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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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고준형 연구위원, 포스코경영연구원 리서치센터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저성장은 탈세계화 및 보호주의를 낳았다.

급기야 2010년대 말에 미중 무역전쟁으로 이어졌다.

2020년대에 탈세계화의 물결은 지속될 것인가?

미중 패권전쟁의 시작은 미-소 냉전에 이어 냉전 2.0으로 이어질까?

세계 경제의 룰은 규범에서 패권으로 변화할 것인가?

먼저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이에 기반하여 향후 구도 변화를 조망하고 한국의 입지를 살펴봤다.



탈세계화와 미중 패권경쟁의 부상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탈세계화(Deglobalization)가 진행되고 자국 중심 보호주의가 확대된 가운데 G2 패권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발 위기가 급속도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간 것은 2000년대 들어 빠르게 진행된 세계화(Globalization) 때문이었다.

세계화에 따른 자유무역 확대 및 과도한 금융자유화로 오히려 위기가 확산되고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금융자유화가 진전되면서 전 세계 금융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제조업의 글로벌가치사슬도 국경을 넘어 연결되어, 세계 금융시장에 공포가 증폭되고 주요국의 제조업 생산이 급락했다.

위기 후 세계 각국이 국익과 경제를 우선시한 결과 탈세계화 및 보호주의가 만연했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신흥국 간 무역 불균형은 해소되는 듯했으나,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사실상 지속 증가해 2018년부터 미중 무역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이 국유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국가 주도로 제조업 및 첨단 IT 산업을 육성하는 ‘제조업 2025’를 주창하면서 안보, 지식 재산권, 첨단 기술 도용을 둘러싼 미중 대결 구도로 비화했다.

현재는 무역전쟁은 종료하더라도 4차 산업혁명의 표준을 선도하는 기술 패권전쟁은 장기화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패권경쟁의 배경에는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성장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4차 산업혁명의 전개가 자리잡고 있다.

2008년 9월 리만 사태로 금융위기가 발발하고, 세계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버금가는 대침체(Great Recession)를 겪었다.

금융위기는 다행히 대공황 수준까지는 확대되지 않았으나, 2010년대에는 경기부양을 위한 부채누적, 만성적인 수요 부족, 생산성 하락으로 구조적인 장기 정체(Secular Stagnation) 우려가 대두되었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독일을 중심으로 시작한 인더스트리 4.0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며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이 모두 제조업 부흥과 기술혁신을 표방했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세계 경제의 룰은 WTO 체제에서 벗어나 규범에서 패권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패권국 이외의 국가들은 보호주의를 표방하거나 각자도생 또는 이합집산을 통해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영국의 브렉시트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갈등 사이에서 저성장 고착화의 우려가 커지고 있어, 4차 산업혁명 물결에 올라타 제조업을 재부흥시키고 혁신적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따라서 2020년대 저성장 장기화에 대비하고 4차 산업혁명 환경하에서 향후 패권 구도와 주요국별 합종연횡의 가능성을 살펴 한국 기업들의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2020년대 경제구조 변화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세계 경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끝났는가? –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

금융위기 후 10년간 세계 경제에 극명하게 나타난 두 가지 현상이 있는데, 금융·실물 괴리와 G2 불균형(Imbalance)의 심화다.

금융·실물 간 괴리는 통화의 양적 완화에 따른 자산 버블의 결과이고, 미중 간 무역 불균형은 중국 등 글로벌 과잉저축이 미국의 소비붐으로 이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위기 이후에도 지속 확대되었다.

금융위기 후 1, 2, 3차에 걸친 대규모 양적 완화로 증시와 부동산에서는 다시 버블이 초래된 반면, 초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실물 부진은 장기화되었다.

실물 부문의 기대수익률이 크게 하락하면서 증권과 부동산 투자가 늘어난 데다 투기수요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 및 주택 매입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부채는 2018년 이미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상회했다.

중국도 위기 극복을 위해 2009년에 대규모 경기부양으로 과잉투자 속에 과잉부채를 양산했다.

이후 중국의 공급과잉 해소가 지연되면서 글로벌 제조업 부진이 장기화되었다.

제조업 부진과 높은 부채 수준은 다시 민간의 소비 및 투자 지출에 부담으로 작용하며 저성장을 야기했다.

이에 따라 산업 생산은 부진한데 증시 및 부동산만 과도하게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실물 부문과 자산 부문의 갭이 점차 확대되는 금융·실물 괴리를 낳았다.

G2 불균형이란 미국의 대중 무역 및 경상 적자를 말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은 과소비 및 재정지출로 무역적자가 지속 확대되고, 이를 해외 순자본 유입으로 보전하는 구조다.

중국은 과잉 저축으로 미국의 과소비·주택 모기지·국채 매입 등을 지속 보전하고 있다.

벤 버냉키(Ben Bernanke)전 연방준비제도(FRB) 의장은 “글로벌 과잉저축(Savings Glut)이 미국의 버블 초래로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미국의 자산버블재형성과 G2 무역 불균형은 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이 미중 무역 불균형 심화를 빌미로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보호주의를 강화하면서, 세계 경제는 무역이 더욱 위축되며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은 무역을 무기로 중국을 압박하며 중국의 불법적 기술 도용 및 성장 방식에 근본적으로 태클을 걸고 있는 것이다.


