 확대로 자국 공동화 가능성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2010년 마침내 중국 경제는 일본을 추월해 세계 2위로 올라섰으며, 2018년에는 중국의 경제규모가 일본의 2.73배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그동안 양국의 무역액은 빠르게 증가했고 일본의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도 지속되면서 중국 위협론에 대한 염려가 과장된 것으로 판명됐다.
2010년대에 들어 일본의 중국 투자가 대폭 확대되는 와중에 센카쿠 열도 갈등이 발생한 것이어서 향후 중일 관계가 회복세를 이어갈 경우 일본의 투자는 크게 확대될 것이다.
국제질서 전환기, 미국에 대응하려는 중일의 전략적 이해 일치
중일 관계는 2017년 중일 국교 정상화 45주년, 2018년 중일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맞으며 회복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2018년 4월 약 8년 만에 중일 고위급회담이 개최됐고, 같은 해 10월 일본 총리로서 7년 만에 아베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여 보다 적극적인 관계 강화에 나섰다.
이러한 화해모드는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과 긴장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일본경제 활성화와 안보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일본의 현실주의적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발생하고 있는 국제질서의 대변혁 그중에서도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이 중일 관계의 변화를 이끌어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다음 목표는 일본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인해 성장했고, 그동안 미일 동맹의 일체화된 전략 속에 움직였던 일본은 이제 독자 전략을 구상해야 하는 전환기에 놓였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은 미국의 변화에 따른 영향을 순화시키려는 일본의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의 판단이다.
중국의 영자 관영 매체 글로벌 타임스는 국제질서의 심각한 전환기에 자유무역 챔피언인 두 나라 사이에는 많은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해야 하는 공통 입장이기 때문에 경쟁보다는 협력의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중국은 시장으로서 일본에 중요하며, 중국도 미국에 대한 지나친 무역의존도를 줄일 대상으로 일본 만한 국가가 없다는 판단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중일 간 3,200억 달러에 이르는 무역액을 향후 5,000억 달러까지 증가시킨다면, 미중간의 무역액은 현재의 6,000억 달러에서 5,000억 달러 혹은 4,000억 달러까지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이 당장 미국보다 중국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의 전략 변화에 대응하고 미래 패권국으로 성장하는 중국과 함께 새로운 질서, 새로운 경제적 이익 창출을 위한 탐색에 나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향후 중일 경제협력 전망
중국의 시장과 혁신, 일본의 고급 기술로 상호보완 기대
사실 일본은 1979년부터 대중 원조사업을 시작해 그동안 중국에 총 3조 3천억 엔의 차관을 제공했다.
이 같은 유상원조는 중국 위협론이 한창 고조되던 2007년 종료됐지만, 무상원조와 기술협력 원조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무상원조 1,560억 엔, 기술원조는 1,772억 엔이 공여됐는데 중국인 기술 연수, 일본 전문가 및 협력단 파견, 개발 조사, 기계 및 재료 공여 등의 기술원조는 양국 간 산업협력의 기반으로 작용해 왔다.
일본의 장기간 ODA는 중국의 대일 의존도를 확대시키는 효과와 함께 향후에도 기본적인 협력의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 초저출산 국가로 장기 성장동력을 상실한 상태이다.
GDP 대비 250%에 이르는 국가채무 때문에 재정 투입도 어렵다.
산업에 있어서도 전통 제조업에서 보유하고 있는 초특급의 원천 기술은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언제까지 위력을 발휘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일본 경제의 폐쇄성과 기업 간 상호지분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경영 관행도 변화를 방해하며 혁신에 뒤처지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2030년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편, 5G, AI, GPS 등 디지털 핵심 기술에 집중해 성과를 내고 있는 중국은 일본 경제의 양적, 질적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중국은 미중 무역분쟁이 기술전쟁으로까지 번지며 그동안 미국에 의존했던 고급 기술 도입이 어려워지자, 일본을 통해 이를 보완할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일본의 인더스트리 4.0과 중국 제조2025을 결합해 양국 산업의 상호보완성을 높이자는 중국의 제안 역시 일본을 산업고도화에 필요한 기술과 자원의 파트너로 삼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 및 환경문제 관점에서 10대 유망 협력분야 선정
따라서 향후 중일 경협은 무역량의 확대뿐만이 아니라 질적인 업그레이드를 목표로 이루어질 것이다.
양국은 이미 4차 산업혁명과 환경문제의 중요성에 맞춰 에너지 절감과 환경보호, 산업용 로봇 등 하이엔드 제조업, 디지털 경제와 공유경제, 의료·고령자 복지 등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확대하고, 제3국 시장에서의 협력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말 중국 국책 연구기관은 중일 양국이 상호보완적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협력 분야로 다음과 같은 10가지를 선정했다.
