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Issue 02는 글로벌 기술 트렌드 및 해외 유망 기술을 소개하기 위해 (주)스페이스점프와 협력하여 게재하고 있습니다.
▲ 글. 이형민 대표
(주)스페이스점프
밀라노, 파리, 뉴욕 등에서 열리는 패션위크와 같은 화려한 축제의 뒤편에서는 항상 동물학대를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동물에 대한 윤리의식이 높아지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으며, 기업에도 윤리적인 경영 철학이 확산되면서 패션업계에서도 ‘비건(Vegan)’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비건은 원래 우유, 치즈 등 동물성 원료를 아예 섭취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만, 산업에서 비건은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페트병과 같은 플라스틱 소재를 재활용하거나 친환경 소재를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는 업사이클링의 개념까지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건 패션은 특정 기업만이 아닌 전반적인 패션업계의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세계 4대 패션위크 중 하나인 런던 패션위크는 2018년 9월부터 모피를 퇴출시켰고, 유명 패션 브랜드들 역시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잇따라 비건 패션을 선언하고 나섰다.
2016년에는 스텔라 맥카트니, 조르지오 아르마니, 캘빈 클라인 등이 모피 사용 중지를 선언했고, 마이클 코어스는 가죽 제품 생산 중단을 발표했다.
구찌, 비비안웨스트우드, 마르지엘라, 버버리, 베르사체, 코치는 퍼 프리(Fur Free) 정책을 선언하는 등 패션계의 비건 열풍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응하여 세계적 동물보호단체 PETA 프랑스 지부는 2019년 3회째를 맞은 비건 패션 프라이즈를 통해 이들 브랜드를 ‘럭셔리 패션 모멘트’로 선정하고 비건 패션으로의 움직임을 지지하고 있다.
동물학대 반대에서 시작된 ‘비건 라이프 스타일’은 이제 윤리적 소비 개념이 더해지면서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 의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에 기업윤리 중 하나인 친환경 경영까지 더해지면서 이제 비건 제품은 패션 산업에서 분명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패션 제품들
패션 아이템 중에서 신발은 비건과는 꽤 거리가 있는 상품이다.
신발을 만드는 소재부터 만드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신발이 얼마나 동물을 학대하고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가죽과 같은 동물 소재는 물론이고, 고무, 천 등의 재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신발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접착제 등 수없이 많은 오염원들이 배출되고 있다.
그러나 반가운 소식은 이런 신발 업계에서 비건을 내세우고 있는 기업이 탄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여성화 로티스(Rothy’s)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플랫 슈즈로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회사는 폐페트병을 구슬만한 작은 결정으로 만들고 이를 녹여 추출한 폴리에스터 섬유로 신발 상단을 직조해 만든다.
3개의 페트병으로 신발 1개를 만들 수 있는데, 현재 3,000만 개 이상의 폐페트병을 사용해 비건 신발을 만들어 냈다.
바닥은 탄소가 포함되지 않은 고무와 독성이 없는 접착제를 사용하고, 제품 포장재도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는 등 완벽한 비건 제품을 생산한다.
통풍이 잘되고 물도 잘 빠질 뿐만 아니라 발이 편해 로티스 신발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입소문을 통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로티스는 2018년에 매출이 무려 1,600억 원에 달했고, 최근 골드만삭스로부터 약 400억 원을 투자받기도 했다.
로티스처럼 폐페트병을 활용해 가방을 만들어 내고 있는 회사 ‘맷앤넷(Matt and Nat)’도 비건 콘셉트로 많은 사람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007년부터 ‘Live Beautifully’라는 모토로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맷앤넷은 동물 가죽 등의 동물성 소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가축의 가공 및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요소를 배제하고, 폐페트병에서 뽑은 실을 안감으로 사용하는 등 100%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을 활용해 가방을 만들어 낸다.
폐페트병뿐만 아니라 버려진 트럭과 자동차 등을 이용해 가방을 만드는 스위스의 기업 ‘프라이탁’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취리히의 특성에 맞게 ‘잘 젖지 않는 가방’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처음 사업을 시작한 프라이탁은 현재 전 세계 350개 매장에서 약 5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등 업사이클링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이 되었다.
