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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경영 심리학은 리더십,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등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생각의 원리(심리)’를 다양한 실례들과 함께 다룹니다.

글. 김경일 교수/센터장(아주대학교 심리학과,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


한국 사회는 피로사회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사실이다.

몇 가지 분명한 이유들이 있다.

우선, 가장 열심히 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 와중에 한국인들은 가장 적게 잔다.

실제로 2016년 OECD 조사에서도 대상 국가들 중에서 수면 시간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일주일 노동시간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일과 관련된 통계에서 한국은 달갑지 않은 최상위권을 기록해 오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있어서 번아웃은 늘 중요한 화두다.

그런데 서양문화권에서 먼저 그 개념이 정립된 번아웃의 유형에 잘 속하지 않은 한국 사회의 독특한 번아웃이 있다.

더 정확하게는 한국에서 그 위험성이 더 높은 번아웃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

번아웃(Burnout). 미국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약물중독자들을 상담하는 전문가들에게서 발견한 현상으로부터 유래한다.

상담 과정에서 중독자가 아닌 치료자가 오히려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가 점차적으로 완전히 소모돼 극단적인 무기력감을 겪는 고통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이 번아웃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 측면 모두에서 극도로 피로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증상’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번아웃을 막기 위한 전문가들의 조언은 대체적으로 상식적이다.

상담을 받고, 잘 먹고 잘 마셔야 하며, 일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으며, 적절한 운동과 취미생활을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조치들을 일정 수준으로 하면서도 여전히 번아웃 증세를 겪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상당히 많다.

왜 그럴까? 중요한 조치가 하나 더 필요한데 그것이 간과됐기 때문이다.

그 조치는 바로 한국 사회의 독특함에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유난히 사람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한다.

한국인의 스마트폰을 보면 알 수 있다.

늘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거나 메신저를 통해 채팅을 하고 있다.

게다가 이 작은 국토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 살고 있으면서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한국인은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하다.

남의 시선을 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도 신경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지극히 멀쩡한 모습을 보이려는 경향이 강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결국 타인들의 시선이 자기를 향해 있지 않을 때가 돼서야 지친 모습을 보인다.

이로 인해 주위에서는 그 사람이 지쳐간다는 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결국 문제가 크게 터지는 지경까지 가야만 주위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멀쩡하게 말 잘하고 일 잘하던 사람이 갑자기…’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전형적인 ‘한국형 번아웃’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번아웃 전에 유난히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오히려 나만 혼자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을 점점 더 많이 느끼곤 한다.

이미 성공한 사람이든 아직 성공을 위해 뛰고 있는 사람이든 예외가 없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과 너무 많이 대화하고 만나는 과정에서 나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 버리는 이른바 사회적 소진이라는 함정이 늘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소모된 에너지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짐으로써만 회복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 반대의 행동으로 문제를 악화시킨다.

번아웃이 임박해 오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의존하며 그들과 먹고 떠드는 ‘사회적 노동’으로 지쳐가고 외로워지며 이를 이겨낸답시고 다시금 관계 속으로 뛰어드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이를 두고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 어리석음이라고 꼬집는다.

그런 상황은 피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과 소리를 거의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나에게 부여해야만 한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그래야 식기 시작해 다 타버리는 소진을 막을 수 있다.

일주일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더 좋은 방법은 무목적으로 혼자 걷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대인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바로 걷기다.

걷는다는 것이 인간의 마음에 불러오는 긍정적 효과는 의외로 상당하다.

왜냐하면 뇌에서의 물리적 변화가 분명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단 걷게 되면 뇌에서 해마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해마(Hippocampus)는 새로운 생각과 기존의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해마가 편도체(Amygdala)라는 부위에 길항작용을 한다.

길항이란 서로 반대되는 작용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해마가 활발히 활동하면 편도체의 활동은 그만큼 약화된다.

그런데 편도체의 기능은 불안이나 초조함과 같은 스트레스성 감정을 담당한다.

그러니 걸으면 해마가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편도체는 둔화되니 당연히 인간 심리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혼자 걷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산책을 하더라도 잠시 동안은 혼자 걸어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말과 생각을 멈출 수 있으니 걸으면서 느끼게 되는 새로운 감정을 디딤돌 삼아 그간의 고민이나 시름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활력소가 된다.

뇌에서의 스트레스 감소와 결부돼 좋은 효과가 나온다.

그리고 이 효과를 극대화 하려면 무목적 즉 목적 없이 걸어야 한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마음에 지닌 채 걷는다는 것은 결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기 어렵게 한다.

그렇다면 무목적으로 걷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목적 달성에 필요한 ‘도구’를 지니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간은 도구를 가지고 있으면 계속 그 도구를 들여다보며 그것으로 해야 하는 일들과 그것으로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생각하면서 기존의 걱정으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지갑과 휴대전화와 같이 지불과 통신을 위한 ‘일상적 도구들’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걸으면 무목적으로 걷는 것이 훨씬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도구를 다 뺏기고 난 다음 걷기 시작하는 ‘귀양길’에 창조적 역작들이 나온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다.

가난한 철학자들이 아무것도 없이 도심의 이곳저곳을 그저 걸어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유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하였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들 소요학파가 그들의 걷기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치유와 통찰은 이렇게 쌓여가는 과정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