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는 기업의 연구책임자 인터뷰를 통해 성공프로젝트를 기술혁신 측면에서 살펴봅니다.
▲ 박만호 연구소장
(주)아스플로
공동 작성. 남태영 대표(SBI Consulting Korea),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의 주요 반도체업체들의 성공과 명성은 익히 알려진 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뒤에서 묵묵히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온 소재부품 전문 업체가 있다.
1998년도 IMF의 풍파 속에 기업이 파산하여 더 이상 직장 내에서 국산화된 아이템을 시장화 시킬 수 없었던 상황에서 단지 기술 하나만 가지고 부품소재 1호 기업으로 창업해 고청정이 요구되는 반도체 공정장비에 사용되는 금속필터를 개발해온 작지만 강한 기업인 ㈜아스플로(이하 아스플로)의 기술혁신 성공사례를 소개한다.
반도체시장의 부품소재 전문기업 아스플로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아스플로(대표 강두홍)는 반도체용 공정에 사용되는 각종 반응가스와 케미컬을 이송하는 배관부(Tube, Fitting, Valve, Regulator, Filter etc)를 제조·판매하는 회사다.
정밀가공, 특수정밀용접, 특화된 표면처리 및 세정 공정 등의 특화된 기술을 기본으로 전 공정을 가진 일괄라인을 보유하고 모든 제품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는 고청정 금속필터는 3㎚ 이하의 입자까지 99.999% 이상 걸러낼 수 있어야 하고, 여과 전후의 압력 차이가 낮아 원활히 가스를 흘려보내야 함은 물론,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부식성 가스에 잘 견디는 재질을 사용해야 한다.
여과 전후의 압력차를 차압(Differential Pressure)이라 하는데, 차압을 낮추기 위해서는 필터의 기공율을 높이고 표면적을 넓히는 방법이 사용된다.
필터 소재에 따른 여과특성은 그림 2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극세 금속섬유나 금속분말로 성형한 후 고온처리(소결, Sintering)하여 금속섬유나 분말의 일부를 녹여서 필터의 여과 통로를 만들고 형태를 구성하게 된다.
가스를 쉽게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극미세 금속 섬유를 사용하는 것이 좋으나 극미세 금속섬유의 가격이 비싸고, 금속분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복잡한 기공이 형성되어 가스 흐름이 어렵게 되어 압력손실의 우려가 있다.
아스플로는 금속섬유를 대신하여 금속 플레이크(Flake)를 재료로 하여 여과 성능이 우수하고 압력손실이 적은 것은 물론 가격도 기존 외산보다 75% 저렴한 다공성 고청정 금속필터를 개발했다.
금속 플레이크를 WPS(Wet Powder Spray)코팅법으로 지지체에 박막을 구성한 후, 고온처리과정(소결, Sintering)을 거쳐 플레이크들을 결합함으로써, 여과에 필요한 구멍을 형성하고 자체 강도도 향상시켰다.
2.5㎚의 초미세 입자도 99.99999% 여과 가능하고, 압력손실도 외산보다 30% 낮으며, 구형 분말로 제조한 필터의 기공율이 35% 수준인데 반해 48%를 달성함으로써 차압 특성이 우수하여 여과 과정에서의 유량도 충분히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용접부 강도는 2,000N 이상 확보되었고, 지지체와의 강도도 향상되었다(50,000N).
테마 발굴부터 사업화까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관리
아스플로의 성공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오랜 기간 쌓아온 기술적 잠재력 외에 고객사와의 원활한 소통을 통하여 고객 요구에 기반한 신규 사업 아이템을 찾고, 한정된 시간과 자원으로 효과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실험계획법과 같은 연구방법론을 활용해 왔으며, 다양한 조건변화에 의한 엄청난 실험결과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고객 요구에 기반한 신규 아이템 발굴
신규 사업이나 연구개발 아이템을 발굴하는 과정은 모든 기업에게 희망찬 시도인 동시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힘든 작업이기도 하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전적으로 새로운 사업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기관의 예측자료에 기반해서 적절한 타겟 제품이나 서비스를 목표로 설정한 후, 이를 달성하기 위한 기술이나 활동을 정리한다(Seed-based).
