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4

04 - 혁신은 디자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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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오민정 선임연구원
성균관대학교 하이브리드 미래문화연구소


인간과 기술은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선택지가 아니다.

인간과 기술을 어떻게 더 나은 상태로 연걸할 것인지가 디자인의 지향점이 된다.

기술의 근본적인 혁신도 이러한 관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는다.

기술 역시 디자인과 연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디자인의 혁신은 곧 기술의 혁신이다.



혁신을 위한 디자인의 의미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는 기술의 발전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그로 인한 인간 실존의 위협이라는 불안감이 공존해 있다.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기술 중심 사회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혁신의 해답은 기술과 인간을 올바르게 연관시키는 것에 있다.

기술과 인간을 정방향으로 연관시키는, 이 새로운 혁신의 키워드는 '디자인(De-sign)'이다.

디자인은 기술과 인간 사이의 통역사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디자인’하면 떠오르는 것이 제품의 외형이다.

디자인의 영역에서는 ‘제품의 외형이 얼마나 미적으로 고안되었는가?’라는 질문이 핵심 질문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디자인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그 본래의 의미가 꽤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자인의 사전적 의미는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의 설계나 도안’이다.

즉, 인간의 삶에 필요한 실체를 갖는 작품의 설계나 도안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삶에 필요한’이라는 전제 조건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는 어떤 실체를 가지는 조형 작품이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다면 디자인되지 않거나, 디자인되었더라도 사라질 작품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아무리 첨단의 기술을 담고 있는 제품일지라도 인간의 활동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면 그 제품은 사장될 것이라는 말과 같다.

이러한 디자인의 의미는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파생시킨 라틴어 어원에서도 발견된다.

디자인의 라틴어 어원 '데시그나레(Designare)'는 본래 ‘성취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취하다’는 ‘바라던 바를 이루어낸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성취의 주어는 오로지 인간으로만 한정되어 있다. 디자인은 곧 인간이 바라는 바를 이루어내는 인간의 활동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그 시작부터 인간이 주체가 된다. 이를 통해 디자인은 기술과 인간의 삶을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의 폭넓은 의미를 실행하는 자는 단지 디자이너만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넓은 의미의 디자인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술자의 임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기술은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이연관성은 디자인이 갖는 미적인 활동과 더불어 공적인 활동이 융화를 이룰 때에 기술과 인간의 삶을 제대로 맺어준다.

이 점에서 디자인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디자인(Design)은 디-자인(De-sign)이다.

디자인을 디-자인(De-sign)으로 이해할 때, 디자인은 하나의 해석 활동을 뜻한다.

디자인이라는 말은 형태상 인간의 삶의 영역에 수없이 존재하는 ‘기호’와 ‘의미(Sign)’의 ‘해석(풀이)(De)’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이 기호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동물의 신호와는 다르며, 이 의미는 오로지 인간의 활동과 행위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디-자인은 특정 분야의 고유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해석하고 생산하는 모든 인간 활동을 뜻한다.

삶의 목적, 삶의 가치는 모두 인간에게 ‘의미’이며, 이 의미를 생산함으로써 인간은 인간 고유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삶을 누리는 인간을 우리는 문화적인 인간(Homo Culturalis)이라 부른다. 그리고 문화적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이 바로 디-자인인 것이다.

디-자인은 디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디자인은 기술과 인간을 미래에도 긴밀히 연관시키는 기능을 그 안에 품고 있다.

디자인을 통해 해석되고 만들어진 기술이 인간 삶을 이롭게 하며 인간의 문화적 활동에 의미화를 실천하게 한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기술이 지배하는 인간 사회로의 전복 가능성은 이 ‘디자인’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디자인은 미래기술 혁신의 키워드이다.


산업혁명 이후 디자인의 변화과정

디자인의 중심은 인간이다. 인간에게 더 좋은 가치와 더 바람직한 가치를 찾는 것이 디자인의 근본적인 목표이다.

