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2

02 -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 산업의 현황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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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최리노 교수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육성하기 위해서는 고급 전문 인력의 유치와 육성이 필수다.

기존의국내 중소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M&A를 통해 대형화하거나 해외 동종기업의 국내 유치 등을 통해 기술과 인력이 들어오도록 자본을 투자하여야 한다.

또한 발전한 국내 소자기업들과 협력과 관계정립을 통해 새로운 산업생태계의 구성이 필요하다.



얼마 전 일본의 소재 부분 무역도발은 여러 방면으로 우리나라에 충격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던 반도체 부분에서 해외의 소재와 장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반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형성하게 되었다.

반도체 산업은 여러 분야로 나뉠 수 있다.

데이터의 기억을 전담하는 ‘메모리’와 처리를 담당하는 각종 ‘시스템IC 소자’와 같은 반도체 소자를 생산하는 소자 산업과, 이러한 소자의 생산을 가능하게 만드는 후방 산업인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이 있다.

또한 각종 시스템 IC의 회로를 설계하는 소자설계 부문도 팹리스 산업으로 존재한다.

세계 반도체 소자 시장규모는 약 540조 원이고 그 중 메모리는 전체의 약 36%를 차지한다.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체 반도체 소자 기업들 중에 2, 3위를 차지를 차지하고 있고 전체 메모리 생산량 중 DRAM의 경우 75.5%, NAND의 경우 64.9%를 생산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기업들이다.

그러나 반도체 소재와 장비 시장을 보면 상황이 매우 다르다.

반도체 소재 시장은 작년 기준 세계적으로 51.9조 원 정도이고 국내 시장도 9.8조 원 정도이다.

그중 국내 기업이 생산하고 있는 양은 4.9조 원이며, 이 중 많은 부분은 저부가가치의 소재들이다.

반도체 장비 시장도 마찬가지로 세계 시장은 작년 기준 74.5조 원 정도 되고 국내 시장은 그중 제일 커서 20.5조 원 정도 된다.

그중 국내기업의 생산은 3조 6,900억 원으로 전체의 18%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내 소재·장비 기업의 부진을 많은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계 최고의 소자기업을 보유하고도 기업규모가 훨씬 떨어지는 소재·장비 부문에서 부진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또한 그간 10년이 넘게 투자해온 정부 R&D 사업을 떠올리며 헛돈을 썼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가 하는 답은 소재·장비 산업이 보다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 모든 나라의 산업 발전 단계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어느 나라나 산업화의 시작은 TV, 세탁기 등의 단순 조립을 하는 소위 ‘세트’ 산업에서 시작한다.

그 후 좀 더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부품(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을 한 후 최종적으로 고부가가치 소재와 장비 산업을 하게 된다.

이러한 발전 단계는 미국과 일본이 이미 지났고, 중국과 베트남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소재와 장비 산업이 더 늦게 발전하는 이유는 기업규모와는 달리 좀 더 기술집약적이며 기술융합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리, 화학, 화공, 재료, 전자 등 다양한 지식을 가진 경험 많은 전문인력군이 충분히 발전한 나라가 아니고서는 발전하기 어렵다.

반도체 소자의 개발은 미세화와 관련이 크며 24㎚, 14㎚, 10㎚ 등과 같은 기술 노드라는 이름으로 표현이 된다.

새로운 기술 노드를 개발할 때 소자업체를 중심으로 소재와 장비업체가 함께 들어와 한 팀으로 개발하게 된다.

여기서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업체가 양산에서 소재와 장비를 공급하게 된다. 이 개발단계에 국내 소재·장비 업체는 참여하기가 어려운데, 가장 큰 이유는 인력과 경험의 문제이다.

첨단 노드의 소자개발은 새로운 공정과 소재의 개발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공정과 소재는 소자업체 단독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그래서 그 방면의 전문가인 장비업체와 소재업체 엔지니어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7㎚ 기술 노드 개발을 위해서는 조금 더 미세한 패턴을 만드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극 초자외선(EUV)를 이용하여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비와 포토레지스트 등의 소재가 필요하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비와 소재업체의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때 소자업체는 그전까지 기술력을 보여주었고 경험이 풍부한 기존의 해외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개발 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개발 방향을 잡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노하우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EUV 기술도 네덜란드 장비업체인 ASML과 기존에 소재를 만들어오던 JSR, 호야 등 일본계 기업들의 협력을 구하게 된다.

이렇게 개발과정에서 결정된 장비와 소재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생산에 계속 쓰일 수밖에 없다.

국내의 소재·장비 업체는 이미 생산되고 있는 기술에서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 또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업체의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한 세컨드소스(Second Source)로 사용되므로 성장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국내의 소재·장비 산업은 중소기업이 대부분 전담하고 있고 그래서 중소기업의 영역으로 여긴다.

그러나 Applied Materials, ASML, LAM Research, Dow Corning, BASF 등 거대규모의 해외 소재·장비 기업의 규모와 그들의 엄청난 R&D투자를 생각할 때 이 산업들을 지금 규모의 국내 기업에 전담시켜서는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

국내 소재·장비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첫 번째 필요조건은 지식과 노하우를 가진 고급인력의 영입과 육성이다.

