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2019년 9월 21일 서울 대학로에서는 ‘기후 위기 비상행동’ 집회가 열렸다.
수천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과학자와 관련 분야 종사자들도 다수 참가했다.
아스팔트 위의 과학자는 낯설다.
과학자들이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좀처럼 보지 못했던 터다.
그보다 앞서 9월 10일에는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등 과학자, 교수, 원로 등 지식인 664명이 정부에 기후 위기에 적극 대응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고, 이어 행동에 나선 것이다.
과학자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었다.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5천 건에 달하는 집회가 동시다발로 열렸고 400만 명이 참가했다.
1979년 제네바에서 세계기후회의가 열린 지 40주년 되는 날인 11월 5일에는 세계 153개국 과학자 1만 1,258명이 참여하여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오리건주립대(OCU) 윌리엄 리플(William J. Ripple) 교수와 크리스토퍼 울프(Christopher Wolf) 교수가 주도한 세계과학자연합은 바이오사이언스(BioScience)지에 성명서를 기고했다.
이들은 “기후 변화가 많은 과학자들이 예측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당장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과학자들이 즉각 실천을 요구한 6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화석 연료를 저탄소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남은 화석 연료를 그대로 땅속에 보관할 것 △메탄, 그을음, 수소불화탄소 등 기후 오염물질 배출을 신속하게 줄일 것 △산림, 초원, 습지, 기후 변화가 아니라 기후 위기,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지구 가열 생활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맹그로브 숲 등 생태계를 복원, 보호할 것 △식물성 식품을 더 많이, 동물성 식품을 더 적게 섭취할 것 △탄소 없는 경제로 전환, 생태계 개발을 억제할 것 △사회 경제 정의를 보장할 것 등이다.
과학자들을 움직이게 한 지구의 과거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는 수십 년간 계속되었지만 과학자들의 경고가 이처럼 구체적이고 단호한 전례가 없었다.
지구가 이상 조짐을 보이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과학자들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 저자 조너선 닐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 때문에” 행동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이 지구의 과거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잘 알게 되었고, 그 결과 지구가 이미 수차례에 걸쳐 급격한 기후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린란드 빙하에서 산출한 지난 10만 년 동안의 기온 변화를 보면, 지구의 기온은 1만 3천 년 전까지 요동치다가 안정되었다.
그런데 이후 1만 년 동안 500세대에 걸쳐 변화했던 것보다 최근 50년 사이에 더 크게 변화했다.
산업화 이후 인간의 문명이 지구에 작용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그간 기후 변화를 경고하는 목소리에는 언제나 지구 온난화는 허상이고, 혹은 온난화가 진행된다고 해도 지구적인 규모로 일어나는 기후 변화에 인간이 미친 영향은 미비하다는 반론이 따라 붙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각종 지표와 다양한 출처의 보고서들이 확실한 경고음을 내고 있다.
2019년 9월은 기후 위기에 경고음을 확실히 울릴 기록을 세웠다.
미국 해양대기청 NOAA에 따르면 2019년 9월 지구 평균 기온은 15.95도로 20세기 평균에 비해 0.95도 높았으며, 관측사상 가장 더운 9월이었다.
북극의 얼음은 더워지는 지구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9월은 북극의 얼음이 가장 적어지는 때인데, 2019년 9월 북극의 얼음은 1979년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면적이 작았다.
연구진들은 2044년~2067년 사이에 얼음 없는 9월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엔 산하 과학자문단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에서 2019년 지구 평년 기온은 관측 이래 역대 최고로, 1850년에서 1900년 사이 평균에 비해 섭씨 1.1도가 높았다.
이는 이미 파리협약이 목표로 한 산업화 이전의 1.5도 이내로 온도 상승을 제한한다는 수치에 근접한 것이다.
지구는 확실히 더워지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2019년 올해의 단어로 ‘기후 위기(Climate emergency)’를 꼽았다.
옥스퍼드 사전 측은 위기라는 단어는 보건이나 가족 등의 단어와 어우러져 쓰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기후와 함께 쓰인다고 밝혔다.
환경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와 관련한 용어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기후는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했으며, 지구는 온난화 되는 게 아니라 가열(Heating)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 상황을 제대로 보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자연 재해가 전 지구적인 정치 문제로
도시에서는 자연을 느끼기 어렵다.
웬만하면 수도에서 물이 끊기지 않고, 전기 역시 그렇다.
태풍이나 홍수 피해 역시 해안가나 산간 지역에 비해 덜 민감하게 느낀다.
닐 셔스터먼의 소설 < 드라이 >는 캘리포니아의 물 부족을 소재로 한 재난 소설이다.
계속되는 가뭄과 산불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태였지만, 정부는 잔디밭 살수 금지, 수영장 급수 금지 등의 미온적인 정책으로 대응하다가 파국을 맞게 된다.
수도꼭지에서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게 되자, 도시는 민낯을 드러낸다.
외부에서 물을 끌어오지 못하면 사막과 다름없는 곳이다.
마트의 생수가 동나고 사람들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생사의 기로에 놓여 물을 쫓는 ‘워터 좀비’화 된다.
가상이지만 캘리포니아 지역의 극심한 가뭄, 라스베이거스처럼 신기루 같은 도시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현실화 될 수 있는 일이다.
생명을 좌우할 물 문제의 해법은 덮어두고 잔디나 수영장 물을 단속하는 대책 앞에서, 기후 위기에 일회용 포장재 규제를 두고 씨름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재난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며 심각한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소설 속의 일만이 아니다.
몇 년 째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난민 문제는 2010년 러시아를 강타한 가뭄이 그 원인 중 하나다.
러시아 밀 생산량이 줄어 세계적으로 밀 가격 폭등했던 것이다.
국지적인 이상 현상이라고 생각되는 가뭄이나 홍수, 태풍이나 허리케인 피해가 우연이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재난을 야기한다.
때문에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개인의 실천이나 사회 운동만이 아니라 국가 주도의 책임 있는 정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지속가능성 리더십 연구소의 폴 길딩 연구원은 ‘기후 위기에 대한 정의’라는 보고서에서 “우리가 사회와 경제 등을 관리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직면한 위험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며 “기후 위기 사태를 맞아 국가의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하는 전시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국 정부가 전시와 같은 비상 체제에 돌입하면 대처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탈리아, 기후 위기 의무 교육
미국 뉴욕주, 캘리포니아주, 하와이주에 이어 캐나다 정부도 빠르면 2021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에 도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영국의 대학들은 기후 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비정부 기구를 결성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지금까지 7천여 개의 대학이 기후 위기에 대응할 대책 수립에 참여했다고 한다.
한편 이탈리아 정부는 세계 최초로 주당 1시간 씩 기후 변화 관련 교육을 의무화하기로 결정했다.
유엔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1990년 리우정상회담 이후 2018년까지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를 24번 개최했다.
2019년 25차 회의에 이어 2020년 영국에서 열리는 26차 회의가 지구의 온도 변화를 1.5도로 잡아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연 과학자들이 느끼는 위기감만큼 각국 정부의 정책이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
과학자들의 성명서는 말한다.
미래가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지 말고, 미래를 어떻게 만들기 위해 실천해야 할 때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