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3

18.png

▲ 글. 김지선 수석연구원, 포스코경영연구원 경영컨설팅센터


경제적 불평등 및 양극화 현상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기존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상생에 초점을 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기업의 역할과 전략을 재정립하고 비즈니스 혁신 등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 및 양극화 완화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연차총회에 참가한 세계 주요국 지도자, 학계 전문가 및 CEO들은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장으로 인한 혜택이 다수에게 돌아갈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화합과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 for a Cohesive and Sustainable World)’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연차총회에서 참가자들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던 기존의 주주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해 나아가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해 나아갈 것을 약속하였다.


심화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지난 2013년 소득불평등과 세습 자본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파헤친 ‘21세기 자본론’을 발간하여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토마 피케티 교수 등은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에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01

또한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세계 상위 1% 자산가의 부의 비중이 2016년 28%에서 2050년 33%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근로자 임금에서의 양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7월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전체 노동 소득 가운데 소득 상위 10%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소득 비중이 49%에 이르고, 하위 20%의 경우 전체 노동 소득 가운데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02

또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 소득의 증가로 전체 글로벌 소득 가운데 임금 노동자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4년 53.7%에서 2017년 51.4%로 감소했다고 분석하였다.

최근 몇 년간 소득불평등 지표가 다소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이미 소득 및 자산 분배에서의 불평등은 고착화되고 있다.


19.PNG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 수준을 살펴보면 OECD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9번째로 소득불평등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1).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상위 10% 소득 집단의 전체 소득 비중은 1987년 35%에서 2017년 50%를 넘어섰다.

최근 통계청 등의 자료에 따르면 가구 간 소득격차가 줄어들고 상대적 빈곤율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으나, 자산의 격차는 확대되어 순자산 상위 20%, 하위 20% 가구 간의 격차는 2018년 106배에서 2019년 126배로 증가한 상황이다.03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낮은 생산성 수준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의 우려를 더욱 가중시킨다.

OECD 한국 경제 보고서 등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반면 노동생산성(근로자당 창출되는 부가가치)은 OECD 평균 수준보다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30% 수준으로 OECD 국가 가운데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으로 기업 간 생산성 양극화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파괴적(Disruptive) 변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이미 도래하였는지 아니면 어느 시점에 본격화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미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진보된 기술은 우리 생활과 생산현장에 적용,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적 진보의 혁신적(Innovative)이고 파괴적(Disruptive)인 속성으로 인해 시장과 산업, 사회 전반에 거대한 변환(Transformation)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와 거대한 변환은 생산성의 향상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AI와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양질의 일자리는 축소되며 기업 간, 국가 간 경쟁과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우려가 존재한다.

2019년 OECD가 발표한 ‘노동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5~20년간 기존 일자리의 약 14%가 자동화될 수 있으며 약 32% 정도는 대폭적인 개편이 예상된다고 전망하였다.

또한 36개 회원국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지식이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거나 부재한 상황이며 기술발전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심각한 사회정치적 문제가 대두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04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경우 자동화로 인해 2030년까지 최대 8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최대 3억 7,500만 정도의 근로자가 직업군을 변경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고소득 직업에 대한 수요는 증대하는 반면 중위 수준 소득 직업에 대한 수요 감소로 소득양극화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았다.05

물론 이러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기술진보와 자동화에 의해 창출되는 신규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자리에 비해 많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진보와 변화에 대한 적응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며 결국 개인 간, 기업간, 국가 간 기술 우위 선점을 위한 경쟁을 가중시키고 기술 접근성의 불평등도가 커져 양극화 현상을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의 부상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각한 경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문제가 양적인 성장과 이윤 극대화에 초점을 둔 기존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또한 기술진보 등 거대한 경제, 사회적 변혁의 흐름을 받아들이기에는 기존 체제는 이미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위기감이 증대되고 있다.

이제 지난 반세기 동안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기업의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었던 일명 ‘프리드먼 독트린(Friedman Doctrine)’은 고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06

최근 들어 학계, 투자기관은 물론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 왔던 주요 기관들은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세계경제포럼(WEF)은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관점에서 기업의 목적을 재정의한 ‘다보스 선언(Davos Manifesto) 2020: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의 보편적 목적’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1973년 발표한 ‘다보스 선언(Davos Manifesto)’을 시대적 요구와 변화를 반영하여 업그레이드 한 이번 선언문은 기업의 목적을 ‘지속가능한 가치 창출에 있어서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주주뿐만 아니라 임직원, 고객, 공급사, 지역사회 및 사회 전반에 걸쳐 기업이 나아가야 할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기업은 부를 창출하는 조직 그 이상’이며 ‘폭넓은 사회 시스템의 일원으로서 인류와 사회적 염원을 충족시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앞서 2019년 8월 미국 주요 기업 CEO 190여 명으로 구성된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 Table, BRT)은 ‘기업의 목적(The Purpose of a Corporation)’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기업의 목적이 주주 가치 및 이윤의 극대화를 넘어 협력사, 고객,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가치창출임을 천명한 바 있다.

