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 (주)아이벡스메디칼시스템즈 윤석호 대표
기술혁신 성공사례는 기업의 연구책임자 인터뷰를 통해 성공프로젝트를 기술혁신 측면에서 살펴봅니다.
고객의 잠재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치를 제안하라
윤석호 대표
(주)아이벡스메디칼시스템즈
공동 작성. 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지난해 12월 강릉시 펜션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고교생 3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고압산소치료기가 구비돼 있는 병원이 전국적으로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고압산소치료기가 주목받고 있다.
고압산소치료기는 챔버(Chamber) 안에 높은 압력으로 산소를 주입하는 의료기기로, 일산화탄소 중독환자 외에 해녀나 스쿠버다이버 등 잠수병을 앓는 사람들 치료는 물론 색전증, 두개골 내 농양, 당뇨병, 난치성 궤양 등 질환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적인 호흡환경보다 기압이 높은 상태에서 치료를 진행하다 보면 비행기가 이륙할 때 귀가 먹먹한 것과 같은 느낌, 귀 통증(중이 바로트라우마)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치료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기기 벤처기업 (주)아이벡스메디칼시스템즈(이하 아이벡스)가 개발한 신기술 적용 제품이 고압산소치료 효율성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고압산소치료기, 수요는 느는데 공급은 부족
연탄 난방을 많이 쓰던 1980년대만 해도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잦아 전국 300개 이상 의료기관에 고압산소치료기가 있었다.
과거 연탄 사용량이 높을 때에는 연탄가스중독환자 치료를 위해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고압산소치료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연탄이 난방 연료 시장의 중심에서 밀려나면서 전국의 고압산소치료기는 노후화돼 대부분 폐기되었다.
반대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일산화탄소 중독 이외의 다른 난치성 질환 치료에 대한 고압산소치료의 효과가 연구되어 현재는 16개의 질환에 적용하고 있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식약처가 11개의 질환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허가해주어 고압산소치료의 길을 열어 주었으나 문제는 고압산소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20여 개 병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디서나 쉽게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인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국내 고압산소치료 보급수준은 현저히 낮다.
미국 대비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참고로 일본은 200여 곳이 넘고 싱가포르나 대만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대수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고객이 스스로 말하기 어려운 잠재된 니즈 해결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벤처기업인 아이벡스가 고압산소치료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1년 설립된 아이벡스는 고압산소치료기 연구개발 및 제조, 국내외 전시회와 학술대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내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현재 국내 20여 곳에 자체 개발한 의료용 고압산소치료기를 공급하며 뛰어난 성능과 안전성을 가진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연세대 의용공학부(신태민 교수)와 함께 3년의 연구개발 끝에 A.B.T RIDEⓡ(Anti Barotrauma Technology, 중이기압장애 예방 시스템)를 세계 최초로 개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부터 신기술(NET)인증을 받았으며, A.B.T RIDE라는 제품으로 상용화하였다.
쉽게 말하면 기압이 올라가는 동안 환자의 고막에 가해지는 통증을 모니터링 할 수 있고 모니터링 결과를 근거로 챔버 내 압력을 자동 조절해 주는 장치이다.
고막의 통증 모니터링 장치는 고압산소챔버를 만드는 기술과는 전혀 다른 생체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해외 경쟁사 제품에는 없는 차별화 포인트가 될 뿐만 아니라 기술진입을 어렵게 하는 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
기술사업화의 정석과 같은 한 수라 생각된다.
그럼 지금부터 아이벡스의 기술혁신 과정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사업 기회 탐색 – 기술 확보 – 고객가치 혁신’의 순서로 소개하고, 미래의 사업 기회 탐색은 어떻게 진행 중인지 함께 알아보자.
기술경영 관점에서 본 아이벡스메디칼시스템즈의 성공 요인
사업 기회 발굴 및 신제품 개발로의 연계
기술이 사업화되는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으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시작 단계에 해당하는 ‘기회 탐색’과 ‘아이템의 선정’일 것이다.
고압산소치료는 연탄 사용량이 줄면서 그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벡스는 어떻게 사업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을까?
보통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기술 발굴 및 혁신은 연구원들보다는 대표자 또는 경영진의 주도하에 모든 게 이뤄진다.
흔히 회사의 대표이기 때문에 남보다 추진력이 강할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은 추진력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간과한 결과다.
