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데이터 공정사회를 꿈꾸며
▲ 글. 천승훈 팀장
한국교통연구원 AI·빅데이터연구팀
우리나라 빅데이터 환경은 꽉 막힌 고속도로와 같다.
‘1년치 데이터를 받는 데 1년 걸린다.’, ‘데이터는 우정이다’라는 우스갯소리는 이 시대의 현실이다.
이제는 협력적 데이터 경제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데이터가 순환되는 세상이 만들어져야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
빅데이터가 세상을 바꾸다
빅데이터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중국 항저우시는 빅데이터 기반의 실시간 교통관리 시스템인 ‘City Brain’을 구축하여 도로 평균속도 15% 증가, 사고 대응시간 평균 7분 단축, 버스 이용률 17% 증가 등 다양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미국은 국가 전체 농지의 3분의 1을 대상으로 빅데이터 기반의 최적 농법 가이드 시스템인 ‘스마트 팜’을 활용하여 투자비용을 15% 감소시키고 농작물 생산량을 13% 늘리는 효과를 보고있다.
우리나라도 통신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심야버스 노선을 운영한 ‘올빼미 버스’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빅데이터를 잘 활용한다면 우리 사회 전반에 이로운 점이 참 많아 보인다.
우리나라 빅데이터 활용 실태
여기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나라 빅데이터 성공사례를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돌아온 답은 어떠했는가? 아마 대부분 선뜻 답하지 못하거나 몇 개의 사례를 알고 있는 정도에 그쳤을것이다.
빅데이터는 분명 우리 사회에 존재하며, 이를 잘 활용하면 좋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안다.
그런데도 우리가 체감할 만한 빅데이터 성공사례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과연 우리는 빅데이터 활용을 안 하고 있는걸까? 못하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빅데이터 활용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태다.
왜냐하면 활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가 내 손안에 없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가공 기술과 시스템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해감에도 불구하고 재료 자체가 없으니 성공적이고 풍부한 결과물이 나올 리 만무하다.
빅데이터가 없다는 상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빅데이터 시대로 접어들면서 빅데이터에 대한 가치가 급등하였고 빅데이터 주도권을 거머쥔 몇몇 빅데이터 공룡 기관들은 그야말로 철옹성처럼 데이터의 공유를 막아 버렸다.
빅데이터에 대한 가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자신들이 보유한 빅데이터는 오직 자신들의 이익과 성과만을 위해 사용할 뿐, 데이터 수요자들을 위한 데이터 제공은 철저하게 제한하거나, 설혹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데이터를 통한 새로운 가치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무의미한 통계적 데이터들만을 공유하여 왔다.
현 상황은 빅데이터 보유 기관들의 이기주의적인 사일로 효과(Silo effect)와 개별기관의 성과주의로 인해 자유로운 데이터 공유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불어 정비되지 않은 법·제도들은 빅데이터 보유 기관들이 데이터 공유를 피하기 위한 그럴싸한 핑곗거리로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빅데이터 독점·사유화 현상에 따라 데이터가 개별 기관에서만 독자적으로 활용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며, 데이터 소비자는 공급자 위주의 데이터, 활용 가치가 낮은 데이터를 제공받아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버스’라는 앱을 기억하는가? 과거고등학생이 만들었다고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이 서울버스앱은 결국 대중교통 카드라는 데이터가 세상에 유통되었기에 일반인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협력적 데이터 경제 거버넌스 기반 빅데이터 혁신생태계 구상
현 시점에서 데이터가 물 흐르듯이 각계각층으로 흘러 들어가기 위해서는 협력적 데이터 경제 거버넌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협력적 데이터 경제 거버넌스는 데이터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경제주체와 새로운 일자리들이 만들어질수 있는 그야말로 혁신적인 데이터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필수요건이다.
협력적 데이터 경제 거버넌스의 주체는 데이터 수집기관, 데이터 처리 및 가공기관, 데이터 활용 마켓, 데이터 소비자로 구분할 수 있으며 주체별 역할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데이터 수집기관(1차 데이터 산업)은 거버넌스의 근간이 되는 주체로서 수집된 원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수집·관리하고, 데이터 수요기관에 원시 데이터와 가공 데이터를 원활히 제공할 수 있는 자동화된 물리적 환경을 구축한다.
