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 과학세상은 역발상으로 우리 삶을 유익하게 만드는 과학기술들을 다양한 실례들과 함께 소개합니다.
글.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속담이 있다.
급할수록 질러가야지 왜 돌아가라고 할까?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역설적 교훈이지만, 과학기술의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논리다.
‘급할수록 질러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바로 과학이기 때문이다.
지금 소개하는 ‘음펨바 효과(Mpemba effect)’와 ‘브라에스의 가설(Braess’s paradox)’은 상식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사례들이다.
얼핏 보면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현상들이지만, 좀 더 파고들면 완전히 상반된 답이 나오는 역발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물의 결합 구조가 음펨바 효과의 비밀
아직 추위가 물러가지 않은 요즘과 같은 겨울, 만약 당신이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그릇에 담아 실외에 가져다 놓은 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물이 빨리 얼까요? 차가운 물이 빨리 얼까요?’라고 물어본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가운 물’이라고 답할 것이다.
맞는 답이기는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정답은 ‘때로는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얼 수도 있다’이다.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낮은 온도에서 먼저 얼 수 있을까?
물론 펄펄 끓는 물이 얼음처럼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언다는 의미는 아니다.
30℃ 정도의 따뜻한 물과 10℃ 정도의 시원한 물을 얼릴 때 그렇다는 뜻이다.
이처럼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역설적 현상의 발견은 아프리카의 한 고등학생에게 의해서 비롯되었다.
1969년 탄자니아의 고등학생이었던 에라스토 음펨바(Erasto Mpemba)는 학교에서 끓는 우유와 설탕을 섞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실습을 하다가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년 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음펨바는 물리학자인 데니스 오스본(Dennis Osborne) 박사의 특강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강의 도중 음펨바는 오스본 박사에게 “같은 부피의 물을 냉동실에 넣었을 때, 높은 온도의 물이 낮은 온도의 물보다 더 빨리 어는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 생각한 친구들은 일제히 음펨바를 놀려댔지만, 오스본 박사만큼은 그의 질문에 주목했다.
이후 오스본 박사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음펨바의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임을 확인 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후 오스본 박사 외에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 역설적 현상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밝히려 노력하다가 불과 몇 년 전 싱가포르의 과학자들에 의해 음펨바 효과의 원인이 밝혀졌다.
원인은 바로 물의 수소결합과 공유결합의 상관관계에 그 비밀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물을 이루는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의 결합은 물을 끓이면 그 간격이 벌어지면서 수소결합 역시 길어진다.
이렇게 끓인 물은 냉각할 때 결합 간격이 다시 줄어들면서 축적했던 에너지를 방출하게 되는데, 뜨거운 물은 축적된 에너지양이 많아서 냉각 시 더 빠른 속도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증발과 대류, 그리고 전도와 같은 현상들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뜨거운 물이 식을 때 물이 증발하고, 이 증발로 인해 많은 열을 잃음과 동시에 물의 양도 줄어서 더 빨리 얼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음펨바 효과는 어린 고등학생에 의해 역사에 길이 남을 물리적 효과가 발견되었지만, 사실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언다는 사실은 이미 고대 과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성은 후대에까지 이어질 정도로 대단했던만큼,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때때로 더 빨리 얼 수 있다는 사실은 중세 시대까지 전해져 내려 왔지만, 직관적 판단과 배치되는 면이 있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수백 년 동안을 사람의 뇌리에서 잊혔다가 음펨바에 의해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뉴욕 42번가를 만든 브라에스 가설
음펨바의 효과만큼이나 역발상적인 사례는 교통 혼잡과 관련한 가설이다.
일반적으로 도로가 좁은 곳에 교통 혼잡이 발생할 경우 ‘도로가 좁은데 차는 많으니 교통 혼잡이 생긴다.
따라서 도로를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생각과 정반대의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독일의 수학자인 디트리히 브라에스(Dietrich Braess) 교수였다.
그는 도로를 넓히면 오히려 교통수요가 늘어나서 혼잡도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난다는 이른바 ‘브라에스의 가설’을 발표하여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과연 그의 가설이 맞았을까?
이에 대한 답은 뉴욕의 42번가 도로에서 찾을 수 있다.
브라에스의 가설이 적용된 대표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0년 뉴욕 주지사는 ‘지구의 날’ 행사를 위해 42번가 도로를 하루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42번 거리는 뉴욕의 도로 중에서도 가장 혼잡한 곳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상 최악의 교통 정체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폐쇄된 42번가에서 교통 대란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주변 교통의 흐름이 좋아지면서 뉴욕 시민들은 그날 새롭게 변신한 42번가의 모습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그 후 뉴욕시는 42번가 도로의 차량을 조금씩 제한하는 대신 보행자와 관광객을 위한 도보 공간을 차츰 늘려나갔다.
그 결과 자동차 통행이 대폭 줄어든 42번가는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특히 도보 공간의 확대는 ‘타임스퀘어 광장’과 ‘브로드웨이 거리’가 뉴욕과 미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처럼 브라에스 가설의 효과가 입증된 후 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교통 혼잡에 대한 대책으로 도로 축소를 도입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서울도 이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적용 지역은 영등포구의 영중로로서 이곳은 백화점 및 시장 등과 인접해 있고, 여의도로 가는 길목이어서 상습 정체 구간으로 유명한 도로다.
따라서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영중로의 차로를 줄이고 보행로를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