기회 탐색과 아이템 선정을 위해 시장 조사, 환경 분석, 기술 동향 파악, 경쟁 제품 분석, 시나리오 플래닝 등의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훌륭한 틀을 제공할 뿐 틀 안에 집어넣을 반죽까지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좋은 결과물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생각의 양과 질이 중요하다.
아이벡스의 윤석호 대표도 창업 당시인 2011년에는 고압산소치료기술의 사업화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탄 시대 이후 사람들의 관심에선 멀어진 고압산소치료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해외의 학회를 찾아다니고 임상사례들을 조사하고 관련 제품을 수입 판매하면서 끊임없는 고민을 반복한 끝에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한 결과, 첫 번째 아이템으로 치료용 고압산소챔버를 선정하였다.
치료용 고압산소챔버를 만드는 회사는 미국에 4곳, 호주에 2곳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10여 곳뿐이다. 윤석호 대표는 기술만으로 최고가 되어 보자는 기업 비전을 세웠다.
당시 국내에 전문의료진들도 고압산소 치료라는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미국이나 호주에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제품이 이미 있는데 후발업체로서 관련기술은 커녕 유사한 기술조차 보유하지 못한 벤처기업이 도전한다는 것은 자칫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의지와 생각의 차이일 뿐,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산학협력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모범사례
기술전략의 범위는 기술획득, 기술관리, 기술을 활용한 사업화까지를 포함한다.
고압산소치료기술을 사업의 기회로 선정한 아이벡스 입장에서는 기술을 획득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일단 보유한 기술보다 확보해야 할 기술이 더 많았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자금, 전문인력, 장비 및 시설 등의 유형자원 조차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미국의 제작규격인 ASME PVHO-1과 치료시설물에 대한 국제 기준을 만족시키는 고압산소챔버 개발이라는 상당히 높은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아이벡스의 기술 확보 과정을 살펴보면 ‘제품 컨셉 기획 → 목표 설정 → 필요 기술 도출 → 기술 확보 방안 수립 → 단계별 유연한 실행’이라는 전형적인 기술개발 과정을 거쳐 온 듯 보인다.
하지만 신생 벤처기업이 통상 겪는 개발자금 부족, 연구인력, 장비와 시설, 지식재산 및 경험 부족을 대입해보면 과정 하나하나가 넘어야 할 산이 되어버린다.
우선 개발자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부처에서 지원해주는 R&D자금을 신청해야만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생 벤처기업에게 처음부터 수십억 원의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확보해야 할 필요 기술(요소 기술)들을 최대한 자세히 구분하여 작은 단위로 만들지 않으면 과제 기획 자체가 어렵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기술트리(Technology Tree)의 결과물과 같은 것이다.
구분된 요소 기술들을 어떤 순서에 따라 확보해야 하는가도 중요한 쟁점이다.
윤석호 대표는 R&D 자금지원의 규모나 성격에 맞추어 확보 가능한 것부터 먼저 확보하는 유연한 방법을 택하였다.
상황에 맞추어 업데이트되는 일종의 기술 확보 로드맵(Technology Roadmap)을 연상시킨다.
기술 개발의 최종 목표인 고압산소챔버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성능과 기능들의 지표 항목, 항목별 목표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필요한 요소 기술들을 정의할 수가 없으며 요소 기술들이 정의되어 있지 못하면 실행 가능한 기술 로드맵을 그릴 수가 없다.
기술경영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교과서적이고 아주 당연한 이야기들을 나열해 놓은 것 같지만 직접 기술을 사업화하는 대표이사와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기획과 계획 이후에는 가지고 있는 지식재산과 축적된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떻게 잘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어느 기업이든 자신들이 가진 자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적어도 재료나 부품이라도 외부에서 사와야 한다.
아이벡스에게도 부족한 기술적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과제 기획 역량 등을 보강해준 파트너가 있었는데, 연세대학교 의공학 연구실(신태민 교수)이 그 역할을 담당해 주었다.