거버넌스 기반에서 데이터 오너십 문제 해결을 통해 전통적인 개별 데이터 판매 방식의 수익구조에서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데이터 처리 및 가공기관(2차 데이터 산업)은 데이터에 가치를 입히고 데이터 표준관리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데이터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취득된 원시 데이터를 단순 통합하는 것이 아닌 데이터의 정보화·가치화를 통해 데이터 활용성을 다양화·극대화한다.
또한 데이터 샌드박스 운영을 통해 데이터 융복합 환경을 마련하여 법·제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한다.
데이터 표준관리 체계를 구축하여 데이터 품질관리와 데이터 간 상호연계 환경을 마련한다.
더불어 데이터 활용 마켓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서비스에 최적화된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데이터를 원활히 데이터 활용 마켓에 연계한다.
데이터 활용 마켓(3차·4차 데이터 산업)은 소비자가 요구하는 목적에 따라 소비자 맞춤형 데이터를 생산해 내는 주체이다.
데이터 활용 마켓은 데이터 마켓, 솔루션 마켓, 콘텐츠 마켓으로 구분되며, 별도로 데이터 거래소가 존재한다.
데이터 마켓은 가공된 데이터를 소비자의 요구조건에 따라 맞춤화된 데이터를 생산·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솔루션 마켓은 공공의 정책의사 결정 솔루션에 적합한 데이터를 생산·제공하고, 민간기업에서 개발한 서비스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지원한다.
콘텐츠 마켓은 인공지능, 가상환경 등 다양한 시장의 콘텐츠 개발을 지원할 수 있는 데이터 지원환경을 구축한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거래소는 데이터 직거래, 판매대행 등 데이터 거래 환경을 제공한다.
데이터 거래제도와 가격 산정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데이터 바우처 제도와의 연계를 통해 데이터 거래 활성화를 유도한다.
데이터 소비자는 공공과 민간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공공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공공 서비스의 품질 향상을 도모하고, 민간은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통한 수익 창출을 도모한다.
공공의 정책부서에서는 가치화된 정책지표와 정책 의사결정 지원 솔루션을 활용하여 데이터 기반의 정책을 수행한다.
공공의 연구기관에서는 생산된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굴하며,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솔루션과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한다.
민간 부분에서는 데이터와 서비스 지원을 통해 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신규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며, 서비스 수행을 통해 발생하는 데이터를 공유하는 순환체계를 구축한다.
데이터 소비자는 2차·3차·4차 기관이 제공하는 데이터 및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본인들이 불편했거나 필요로 하는 요구사항을 제시함으로써 데이터의 품질 개선 및 실용성을 높이는 선순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게 데이터 경제 거버넌스가 구축되게 되면 데이터 수집기관에서부터 데이터 소비자까지 함께 편익을 누리고 빅데이터 시장이 활성화되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빅데이터 혁신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맺으며
데이터는 이용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고, 새로운 인사이트가 도출될 수 있다. 마냥 데이터를 모아두기만 해서는 처치 곤란한 짐이 될 뿐이다.
데이터가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로서의 데이터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
데이터는 재료이다. 우리가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다면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신선한 재료를 확보하는 일이다.
재료가 신선하면 그 요리의 맛은 배가 된다.
이처럼 데이터는 맛있는 요리, 즉 우리가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한 기본적인 재료가 된다.
이러한 재료가 제대로 유통되어야만 다양한 서비스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현재와 같이 일부 데이터 수집기관들만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린 데이터들을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협력적 데이터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처럼 데이터 수집기관들은 단순히 데이터를 파는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구조화·가치화시켜서 데이터를 통한 새로운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데이터가 세상 곳곳에 흘러 들어가게 되면 과거 고등학생이 만든 서울버스앱처럼 누구라도 새로운 레시피를 통해 새로운 창의적인 요리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세상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4차 산업혁명 시대 원유로서 데이터의 진면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공정사회가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꿈꾸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