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 ‘명절증후군’, 한의학으로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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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준영 기자(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 고향을 찾아 가족과 친척, 멀리 떨어져 지낸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뜨지만, 마냥 설렐 수만은 없다.
이를테면 여성은 차례상 준비와 명절 음식장만, 손님맞이 등 강도 높은 가사일로 허리·무릎 등 관절 통증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성은 귀성·귀경길 고속도로 정체로 장시간 운전하면서 어깨와 허리, 발목 등에 근육통을 호소한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이른바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이다.
명절증후군이란 명절 전후로 두통과 신경통, 근골격계 질환, 소화불량, 어지럼증, 부종, 감기 증상을 앓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심한 만성 피로, 우울증, 불면증 등 정신적 피로가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도 포함하는 말이 됐다.
명절증후군을 겪는 대상도 주로 가사노동을 많이 하는 주부였다면 지금은 미취업자, 미혼자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주부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손목터널증후군
명절증후군의 대표적 질병으로 손목터널증후군을 들 수 있다.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현대인 등 손목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데,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었던 주부들이 명절이 지난 후 이런 증상을 많이 호소한다고 한다.
손목터널증후군은 팔목터널이 좁아져 신경을 압박하면서 손바닥에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팔목터널은 손목 앞쪽 부분의 피부조직 밑에 손목을 이루는 뼈와 인대들에 의해 만들어져 있는 작은 통로로 여러 개의 힘줄과 손바닥으로 이어진 신경이 있는 곳이다.
전문의에 따르면 처음에는 손가락과 손바닥의 엄지쪽 반 정도가 저리고 감각이 둔해진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손바닥 전체로 증상이 번진다. 밤중에 손이 저려 잠을 설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손목터널증후군의 자가진단법은 우선 손목을 뒤로 젖히고 손목과 손바닥이 만나는 부위를 톡톡 쳐본다.
이때 엄지, 검지, 중지 끝에 전기 자극이 오듯 짜릿한 통증이 있는지 확인한다.
처음 3~4번 두드렸을 때 통증이 느껴진다면 손목터널증후군을 의심해 봐야 한다.
손등을 마주 대고 90도로 손목을 꺾어 손가락이 저리다면 이 또한 손목터널증후군 의심 증상이다.
추석 전후 화병·대상포진 환자 증가
‘화병(火病)’과 ‘대상포진’도 대표적 명절증후군에 속한다.
먼저 화병은 속이 답답하고 울컥 화가 치밀어올라 ‘울화병’이라고도 부른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참는 게 미덕’인 한국 특유의 문화 등에서 비롯됐다는 얘기가 전해지며, 정확한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미국 정신의학회도 화병을 우리 발음대로 'Hwa-byung'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화병은 답답함과 무기력함, 가슴 두근거림, 온몸이 쑤시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매년 추석 전후인 9월에 화병으로 한방 병원을 찾은 환자 수가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화병은 특별한 외상이 나타나지 않아 방치하기 쉽지만 증상이 반복되거나 악화되면 심각한 우울증 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명절 때에 가사노동이 편향되지 않도록 하고, 아무리 가족이라도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은 삼가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명절에 평소보다 가사 노동 강도가 높고, 장거리 운전,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피로해지면 대상포진이 나타날 수 있는 신체상태가 돼 주의가 요구된다.
만일 평소보다 과로한 후 특정 부위에 화끈거림, 따끔함, 가려움, 욱신거림 등이 느껴진다면 물집 등이 생겼는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대상포진은 폐경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50대 여성의 발병률이 가장 높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조사한 대상포진 진료 환자(71만 1,442명, 2017년)를 연령별로 분류하면 30대가 12.1%, 40대가 16.3%, 50대가 25.2%, 60대가 20%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60.9%)이 남성(39.1%) 보다 약 1.5배 많다. 대상포진은 물집이 생긴 후 72시간 이내에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다.
과식으로 속이 더부룩할 때 중완혈 지압 도움돼
명절에 음식을 먹다보면 과식을 하기 쉬운 데, 자칫 배가 불러오고 더부룩해지며 답답해지는 ‘식상증’에 걸릴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식상증은 음식이 소화되지 않고 명치 밑에 머물러 답답한 상황을 말한다.
입맛이 없어 먹지 못하고 신트림을 하면서 때때로 배가 아프고, 구토를 일으키며 설사를 한다. 또 열이 나고 두통을 동반하기도 한다.
식상증이 느껴질 때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위장 기능을 도와주는 찹쌀이나 무, 호박, 감자, 양배추, 브로콜리, 마 등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또 배꼽과 명치 사이인 중완혈과 손등에서 엄지와 검지의 뿌리 뼈가 만나는 합곡혈을 지압해주는 것도 위장 기능 개선에 도움이 된다.
만성피로, 근골격계 질환에 ‘침·뜸’ 효과적
한의학계는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침·뜸’을 추천한다.
뜸 치료의 경우, 관절염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족리, 독비, 양구, 음릉천, 내슬안, 혈해 총 6군데 혈자리에 치료를 실시한다.
뜸 치료는 무릎 관절염에 25.6% 개선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한의학계는 명절 후 만성피로의 경우 침 치료를 권한다.
한의학연에 따르면 만성피로 환자를 대상으로 백회, 풍지, 대저, 폐수, 심수, 간수, 비수, 신수 8군데 혈자리에 침 치료를 실시한 임상연구에서 침 치료가 피로도를 약 27.6% 개선시켰다.
병원을 찾을 정도로 증상이 심각하지 않을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효과가 밝혀진 혈자리를 평소에 지압해준다면 통증이나 피로를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침과 뜸 시술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의학연에 따르면 최근 침·뜸 등의 전통 한방치료 효능은 과학적·통계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올림픽 등 국가대표팀의 부상을 완화시킨 한의학 치료 사례가 국제저널에 발표되는 등 무릎, 허리, 발목 등 근골격계 질환에 침·뜸 치료가 효과적임이 학술 연구를 통해 규명되고 있다.
한의학연에 따르면 전침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주로 다리와 발 부위의 혈자리인 족삼리, 현종, 음릉천, 삼음교, 태충, 족임읍 등에 받았으며, 치료 전보다 통증이 20.56% 개선 효과를 봤다.
관계자는 “치료를 받지 않은 대조군보다 약 2배 이상 통증 감소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5월 25일 세계보건기구(WHO)도 국제질병분류체계를 개정하면서 최초로 전통의학(한의학)을 포함시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식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