반면 이미 시장이 있고 리더들이 상당 부분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라면 기술, 경제, 정책, 규제 등 다양한 사업 환경을 분석한 후, 적절한 목표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정하고, 기술을 정리하기도 한다(Needs-based).
모토로라가 로드맵을 전략으로 활용한 이후,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은 사업전략이나 기술전략으로서 로드맵을 활용하고 있다.
막연하게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라 여겨졌던 발굴과 전략수립 과정을 ‘Knowwhy, Know-what, Know-how’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각각 환경 분석 결과(Know-why)를 보니 그런 목표 제품이 타당해 보이고(Know-what), 이를 위해서 이러저러한 기술이나 활동(Know-how)을 하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면 실질적인 액션에 들어간다.
새로운 테마를 발굴하고 전략으로 적용하는 데 전문적 방법을 써야 한다기 보다는 관련 부문이 공동의 목표를 정하고 그에 타당한 방향과 실행안을 수립해 나가는 과정이며, 그 제일 앞에는 ‘왜’이런 활동을 해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환경분석 결과 (Know-why)를 점검한 후, 어느 정도의 안도감을 가지고 실행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아스플로는 환경 분석을 통해 새로운 금속필터의 개발 타당성을 찾지는 않았지만, 왜 이런 용도와 성능에 해당하는 필터를 개발하고 사업화해야 하는지, ‘왜(Know-why)’에 해당하는 답을 고객사의 요구를 통해 파악하기 위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사업 초기 일본의 반도체 장비 청정부품소재 개발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왔고,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의 기술력과 산업 장악력이 커짐에 따라 반도체 부품업체가 확인해야 하는 시장 요구사항을 고객사에서 직접 파악해, 그를 바탕으로 신제품개발 역량도 향상시켜 왔다.
일본, 미국 등 선진사들이 미세금속섬유나 금속분
말을 소결하여 필터개발에 집중하는 현황을 파악해왔고, 반도체 업계의 리더가 된 국내 고객사들의 요구성능이 급격히 상향 조정됨에 따라 외국 선진부품업체의 기술을 벤치마킹하는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연구기관이나 학계와 국가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장비와 인적 네트워크를 다져 오면서 선진부품사가 시도해보지 않았던 플레이크(Flake) 형태의 소재를 성형하고 소결하여 여과 효율이 좋으면서도 차압 특성이 저하되지 않는 혁신적인 신규 필터 소재와 방식을 제안할 수 있었다.
협업의 결과물은 고객사에 시제품으로 제안하고 빈번한 피드백을 통하여 완성도를 높여갈 수 있었다.
산학 협업을 통해 일본의 기술을 재해석하는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검증해온 결과가 확실한 성과로 평가되면서,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들의 가이드 덕분이라고만 할 수 없는 혁신적인 시도와 그 결실을 제시하고 있다.
효과적 연구개발을 위한 실험계획
베테랑 연구원의 직관과 경험에 의존해 개발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핵심적인 인자를 찾아내어 연구개발의 성공으로 이어가기에는 실패로 이어질지 모를 함정들이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다.
경험이 많은 연구원의 직관은 충분히 훌륭하고 개발 성공의 나침반 역할을 하지만, 조직을 운영하여 성과를 내야 하거나, 연구소의 부족한 개발 역량을 채워주는 방법 중 하나는 실험계획이다.
경험이나 직관이 잘 발달한 연구원의 경우는 몇 번의 시행착오만으로도 곧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시도할 때마다 실패를 반복할 수 있기에 논리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사용하는 연구방법론이다.
체계적 실험계획을 위해서는 중요한 인자를 찾아내고 결과와의 함수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제품 요구사항 변경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객사의 요구가 다양하거나 시장상황에 따라 고객사의 요구가 수시로 변경될 경우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실험계획법과 같은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아스플로는 한두 번의 실패로 인한 지체가 용납되지 않는 반도체업의 특성상, 고객사의 요구를 파악하는 즉시 그 대안을 찾고 그 방법의 실효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많은 양의 실험 데이터를 필요로 했다.