이러한 선언이 레토릭(Rhetoric)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오랫동안 주주 자본주의 철학을 고수해 온 BRT의 입장 선회와 이해관계자에 초점을 두고 기업의 목적을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급속한 경영환경의 변화 속에서 위기감을 느낀 기업 스스로가 기존 경영방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회적 평판 제고나 정부, NGO 등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던 과거와는 달리 사회구성원의 역할 강화와 이해관계자의 가치 제고를 기업의 존재 목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은 매우 획기적인 전환이다.


글로벌 기업,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하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선도기업들의 경우 사회가 당면한 문제해결이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수조건임을 인식하고 비즈니스를 통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환경, 사회적 영향은 최소화하는 한편 혁신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더불어 기업이 가지고 있는 물적, 금전적, 인적 자원 등의 역량 연계를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예를 들면 글로벌 최대 소비재 기업 중 하나인 유니레버의 경우 ‘지속가능한 삶의 일상화(To make sustainable living commonplace)’를 비전으로 수립하고 2010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인 ‘지속 가능한 삶 계획(Unilever Sustainable Living Plan, USLP)’을 발표하였다.

USLP는 ‘건강 및 복지 향상’, ‘환경영향 감소,’ ‘생활수준 향상’ 3대 분야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발굴, 수행하고 있다.

특히 비즈니스 혁신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을 도모하고 있는데 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청소세제 제품 개발, 소비자의 건강한 식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제품의 나트륨, 포화 지방 감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제품을 통한 사회적 가치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독일 화학기업인 BASF의 경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화학 창조’를 회사의 목적으로 제시하고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비즈니스 전략과 체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수요 산업 시장 트렌드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신규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고 고객의 제품 혁신을 지원하고 있다.

나아가 제품을 환경, 사회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분류하는 체계를 구축, 기여도가 높은 제품의 매출은 확대하는 한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품은 줄여나가는 노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또한 글로벌 기업들은 계층 간, 대·중소기업 간, 선·개도국 간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식음료 기업인 네슬레의 경우 ‘삶의 질 향상과 건강한 미래에 대한 기여’라는 비전하에 비즈니스 전략을 식품(Food)에서 영양(Nutrition)으로 변경하고 저소득층 영양 개선을 위해 철분, 요오드 등의 영양소가 강화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등 계층 간 영양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공급망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2011년부터 원두 생산 농가를 지원하는 ‘네스카페 플랜(NESCAFE PLAN)’ 프로그램을 시작, 농가에 농법, 기술을 전수하고 안정적인 물류 체계를 구축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더 나아가 2018년 ‘책임소싱기준’을 발표, 농부들의 인권, 노동환경 등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혁신 기술 기반의 사회문제 해결 노력도 확대

AI, 빅데이터 등 기술의 진보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술을 활용한 사회적 가치 제고를 위한 기업들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CISCO의 경우 ‘포용적 기술’이라는 방향하에 ‘Cisco Networking Academy’를 설립, 180여 개국 학생들에게 최신 IT 기술에 대한 온라인 및 오프라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IBM의 경우에는 2011년부터 P-TECH 프로그램(고등학교 4년과 전문대 2년 과정을 통합한 기술 및 직업교육 전문학교)을 통해 단순한 학업 지원이 아닌 청소년들의 취업 및 창업이 가능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한편 학위 취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진보와 혁신을 기반으로 한 더 나은 세상과 기술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은 비단 IT 기업만의 몫은 아니다.

글로벌 철강기업인 포스코의 경우 2018년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을 경영이념으로 선포하고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경제적 이윤 창출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으로부터 국내 최초 ‘등대공장’(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도입, 제조업의 미래를 혁신적으로 이끄는 공장)으로 선정되어 세계 제조업 스마트화의 리더로 인정 받은 바 있다.

포스코는 강건한 생태계 조성과 중소기업의 스마트화 역량 제고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제조업 스마트화 기술 및 노하우를 협력사 및 비협력사에 전파하고 지원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변혁 속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은 모든 기업의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 경제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기업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결국 기업이 생존하고 지속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과제를 사회와 함께 해결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상생의 관점에서 기업의 역할과 전략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01 ‘World Inequality Report 2018,’ Facundo Alvaredo, Thomas Piketty 외(2018)

02 ‘The Global labour income share and distribution’, International Labour Office(ILO)(2019.7)

03 “소득격차, 상대적 빈곤 줄었지만 자산 격차 커졌다”(경향신문 2019.12.17)

04 ‘OECD Employment outlook 2019: the Future of work’, OECD(2019)

05 ‘ Jobs lost, jobs gained: workforce transitions in a time of automation’, McKinsey Global Institute(2017.12)

06 미국의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1970년 9월 뉴욕타임즈 매거진에 ‘비즈니스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증대하는 것(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이라는 제목의 기고글에서 ‘비즈니스의 유일한 책임은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기업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설계된 활동에 참여하고 그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