① 글로벌 밸류체인 합작: 일본은 업스트림, 중국은 다운 스트림에 위치하고 있어 양국 간 상호투자로 산업생태계 협력 유망, 향후 상호투자 확대 추진
② 에너지 절감과 환경보호 및 친환경 저탄소 경제 영역: 일본의 관련 기술과 중국의 대규모 관련 시장 결합
③ 글로벌 첨단산업 부문 협력: IT 산업과 빅데이터, 인터넷 및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바이오, 생명공학 등에서 양국이 보유한 경쟁우위 결합
④ 고령화 사회에 대한 공동 대응: 중국 65세 이상 고령인구 1.7억 명으로 일본의 초고령 사회 경험 필요(의료, 양로 산업, 돌봄 서비스, 양로시설, 노인관광 등)
⑤ 농촌발전, 농업 현대화, 식품안전 분야 협력: 일본의 농촌정책 경험 전수(농촌발전과 경관보호, 농촌 부가가치 제고 및 농산물 품질 제고 등)
⑥ 관광여행 및 현대 서비스업 발전 협력
⑦ 재정 및 금융 부문 협력: 금융위기 방어 및 달러 환율 변동 리스크와 환전비용 절감 등 효과
⑧ 재해예방, 재난대응 협력: 일본의 경험 흡수
⑨ 제3시장에서의 협력: 일본의 기초건설 설계기술과 경험, 중국의 자본과 원가경쟁력, 기업실행력, 특수영역 기술의 결합
⑩ 각종 지역공동체 건설에서 협력: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CPTPP), 한중일FTA, 역내포괄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한국에 미치는 영향 및 대응방안
새로운 역내 밸류체인 구축 과정에서 한국 포지셔닝 전략 필요
중국은 중일 양국의 현황과 경쟁력을 철저히 비교하고 실질적인 협력 가능성과 아이템까지 검토한 후 10가지 유망 분야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것은 RCEP, 한중일FTA 등 다자 간 공동체 구성에서의 협력 제안이다.
협력의 무대를 동북아는 물론 아시아 역내로 넓힌 것이다.
그동안 미중을 중심으로 효율적으로 작동했던 글로벌 밸류체인이 상당 부분 끊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은 일본과 손잡고 지역 밸류체인 구축에 나서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제3국 시장에서의 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패권적 글로벌 전략으로 비치는 일대일로를 대신해 제3국 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한국에도 참여를 구애하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균열이 발생한 가운데 최근 한일 간에 갈등까지 발생하자 중국이 경제적 영향력을 앞세워 리더십을 발휘할 공간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한국도 사드 배치 문제를 두고 벌어진 중국과의 갈등에 이어 일본과 무역갈등을 겪으며, 소재와 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자기 혁신과 함께 독자적이며 안정적인 공급망을 보완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수출중심의 국내 제조업 구조에서 수입대체와 자립만이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새롭게 역내 밸류체인이 구축되는 과정에 시기를 놓치지 않고 우리의 포지셔닝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즉, 중국 및 일본과의 국제 분업 관계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정하고 협력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갈등을 조기에 해소하고 중국은 물론 일본과도 긴밀한 협력과 신뢰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 차원의 한중 공동의 경협방안 연구 등 노력 필요
문제는 향후 중국과 일본의 밀착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과거 일본에서 수입한 핵심 부품과 중간재를 사용해 한국에서 만든 반도체와 장비부품 등이 중국에 수출되면 중국은 최종재를 만들어 미국과 전 세계에 수출했다.
때문에 일본은 한국에서, 한국은 중국에서, 중국은 미국에서 무역흑자를 얻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전자기기 및 부품 산업에서 일본의 대한 국 무역흑자는 과거보다 큰 폭으로 둔화됐고, 일본의 대중국 무역흑자도 감소했다.
한중일 간의 산업 내 밸류체인이 변화한 가운데 발생한 한일 간 무역갈등은 국내 업체들의 국산화와 자립 노력을 자극했다.
그러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의 생산능력이 크게 확대됐지만, 기술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업체들에 일본이 핵심 부품을 직접 공급하며 손을 잡고 한국을 패싱하는 새로운 시도도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협력 분위기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는 이유이다.
중국이 한국과 제조업 경쟁력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인식하는 점도 한중 양국이 새로운 협력 모델을 발굴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중국제조 2025에서는 중국은 공업강국을 3등급으로 분류했는데 자신을 영국, 프랑스, 한국과 같은 그룹인 3등급에 두고 2035년 까지는 2등급 국가인 독일과 일본을 앞서고, 2049년 1등급 국가인 미국 수준까지 도달하겠다고 한다.
최근 중국 상무부 대외무역부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2년 전부터 한국을 추월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상대국의 경쟁력을 100으로 했을 때 중국의 수준은 독일 대비 76.3, 일본 대비 78.9, 미국 대비 89.3인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104.1이라는 분석이다.
중국과 일본의 협력이 각자의 경쟁우위를 결합시켜 다양한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판단하는 반면, 한국과는 그런 보완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 판단이 한중의 실제 경쟁력 격차에 근거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중국 정부 및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한중 양국의 산업 경쟁력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에 기반해 공동 협력 분야와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