특히 금속필터소재가 되는 플레이크의 성상이나 적층 방법 등을 바꾸어 가며 12단계를 거쳐 결과를 내야 하므로, 농업적 근면성을 강요하여 엄청난 양의 실험을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필터업계의 선진사인 M사는 미세금속섬유를 사용하여 기공률을 높임으로써 차압을 낮추고, N사는 분말을 사용하여 미세여과 층을 가능하게 하고 있지만 압력손실이 큰 결과를 보인다(그림 7).
아스플로는 선진사의 기존 기술방식과 달리 플레이크(Flake)를 사용함으로써 선진사의 제조방법이나 그 결과를 참조하는데 제한적이어서, 새로운 소재에 맞는 다량의 실험이 필요했고 시행착오를 피하고 단기간에 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실험계획법이 절실했었다.
필터설계기술이나 제조기술을 수행함에 있어 확인된 변수에 해당하는 조작방법을 실험계획법에 숙련된 개발자들이 실험을 계획하고 검증해나가는 단계에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왔다.
아직까지 자체적인 교육 체계가 확립되지 않아 외부 기관에 교육을 의뢰하고, 교육을 통해 숙달된 선임자들이 도제식으로 후임자를 가이드하고 있지만, 쏟아지는 데이터와 결과만큼 구성원들이 집중하여 성과로 이어가고 있다.
축적된 연구데이터 탐색적 활용: KMS(Knowledge Management System)
지식경영시스템(KMS)은 지식을 창출, 저장, 전이, 적용하려고 조직에서 개발한 일련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이다.
개발 환경에서 학습하고 지식을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조직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기업의 규모가 작거나 우수한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개발조직의 경우는 중요 포스트에서 역할을 맡고 있는 담당자들의 역량에 따라 개발의 성패가 달라진다.
게다가 개인의 개발결과를 동료나 조직과 공유하기 어려워 유사한 실험들이 중복되기도 한다.
조직 내에서 수행된 연구개발 결과물을 공유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으로 한동안 많은 연구소에서 강조되어 왔지만, ‘일하는 방법’으로서 프로세스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스템화’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자원이 투입되고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대규모 시스템이나 프로세스에 의존하기보다는 개별 연구원들의 수행결과물을 공유하고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면 충분할 것이다.
아스플로는 거대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모든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업초기부터 축적해온 기술력이 기존 과제개발과 신규사업 발굴에 잘 활용되고 있다.
고청정 전해연마기술(Electropolishing)은 사업 초기 도입하여 반도체장비용 배관이나 프랜지 등에 적용하고 기술축적을 진행하여 왔다.
초고순도로 가스를 여과하기 위한 필터 설계기술과 제조기술은 금속분말응용기술의 부분으로써 개발되었는데, 그 기반에는 전해연마기술 관련 축적된 노하우가 상당 부분 활용되었다.
고청정 전해연마기술은 직경 수㎜∼수십㎜, 길이 4m, 6m의 협소하고 긴 튜브 혹은 파이프 소재 내벽에 잔존하는 오염물질, 결함, 미세흠집 등을 완벽히 제거하여 거울처럼 깨끗하게 고청정 강관으로 만드는 기술로, 신규 개발된 필터설계기술 완성에 기반이 되었다.
고청정 금속필터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스플로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평가시스템을 설치하고 평가장비를 구동시켜야 하는데, 평가시스템 자체를 청정하게 구성하고 세척하는 과정에 이미 확보해둔 전해연마기술의 노하우가 적용되어야 한다.
기술독립을 넘어 기술강국으로
지구 반대편 젊은이들이 K-POP에 열광하고 리듬에 몸을 맡기는 영상을 방송에서 종종 보게 된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우수성에 기인한 것이기도하고 우리가 몰랐던 한국문화의 매력이 제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주요업체들이 반도체분야에서 리더가 되어 왔고, 관련 업계에 영향력을 미쳐온 것도 기여한 바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사업의 주역들 뒤에서 배관을 공급하고 부품을 만들면서 고객사의 장비 국산화를 위해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낸 숨은 주인공들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꾸준히 조금씩 쌓아가는 노력들이 조만간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발현될 것을 기대해 본다.
아마도 일본이 반도체 소재 관련 수출규제를 또 들고 나오더라도 기술 독립을 넘어 기술 강국을 향한 걸음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