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이 본 세상?
아트 & 사이언스는 음악, 미술, 건축, 조형물 등 예술 속에 숨어 있는 과학기술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를 천재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상대성이론은 어려운 수식으로 인해 이해하기 어렵고, 피카소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기괴한 그림으로 인해 흔히 말하는 ‘잘 그린 그림’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다빈치 이후 멀어질 대로 멀어진 과학과 예술에서 두 천재의 업적은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과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두 사람의 업적 사이에는 과연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인문주의와 수학이 탄생시킨 원근법
화가는 세상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과학자는 그림이 아니라 수식으로 나타낼 뿐 관심사는 화가와 같다.
화가와 과학자는 자신이 보거나 생각한 세상을 나타내기 위해 그림과 수식이라는 다른 표현 수단을 사용했을 뿐 탐구 대상은 같다.
그래서 화가와 과학자가 서로 상대방의 영역에 영향을 주거나 관심을 가지는 일이 종종 일어났으며, 다빈치와 같이 두 영역에서 모두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 인물도 등장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해 고대인들이 어떻게 인식했는지는 원시 동굴벽화나 무용총의 < 수렵도 >와 같은 무덤 벽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가까이 있는 물체를 멀리 있는 물체보다 크게 표현하거나 앞의 물체가 뒤의 물체를 가리는 것으로 원근을 표현하려 했다.
고대그리스의 폼페이 벽화처럼 어느 정도 비례에 맞춰 표현한 작품들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러한 작품조차도 광학적 원근법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단지 신분이나 계급의 중요도에 따라 크기를 달리 그리는 개념적 원근법을 적용한 그림이 많았다.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원근법은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Giotto)의 < 영광의 성모(1310) >에서 나타난다.
입체감이 느껴지는 그의 그림은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5세기가 되자 이탈리아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가 유클리드의 광학이론과 기하학을 바탕으로 선형 원근법을 탄생시킨다.
브루넬레스키는 건물의 투시도를 통해 원근법의 놀라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을 이론적으로 도입했을 뿐 남아있는 작품은 없다.
기하학적 원근법 적용한 최초의 작품으로 꼽히는 것은 마사초(Masaccio)의 〈성삼위일체(1428)〉다.
이 그림은 배경이 마치 실제 벽인 듯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원근법을 잘 활용하였다.
그리고 미술사에 있어 원근법을 과학적으로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한 인물로 다빈치(da Vinci)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선형 원근법을 적용한 < 최후의 만찬(1497) >뿐만 아니라 공기 원근법을 활용한 < 모나리자(1503~1506) >에 이르기까지 원근법의 달인이었다.
특히 다빈치는 < 모나리자 >에 멀리 보이는 배경일수록 빛의 산란으로 인해 뿌옇게 보이는 현상인 공기 원근법을 활용해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의 탄생
화가들이 원근법에 매료된 것은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화가 뒤러(Dürer)는 「화가 수칙(1538)」을 통해 화가는 기하학의 원리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이렇듯 원근법은 미술과 과학의 협업으로 탄생한 미술사의 위대한 업적이었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원근법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 풀밭 위의 점심(1863) >에서 마네(Manet)는 관습적으로 따르던 원근법을 탈피하려 하였다.
풀밭 위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과 목욕하는 여인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인물들을 같은 그림 속에 배치해 마치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사람을 그냥 옮겨다 모아 놓은 것처럼 그렸다.
전통적인 원근법에 대한 화가들의 도전은 이어졌다.
세잔(Cézanne)은 < 과일 바구니 정물(1888~1890) >에서 하나의 그림 안에 다양한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본 것을 나타냈다.
화가의 위치에 따라 공간이 어떻게 변하는 지를 그림에 표현하려 한 것이다.
또한 모네(Monet)는 < 루앙 성당(1892~1893) > 연작을 통해 정지된 장면만 표현했던 그림의 속성을 극복하고 시간의 연속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사차원을 표현하려고 한 듯 느껴지는 화가들의 이러한 노력은 피카소(Picasso)에 와서 결실을 맺는다.
피카소는 시간과 공간을 보는 새로운 인식을 통하여 원근법에서 탈피한 < 아비뇽의 처녀들(1907) >이라는 획기적인 작품을 탄생시킨다.
사실 < 아비뇽의 처녀들 >은 아름답기는커녕 기괴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르네상스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인체 비례와 일점 원근법을 과감하게 파괴한 피카소의 놀라운 창의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점에서 본 것을 한 화면에 표현하기 위해 마치 초등학생의 그림처럼 눈과 코가 삐뚤어진 여인의 얼굴을 그린 것이다.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아인슈타인
피카소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전통적 관념을 거부하며 표현의 자유를 개척해 낼 때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에서 비슷한 일을 해낸다.
< 아비뇽의 처녀들 >과 비슷한 시기인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로운 역학체계를 세운다.
이 이론이 혁명적인 이론이라고 불리는 것은 당시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버리고 상대적인 시공간(Space-time) 개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누구나 절대시간과 절대 공간의 개념을 당연하게 여겼다.
우주공간 어디에서나 시간은 동일하게 흘러가며, 동일한 크기의 자는 어떤 좌표계에서 측정해도 동일한 길이로 측정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것이 너무나 자명하다고 여겼던 뉴턴은 이것을 자연에 내재된 본성으로 여기고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을 바탕으로 자신의 역학법칙을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뉴턴의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는 과학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준 마흐(Mach)다.
아인슈타인은 마흐가 제안한 상대 시간과 상대 공간의 개념을 도입해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와 맥스웰 방정식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특수상대성 이론을 주장한다.
즉 어떤 관성계에서나 빛의 속력이 일정하다고 가정함으로써 세상을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천상계와 지상계를 구분해 보던 고전적 관점은 르네상스에 들어서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화가들은 원근법을 발명해 세계를 좀 더 정확하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물리학자들은 갈릴레오와 뉴턴의 고전 역학을 통해 물체의 운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학문적 성취는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간 전통으로 이어졌고, 과학적 권위로 굳어졌다.
하지만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은 그러한 전통과 권위에 과감히 반기를 들고 새로운 시대를 연 진정한 혁명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