동물 털을 꽃으로 대체한 친환경 ‘비건 패딩’
동물 복지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크게 높아짐에 따라 이제는 지속가능하고보다 윤리적인 패션 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또한 탈모피 운동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동물의 털 대신 이불, 베개 등 재생 가능한 침구류의 충전재를 재가공해 사용하는 ‘착한 패딩’이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윤리적 다운 인증(Responsible Down Standard, RDS)’을 받은 패딩 제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RDS는 노스페이스가 2014년 미국 비영리단체인 텍스타일 익스체인지와 친환경 인증업체인 컨트롤유니온 등과 함께 만든 제도다.
다운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에 걸쳐 거위나 오리를 학대하지 않고 동물 복지를 고려한 ‘착한 다운 제품’에만 인증을 부여한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깃털(우모)을 채취하거나 강제 급식 등 동물 학대와 관련된 행위를 하지 않은 원재료만 가공한다는 것을 인증한 것이다.
한편 친환경 소재의 아이템으로 잘 알려진 패션 브랜드 판게아(PANGAIA)는 ‘플라워다운(FLWRDWN)’ 패딩을 출시해 화제다.
놀랍게도 플라워다운은 동물의 털 대신 야생화를 사용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패딩점퍼는 야생화를 건조해 만든 소재와 토양 속 박테리아에 의해 쉽게 분해되는 바이오폴리머(Aerogel Biopolymer), 그리고 에어로겔(Aerogel) 등을 조합해 패딩의 충전재로 사용한다.
‘지구에서 가장 가벼운 고체’로 알려진 에어로겔은 단열성이 뛰어나 의류뿐만 아니라 건축 분야에서도 주목받는 소재다.
플라워다운의 충전재는 요즘 유행하는 비건 소재일 뿐만 아니라 자연 분해되기 때문에 매우 친환경적인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장재와 라이닝 등에는 아직 재활용 나일론과 폴리에스터를 쓰고 있으므로 플라스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의류라고 볼 수는 없다.
플라워다운 컬렉션은 모자가 달린 쇼트패딩 재킷과 롱패딩 재킷으로 구성돼 있다.
쇼트패딩 재킷은 블랙과 화이트, 롱패딩 재킷은 네이비 컬러로 제작됐으며, 롱패딩 재킷의 경우 소매 부분에 지퍼가 적용되어 베스트처럼 연출할 수 있다.
플라워다운 재킷은 현재 판게아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프리오더를 진행 중이다.
가격은 쇼트패딩 재킷은 550달러, 롱패딩 재킷은 750달러로 구성되어 있다.
판게아는 지난 10여 년간 이탈리아 연구개발센터에서 친환경 소재에 관해 다방면으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앞으로 플라스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100% 친환경 소재의 의류가 탄생할 그날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100% 식물로 만든 지속가능한 ‘비건 티셔츠’
이제 우리에게 플라스틱의 환경적 위험성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옷(패브릭)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우선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수많은 물과 이를 통해 탄생하는 오염수의 심각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고, 다음으로 옷이 재활용되지 않고 쓰레기로 버려져 매립되는 것의 환경적 문제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의 자료에 따르면 매년 1천 5백만 톤의 직물이 매립지에 버려지고 있으며 이는 전체 매립 폐기물의 7.6%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 직물에는 합성섬유가 포함되어 있어 분해되는 데 최소 수백 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최근 옷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 영국의 아웃도어 의류 제조업체인 ‘볼레백(Vollebak)’은 100% 식물성 재료로 만든 생분해 티셔츠 일명 ‘비건 티셔츠(Vegan T-shirt)’를 출시해 주목받고 있다.
볼레백의 비건 티셔츠는 FSC(Forestry Stewardship Council)와 세계 최대 산림인증시스템(PEFC)에서 지속가능한 것으로 인증한 유칼립투스, 너도밤나무 등의 목재 펄프로 만들어진다.
놀랍게도 자연 상태에서 12주 후에 생분해가 되기 때문에 땅에 묻어 퇴비화가 가능하고 식물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티셔츠 전면에 적용한 인쇄용 염료는 화학 염료를 사용하지 않고 조류로 만든 녹색 분말에 수성 바인더를 혼합한 조류 잉크를 사용했다.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산화되어 색이 매일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땅에서 탄생해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섭리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100% 식물로 만든 것들은 더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우리도 더욱 친환경적인 제품을 개발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더욱 확장해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