디자인은 이러한 목표 하에서 아름다움의 가치와 디자인의 기능적 가치를 추구한다.

우리는 전자를 ‘미의 절대성’이라 부르며, 후자를 ‘미의 공리성’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 가치 모두 디자인의 본래 목표와 관련이 있는 이상, 이것들 역시 인간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문제는 이 가치들이 산업혁명 이후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먼저 문제가 된 것은 아름다움의 가치, 즉 ‘미의 절대성’이었다. 이것은 대량생산이라는 1, 2차 산업혁명의 생산방식과 관련되었다.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19세기의 제품들은 그 이전 수공업 시대의 제품과 비교하여 ‘미적 절대성’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는 기계생산으로 인해 인간 생활 속에 있는 아름다움이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현상에 반대하여, 수공업이 가지는 미를 강조하는 ‘미술공예 운동’을 펼쳤다.

이 운동은 중세 길드제도에 기초한 공예 조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기계를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들이 ‘미’를 결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생활용품에도 외관의 미적 기능인 ‘심미성’이 구현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제품이 구현하는 미감은 인간이 느낀다는 점에서, 새롭게 전개되어 가던 기계기술 문명의 기술개발에 대하여 디자인을 중심으로 전개된 최초의 비판이기도 하였다.

두 번째는 ‘미의 공리성’과 관련되었다.

이 논란의 중심에는 독일의 바우하우스가 있었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의 기능적 가치, 즉 ‘미의 공리성’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등장하였다. 그 시작은 매우 인간적이었다.

이들은 일반 민중을 위한 것, 민중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라 주장하며 기존의 형식주의를 타파시켜나갔다.

이후 디자인은 산업과 더욱 깊숙이 연관되어 발전하였고 형식 중심의 디자인은 사용자의 생활 습관, 양식의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디자인으로 변화하였다.

그렇지만 문제는 바우하우스의 지나친 기능성과 효율성의 강조였다.

이들은 ‘형태는 항상 기능에 따른다.’는 기능주의적 사고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며, 이로부터 이들의 초심은 사라지고 말았다.

‘기능미’를 중요시하는 모더니즘적 디자인은 이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합리성을 추구하였다.

인간도 제품도 이 ‘기능’을 따르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기능은 곧 목적이 되었다.

기능적 디자인은 결코 인간을 향할 수 없었다. 기술혁명 시대의 미의 결여와 인간의 상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논란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일종의 학습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이 논란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현대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 기능적인 것과 장식적인 것,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융화를 꿈꾸며 기술혁명시대의 혁신을 시도하였다.

이 시대의 디자인은 인간을 다시 그 중심에 두고자 하였다.

디-자인의 관점에서 기술적 결과물들의 디자인은 인간이 사용하기에 실용적(기능성)이면서도 인간의 미적인 욕구(심미성)를 충족시키는 것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개개의 제품 수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의 디-자인은 인간과 기술을 양자 간의 관계에서 조망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인간과 기술은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선택지가 아니다.

따라서 이 관점의 전환은 인간과 기술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데 목적을 두게 된다. 인간과 기술을 어떻게 더 나은 상태로 연결할 것인가?

이것이 디-자인의 핵심적인 지향점이 된다. 기술의 근본적인 혁신도 이러한 관계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디자인이 인간과 연관되는 한, 그 인간과 근본적으로 연관된 기술 역시 디자인과 연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디자인의 혁신은 곧 기술의 혁신이다.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여 디자인으로 혁신하라

스티브 잡스 역시 유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든것은 사용자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하며 그 이후에 기술 측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사용자 경험을 강조하였다. 기술만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는 것이 그의 핵심적인 주장이었다.

그는 거창한 이론을 떠들지는 않았지만, 그 이론들의 정수를 간단한 말로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 말의 울림은 여전히 크다. 성공의 과정에서 나타난 속성이나 특성들이 아니라,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기술을 혁신하려면 그 기술이 왜 혁신되어야 하는지가 먼저 결정되어야 한다.