2020년대 세계 경제 구조 변화와 글로벌 패권 구도

금융위기 후 10년의 경제 흐름에 기반해서 볼 때, 2020년대 세계 경제 구도는 크게 두 가지로 전망된다.

첫째, 과잉 부채하에서 구조적 저성장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보호주의 확대 속 기술 및 표준의 선점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한마디로 성장 부진속에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패권경쟁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월드뱅크(World Bank)는 2020년 초 경제 전망을 통해 글로벌 부채 누적과 낮은 생산성이 저성장을 장기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하버드대 교수는 높은 부채 수준하에서 만성적 수요 부족에 따른 구조적 장기 정체(Secular Stagnation) 우려가 2020년대에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공급 측면에서도 생산인구 둔화와 노동생산성 정체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더욱이 향후 위기발생 시 정책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수단 및 여력이 부족하다.

선진국의 정부 부채는 역대 최고 수준인 GDP 대비 110%에 달하는 데다, 초저금리 상황의 장기화로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여지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경기부진을 떨쳐내기 위한 혁신적인 성장동력 발굴 과정에서 기존 세계 질서를 더욱 강화하고 싶어 하는 미국과, 아시아 내 주도권 및 새로운 기술표준화 선점을 위해 도전하는 중국 사이에 패권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미국은 대중 무역적자가 미국의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며 제조업 부활의 큰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무역 역조 개선을 요구하면서 지재권과 첨단기술 안보를 빌미로 중국에 금융·상품시장 개방을 압박할 경우 미중 대결 구도로 이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더해 4차 산업혁명이 국가 간 경쟁 구도에서 와일드카드로 작용하고 있다.

미중은 각각 4차 산업혁명하 기술 선점을 통해 2020년대에 생산성을 높이고 표준을 선도하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축을 이루는 AI, 5G 등 핵심 기술과 관련 표준 및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주도권을 선점하는 데 결정적일 수 있다.

투자은행 BoA메릴린치는 나아가 2020년대를 패권전쟁을 넘어 신냉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중의 기술 및 안보 전쟁이 계속된다면 글로벌 공급망에 ‘지각변동(Seismic Shift)’을 일으켜 양분된 기술 생태계 또는 가치사슬을 형성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미중 패권경쟁 속에 EU는 양국 사이에서 협력과 견제를 모색하며 삼각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EU는 2019년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중국을 ‘협력 동반자’이자 ‘전략적 경쟁자’로 명시하고, 그해 4월 EU-중국 정상회담에서 일방주의 및 보호주의에 대해 중국과 다자주의를 중심으로 공동대응하기로 합의했다.

필요에 따라 중국과의 협력강화를 모색하면서도 동시에 미국과 함께 중국 시장을 압박함으로써 실리적인 입장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중국-EU 삼각구도하에서는 패권국 간 또는 패권국을 둘러싸고 국가 간 합종연횡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는 중국인데 미중 갈등 속에 EU에 러브콜을 보내며 브라질 등 남미와의 교역을 확대하면서 아프리카 투자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캐나다와 무역협정 USMA(USMexico-Canada Agreement)를 체결해 북미 우호시장을 조성하는 한편, 중국의 보조금 및 지재권 도용을 비난하며, EU 자동차 관세 부과 협상을 통해 미국 자동차 시장에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EU는 중국 시장 개방에 공을 들이면서도, 미국과는 중국 국유기업 보조금 문제에 동조하면서 자동차 관세 인하 협상을 위해 미국과 밀고 당기기를 지속 추진 중이다.

영국도 EU를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추진하면서 중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며 금융을 비롯한 중국 시장의 개방을 원하고 있다.

일본 역시 자동차 관세를 피하기 위해 환태평양동반자 협정(TTP) 등을 통한 다자 외교를 벌이며 미국의 통상 압박을 피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징용공’ 문제로 유발된 역사 인식 차이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막혀 있는 상황으로, 중국은 이러한 간격을 이용해 중일 간 산업협력을 모색할 것이다.


2020년대 국가 간 합종연횡 속 한국의 입지

2020년대에는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보호주의가 이어지며 미-중-EU의 삼각구도 속에 국가 간 합종연횡이 지속될 것이다. 한국은 동북아 경쟁구도하에서 중일, 미일의 협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EU 및 중일의 산업 협력 모드가 확대된다면,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수출 및 동북아 공급망 훼손으로 제조업 침체에 더해 2% 미만의 저성장국면이 장기화될 수 있다.

한국은 미-중-EU 삼각구도하에서 동아시아 질서 재편의 갈등과 협력의 축을 파악하고 역내 협력구도를 끌어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은 제조업 침체 속에 글로벌 공급사슬이 재편될 것으로 예상하고 규제를 탈피하며 혁신의 물결에 올라타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및 혁신으로 경쟁우위를 창출하는 동시에 가치사슬을 망라하는 강건한 산업생태계 구축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구조적 저성장을 돌파할 민-관 합동의 제조업 리뉴얼(Renewal) 로드맵 모색과 새로운 성장 엔진 발굴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