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R&D 나침반 - 빅데이터로 뽑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의 대응 전략 아이템

R&D 나침반은 최신 과학기술의 이슈와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글. 류준영 기자(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 및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가) 제외 결정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산업과 기술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해 우리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품목을 의도적으로 선정했다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에 정부에선 대일 의존도를 낮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추진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정책의 부재라기보다는 그간 정책의 목표·전략을 현실화시킬 단계별 접근 구조가 미흡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선 소재·부품·장비 핵심 요소 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분야 핵심 품목 R&D에 5조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지난달 22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 같은 결과값을 발 빠르게 도출하고 발표했다.

KISTI는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앞으로 집중해야 할 소재·부품·장비 분야 ‘위기대응 전략 아이템 10선’을 선정하였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10개 품목 대일 의존도 약 80~90%대

KISTI가 선정한 전략 아이템은 △고순도불화수소 △수산화니켈 △평판 디스플레이용 블랭크 마스크 △반도체 제조용 포토레지스트 △실리콘 웨이퍼 △수소연료 저장용 탄소섬유 △반도체 제조용 에폭시 수지 △석영도가니 △웨이퍼 가공용 CMP 장비 △포토레지스트 도포기·현상기이다.

KISTI에 따르면 대일 수입 비중이 30% 이상이고 수입액이 1,000만 달러(약 117억 원) 이상인 품목 767개에 대한 수출입정보, 대일 수입비중, 무역수지 등 광범위한 빅데이터를 첨단 계량 정보 분석기술로 분석했다.

또 내외부 도메인 전문가 20여 명이 정성적인 스크리닝을 수행, 최종 10개 전략 아이템을 도출했다.

위기대응 전략 아이템 10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고순도불화수소’는 플루오린과 수소의 화합물이다.

반도체 에칭·세정 공정에 주로 쓰이는 재료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저순도 불화수소가 사용 가능한 공정에는 중국산·한국산 액체 불화수소를 쓰고, 민감한 공정에는 일본산 초고순도 기체 불화수소를 사용해 왔다.

대일 수입 의존도는 41.9%(2018년 기준, 이하동일)다. 일본은 정제 기술, 유독물질 취급·수송에 강점을 지녀 이 기술을 과점할 수 있었다.

반도체 고순도불화수소는 독성이 있어 장기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재고 보유기간이 짧다.

이에 따라 적시 공급이 필수인 만큼 수출 규제 시 타격이 크다.

‘수산화니켈’은 스마트폰, 전동공구, 디지털카메라, 하이브리드 차, 전기차용 이차전지 양극활성물질 및 첨가제로 사용되는 원료다.

니켈염 수용액에 수산화 알칼리를 가해 생성된 녹색의 결정성 무기화학물이다. 대일 수입 의존도는 98%에 이른다.

수산화니켈은 2015년 이후 대일 수입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나 국내 생산이 거의 없어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설 경우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평판 디스플레이용 블랭크 마스크’는 석영유리 기판에 금속막과 포토레지스트가 도포된 상태의 마스크를 말하며, 패턴이 노광되기 전의 마스크를 말한다.

주로 극자외선(EUV) 공정에 서 사용한다. EUV 공정은 초미세 반도체 제조를 위해 가장 주목받는 공정 중 하나이다.

현재 블랭크 마스크는 일본의 호야(HOYA)가 독점 공급중이다. 삼성전자 반도체용 블랭크 마스크 납품 점유율이 60%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대일 수입 의존도는 83.5%이다.

KISTI 측은 “블랭크 마스크 시장은 니치 마켓(반도체 시장의 1% 미만)으로 시장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고객사가 가격에 대해 둔감하고, 경쟁사의 진입매력도도 떨어진다”며 “아날로그식 수작업이 많고 기술자 확보가 어렵다”고 말했다.

호야의 경우 대부분의 기술자 육성이 내부에서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 제조용 포토레지스트’ 반도체 노광 공정 이전에 웨이퍼에 도포되는 소재로 빛을 인식하기 위한 감광재료이다.

400여개 반도체 공정 중 30여 개에 포토레지스트를 사용한다.

전 세계 포토레지스트 시장은 일본JSR(24%), 신에츠화학(23%), 도쿄오카공업(22%), 스미토모화학(16%), 후지필름(9%) 등 대부분 일본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일 수입 의존도는 93.2%이다.

KISTI 관계자는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EUV용 소재에만 해당되므로 당장은 국내에서 소모되는 물량이 적어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이나 기술장벽이 높기 때문에 향후 삼성전자 등이 7㎚ 제품을 본격 생산할 경우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 웨이퍼’는 반도체 소자 제조용(60%)이나 태양전지 재료(40%)로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대일 수입 의존도는 52.8%로, 관계자는 “다양한 공급처가 있지만 700여 개 세부 공정마다 웨이퍼가 특화돼 있어 이를 변경하면 최적화에 2~6개월이 소요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글로벌 웨이퍼의 절반 이상을 일본 기업이 공급하고 있고 일본 업체의 웨이퍼 제조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수출 규제 품목에 추가될 경우 향후 국내 반도체 업사이클시 리스크가 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수소연료 저장용 탄소섬유’의 경우, 아직까지는 수소연료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아 큰 영향이 없으나 수소차 등 수소경제의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집중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게 KISTI의 설명이다.

대일 수입 의존도는 39.1%이다.

‘반도체 제조용 에폭시 수지’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87.4%이다.

반도체 EMC용 에폭시 수지의 경우 일본 기업인 니폰 카야쿠와 미츠비시케미칼은 기술격차를 무기로 내수가격 대비 2배 가까이 높게 수출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석영 도가니’는 고순도 석영으로 만들어진 용기 또는 용융포트로, 주로 반도체 및 광전지 산업용 단결정 실리콘을 생산하는데 사용된다.

대일 수입 의존도는 99.2%이며, 국내에는 생산기업이 없다.

‘웨이퍼 가공용 CMP(반도체 미세화공정에 쓰이는 평탄화) 장비’는 반도체 표면을 화학적·기계적 방법으로 평탄화 하는 공정에 사용되는 장비이다.

실리콘 웨이퍼 제조, 산화막 CMP 공정, 금속막 CMP 공정 등에 응용되며 점차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선진국과 기술격차가 커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다.

대일 수입 의존도는 88.9%이다.

우리나라는 해외 선진기업 대비 75% 수준의 기술을 보유했다.

CMP 장비의 중요도가 높아지는 상황이나 현재 대부분 수입에 의존 중이다.

‘포토레지스트 도포기·현상기’는 웨이퍼 표면에 감광액을 균일하게 도포한 후, 빠르게 회전해 균일한 두께의 얇은 포토레지스트(감광액·PR)막을 형성하는 기계이다.

일본 텔(TEL)사가 반도체용 도포·현상기 세계 시장의 87%를 독점하고 있다.

국내기업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98.7%에 이른다. 국내에선 세메스가 디스플레이용 도포·현상기를 생산하고 있는 수준이다.


한국 반도체 장비 국산화 중장기적 기술개발 필요

이번 분석을 주도한 김은선 KISTI 데이터분석본부장은 대일 수입 의존도 해소가 어려운 이유로 △일본과의 기술 격차 △일본의 세계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 극복 어려움 △반도체 기술의 수명 주기(3~5년) △지속적인 R&D 필요 △제품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음 등을 꼽았다.

김 본부장은 “이번 분석결과에서 보듯 일본의 수출 규제 이슈가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되더라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국내외 공급망의 부가가치 사슬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통해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존재하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국산화 대체 또는 공급선 다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한국 소재 부품 업체들은 국산화 확대라는 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