과제 기획과 기술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는데, 기술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혁신기술을 발굴하고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산학연계 과제들이 나름의 산출적 성과를 거뒀음에도 사업화를 통한 매출 확대, 이익 창출, 사업 확장 등의 실질적인 사업성과를 내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근본 원인은 아마도 두 조직의 지향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각자가 실질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성과가 일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연세대학교 의공학 연구실은 기업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그리고 적절히 채워 주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아이벡스 입장에서 기술 확보를 위한 최고의 파트너를 만난 셈이다. 그렇게 6년여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기술로드맵을 완성하고, 제품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고객가치 제안
치료용 고압산소챔버의 고객은 의사일까 환자일까?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아이벡스 제품의 가치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1차 고객은 의사(병원)라 할 수 있지만, 병원의 최종 고객은 환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1차와 2차 고객의 경중을 따지기 어렵다.
또한 고객이 2원화된 관계로 누구에게 어떻게 가치를 제안해야 할지도 쉽지 않다.
아이벡스는 최종 고객인 환자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최종 고객인 환자의 니즈에 의해 1차 고객인 병원이 아이벡스 제품을 찾도록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예를 들어 당뇨에 의해 발 부분 조직이 괴사해 들어가는 환자들이나 방사선 치료를 받는 암환자의 경우, 치료부위 주변 조직이 괴사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 심정이 니즈가 되어 효과가 있다는 치료법의 수요가 늘어나면 병원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이벡스는 제품 자체의 광고나 기술 홍보에 주력하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최종 고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고압산소치료의 효능을 체험하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보통 고객이 느끼는 가치를 가장 잘 말해 줄 수 있는 마케팅은 고객 스스로가 하는 마케팅이다.
예를 들어 1995년 처음 등장한 김치냉장고는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김치냉장고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제품을 사용해 본 고객들의 입소문이 시장 형성의 가장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된 대표적인 R&BD 사례 중 하나이다.
물론 고압산소치료법은 해외 연구결과와 임상 사례들이 그 효과를 증명해주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관련 질환의 치료 허가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그 가치가 입증된 것이다.
아이벡스는 이를 실물 제품으로 구현하였고 최종고객인 환자들의 치료에 실제 사용이 가능하도록 제공함으로써 그 가치를 제안한 국내 최초의 회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1차 고객인 병원 입장에서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물론 값비싼 외산 제품보다 합리적인 가격의 국산 제품 또는 국내 회사이기 때문에 A/S나 기술 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회사의 관점이 아닌 고객의 관점에서 고객의 소리(VOC, Voice of Customer)에 귀 기울임으로써 고객의 니즈와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기업이라는 점이 큰 메리트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업기회 탐색과 미래 시나리오
아이벡스가 처음 고압산소챔버를 개발할 무렵 국내에서는 고압산소챔버에 대한 니즈 자체가 거의 없었다.
고압산소치료가 여러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가치자체를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벡스는 미래 시장을 내다보고 씨앗을 뿌렸다.
고객의 뚜렷한 니즈가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미래의 비즈니스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래의 니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씨앗을 예측해보는 방법이다.
대기업처럼 유형자원이 풍족한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씨앗들을 심고 키우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미래 준비이지만, 소기업의 경우 하나의 씨앗을 심고 키우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씨앗의 불확실성이 크다면 선뜻 도전하기 어렵다.
아이벡스가 기술경영의 전 과정에서 모범사례로 평가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불확실하지만 씨앗을 찾았고 심었다.
물과 비료를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크고 작은 R&D과제를 끊임없이 기획했고, 부족한 기술과 전문가를 확보하기 위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오픈이노베이션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였다.
그 과정에서 고객들의 니즈를 결코 잊지 않고 챙겨서 씨앗에 담았으며, 니즈를 충실히 만족시킨 제품은 90%에 이르는 국내시장 점유율로 나타났다.
아이벡스가 내다보는 미래는 고압산소치료의 확대와 보편화이다. 현재까지 임상적으로 입증된 16개 질환 외에도 고압산소치료의 가능성과 효과는 훨씬 더 크다고 보고 있다.
불면증, 피부미용, 미세먼지까지 적용 범위 확장과 효과 입증을 통해 고객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의학계의 역할이 각각 다를 것이다.
할 일과 역할의 정의는 이미 끝났으며 실행을 위한 연구과제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또 다른 과제는 보편화인데, 보편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제품의 가격 부담과 부피가 커서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아이벡스가 거쳐 온 과정을 본다면 충분히 차별화된 솔루션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머지않아 전 세계 10여개의 고압산소치료기 회사들 가운데 최고가 되기 위하여, 오늘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