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기술혁신 시대의 교육개혁
글. 오세정 총장 서울대학교
세계는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혁신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나노기술, 모바일 혁명 등이 동시에 몰려오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시대적 변화가 모든 분야에서 예상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 자동차가 주류가 되면 전 세계의 자동차 산업과 운수업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만일 인공지능을 이용한 진료가 일상화되고 인공지능 변호사가 나오면 의료 시장과 변호사 시장도 크게 바뀔 것이다.
또한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의 산업이 발전하면 소유보다 공유가 대세가 될 것이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와 고용 형태의 변화는 전방위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사회적 갈등 또한 심각할 것이다. 전 세계의 산업구조가 바뀌고 고용 형태가 변하는데,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왜 없겠는가.
기본 소득이나 로봇세와 같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고, 앞으로 이에 대한 논의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물론 과거의 산업혁명도 생산방법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사회적 여파를 흡수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고 공간적으로도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급격한 변화를 사회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지 많은 학자들이 우려하고 있다.
이 문제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각 나라의 정치적 역량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우선 세계적인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기본적으로 ICT 산업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승자독식’의 특징을 보이기 쉽다.
지금 소위 FANG(Facebook, Amazon, Netflix, Google)이라고 불리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세계적인 지배력을 보면 그 위력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도 선두그룹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중국의 중관춘(中關村), 이스라엘 등에서 매일 나오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지속적인 아이디어 창출과 혁신만이 우리의 살길인 것이다.
그런데 창의적인 아이디어 창출과 지속적인 혁신에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즉 기술혁신 시대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교육과 인재양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세계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여러 교육개혁 프로그램을 내어놓고 있다.
한 예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학생들에게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 대입 시험에 서술형 문제를 도입하는 등 전반적인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모든 학생에게 AI 교육을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본질적인 교육 개혁에 대한 논의를 시작도 못한 형편이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가 갖추어야 할 Top 10 능력으로 문제해결능력, 비판적 사고력, 창의성, 사람 관리, 타인과의 협동, 감성지능, 판단력 및 의사결정, 서비스 지향성, 협상능력, 인지유연성을 꼽았다.
그런데 이 능력은 현재 우리나라 수학능력시험의 5지선다식 평가로는 전혀 알아내기 어렵다.
대학 입시가 실질적으로 고등학교 교육을 좌지우지하고 평가가 교육의 내용을 결정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교육은 이런 능력을 배양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실제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한 교수들이 일류대학에 들어온 학생들도 이런 능력에서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일류대학에 들어온 학생일수록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답찾기식 교육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이 더욱 부족할 수도 있다.
더구나 현재의 대학 교육 또한 학생들의 이런 능력을 키우는데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아직도 추격경제 시대의 방법으로 많은 양의 지식 전수에만 신경 쓰는 주입식 강의가 대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방법으로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기에 교육 혁신이 급선무이다.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그 방향은 대략 나와 있다.
우선 학생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수업시간에 교사의 농담까지 받아 적는 태도로는 남과 다른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도 의심하고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는 수업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남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만의 생각을 정정당당히 발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로는 남과 협동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 요즘 학생들은 자녀가 1~2명인 가족에서 자랐기 때문에, 집에서 공동체 의식을 배우기 어려운 형편이다.
더구나 중고등학교 내신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옆의 친구는 동료라기보다 경쟁자일 뿐이다. 따라서 남과 협동한 경험이 부족하고 협동 의식조차 희미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는 학제적 문제이고 그 해결을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사람 관리와 타인과의 협동을 미래인재의 중요한 능력으로 보는 이유이다. 우리 교육이 시급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셋째로는 학문 간의 칸막이를 허무는 일이다. 특히 중고등학교에서의 문·이과 분리 교육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모든 학생이 AI 소양을 쌓는 것이 필수적이다. 인문사회 분야 학생들이라도 최소한의 AI 소양이 필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공계 학생들도 최소한의 인문·사회적 소양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한다. 앞으로 인류가 맞닥뜨릴 모든 문제는 복잡계적 문제이고, 다학제적 해결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평생교육에 좀 더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평생교육에 대한 투자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부족한 나라이다.
이제는 대학교 때 배운 지식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은퇴할 때까지 여러 번 직업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인생 중반에 작업을 바꾸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을 비롯해서 평생교육 제도를 보완하고 내실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우리가 준비하기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어려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지속해서 혁신을 이끌어 갈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교육개혁을 신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