그러나 국내 소재·장비 기업은 아직까지 소자기업이나 해외 기업에 비해 처우가 떨어지고 안정성 또한 떨어져서 고급인력들이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내 소재·장비 기업의 대형화와 고급 인력의 영입을 위한 대대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우선 소자기업과 수직 계열화되어서 다른 소자기업과 거래가 현실적으로 제한된 소재·장비 기업들이 M&A를 통해 대형화가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거래선을 다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해외동종 기업의 고급 인력을 국내 유치하여 소자의 개발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국내외기업들을 적극적으로 M&A 하여 인력과 기술을 흡수할 수 있도록 자본의 투입이 필요하다.

세계 최고의 소자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이전까지 국산화는 개발된 소재·장비의 세컨드소스로 사용하는 개념이었다면 앞으로는 개발 시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유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소자기업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인센티브가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국내 소자 업체와 거래를 해야만 하는 해외 소재·장비업체의 국내 유치나 적어도 해외 기업의 R&D 기능의 국내 유치도 국내 산업생태계 육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인력공급을 위해서는 국내 대학 교육의 변화도 필요하다.

가장 기초적인 인력을 양성해야 할 국내 공과대학은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양적인 성장을 했으나 질적으로는 계속 후퇴하고 있다.

학령인구의 감소와 공과대학 위상 하락에 의해 입학 자원이 질적으로 저하된 가운데 공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실험실습 교육은 축소되었고, 소위 Impact factor가 높은 연구를 유도하는 정책에 의해 반도체 분야의 채용은 힘들었다.

일부 대기업의 채용 행태는 공과 대학생을 학생보다는 취업 준비생으로 만들어서 심도 있는 전공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만들었다.

많은 학생들이 영어를 더 많이 공부하고 학점 따기 쉬운 과목만을 수강하고 졸업하여 취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대학원은 점점 공동화되고 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등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기술융합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학부 4년을 통한 교육으로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인력을 배출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대학원 활성화를 통한 인재의 공급이 필요하다.

정부 역시 이러한 방향성에 맞게 대외 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8월 6일에 발표하였다.

이 대책은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가진 구조적 취약점을 해결하고자 예산과 금융, 세제, 입지, 규제특례 등 국가자원과 역량을 투입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번 경쟁력 강화대책에 다양한 지원정책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무엇보다 핵심적인 부분은 소재·부품·장비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요-공급기업 및 수요기업 간 강력한 협업모델 구축 지원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제조 산업생태계는 수요기업의 가격과 기술력이 검증된 외국 소재·부품의 선호 경향, 수요기업인 대기업의 정부 기술개발 참여제한, 전속거래와 같은 경직된 수직형 산업 가치사슬 구조 등으로 기업 간, 가치사슬간 협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부터 경제 활력이 대폭 낮아지는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방산업에 속하는 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 기술혁신을 이어왔다.

여기에는 비록 일본의 산업구조가 수직적이고 폐쇄적이었을지언정, 대-중소기업 간 관계의 실질은 비교적 수평적이고 상호 협력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많다.

예를 들어 일본의 히타치화성의 경우, 수요기업인 산요와 기술개발 협력과 사전구매 확약을 체결한 덕에 이차전지음극재 분야 선두업체로 부상할 수 있었다.

즉, 협력을 통해 조립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의 거래가 다면적으로 바뀌었고, 산업구조 역시 기존 수직 통합형 계열에서 복잡한 네트워크를 갖춘 ‘그물형’으로 변화하면서 일본 경제가 저점을 지나 침체를 탈출하는 데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이번 대책을 통해 산업생태계 육성 관점에서 기업 간 협력모델이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의 적극적인 협력의지와 오픈 마인드가 필요하다.

대기업은 사회적 가치창출의 관점에서 대기업이 보유한 혁신역량을 공유·확산하고 중소·중견기업은 이러한 협력체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창출하고 생태계 경쟁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깨지지 않으려는 단단함보다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고 유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며 이는 우리 산업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과 정부, 그리고 대학, 연구소 등 혁신기관 간 긴밀한 협력체계를 통해 배양될 수 있다.

우리는 조선, 철강, 반도체, IT, 게임, 휴대폰 산업 등에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을 추격한 다수의 역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잠재력 있는 나라이다.

4차 산업혁명과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으로 짙은 안개 속에 서 있는 우리는 이제주변을 둘러보고 나의 협력 파트너와 손을 맞잡고 함께 헤쳐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조건적인 국산화를 선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반도체 글로벌 협력체제는 소재, 부품, 장비, 소자 등 생산과 시장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국수주의적 사고는 오히려 이익을 해치는 길이 될 수 있다.

또한 국산화가 된다는 것과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제품의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 등 다양한 다른 요인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제품을 국산화할 수 없는 기술, 인력, 자본의 한계를 생각할 때 국내 생산이 꼭 필요한 제품에 대한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집중이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