그 목적이 설정되지 않는다면, 혁신은 그저 맹목적인 구호일 뿐이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의 컴파일러 개발은 이러한 혁신의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미 해군 중위였던 그레이스 호퍼는 당시의 컴퓨터가 사람의 지시어를 이해하지 못해 기계를 프로그래밍하기 위해서 많은 케이블을 연결해야 하는 불편함을 극복하고자, 복잡한 기계어 대신에 사용자가 기억하기 쉬운 지시어를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래밍하는, 지시어를 기계어로 자동 변환해주는 ‘컴파일러’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그녀는 사용자가 기계어 보다 기억하기 쉬운 지시어를 입력할 수 없기에 복잡한 기계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당시 프로그래밍의 문제점을 찾아냈다.

지시어를 컴퓨터가 이해하는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처리하는 ‘컴파일러’를 개발한 것이다.

그녀의 그러한 디-자인적 사고는 이 기술의 미래 적용 방향도 결정하고 있었다.

인간과 인간의 벽을 허물어준 기술적 소통방식인 소셜미디어의 탄생이 ‘컴파일러’의 개발과 밀접히 연관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혁신은 그저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혁신은 오히려 문제를 미리 발견하는 데서 빛을 발한다.

디-자인이 혁신적인 것은 그것이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의미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

이 말은 인간이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 역시 무엇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은 내가 마구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와 관계될 때, 비로소 환히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을 이해하는 것도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람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인간 역시 기계 기능처럼 간주하여 분석하고 데이터화하는 것은 인간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인간은 이해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의 탄생, 새로운 경영 방식은 그래서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될 수 있다.

새로운 문제의 발견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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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내 전자 회사의 냉장고의 효율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높이면서 사용자의 편리성까지 고려하여 만들어진 도어인도어(Door-in-Door) 냉장고는 미국 컨슈머리포트에서 최고의 냉장고로 꼽히는 영예를 얻었다.

이 냉장고는 평소 사용자가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여 냉장고 문을 열어야 냉장고 속 음식이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되는 사용자의 불편함을 해소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냉장고의 냉기를 보존하고 문에 수납공간을 마련하여 기능적 효율성 또한 높였다.

최근 이 기술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냉장고 문을 두드리면 그 속이 보이는 노크온 기능을 탑재하여 문을 열지 않아도 냉장고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로 사용자의 편의성을 더한 냉장고를 출시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기술이 사장되는 경우도 있었다.

2003년도 BMW7 시리즈에 탑재된 아이드라이브(I-drive)는 전자계기판에 800여개의 수치를 나타내며 수많은 운전 정보를 제공했지만, 사용자인 운전자에게는 불필요한 기능이 많아 운전자가 자동차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힘들었다.
 
인간을 고려하지 않은 신기술은 오히려 사용자에게 불편한 기술이 되었다.

기술적으로는 훌륭했지만 단지 기계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정작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배제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용자(인간)가 중심이 되는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다.


디자인으로 실천하는 인본주의

이러한 점에서 인간과 기술 사이의 매개가 되는 디자인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제품이 먼저가 아닌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 사람에게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가, 사람을 위하는 기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디자인 혁신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인간 친화적이다.

인간 친화적인 디자인에서 파생된 기술은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인간 삶의 질을 향상한다.

혁신이 되는 디자인은 인간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이 디자인을 통해서 탄생한 기술은 인간 삶의 질을 향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중심에 있는 디자인은 미의 절대성과 공리성을 추구하기에 모든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하여 예측한다.

그리고 디자인을 통해 인간의 생활양식을 담아 기술로 표현된 제품들은 디자인 속에 스며든 기술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결국 인간의 욕망을 표출해 주고 인간의 희망이 되어주고 이로써 인간 삶의 질을 향상해주는 디자인은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혁신의 아이콘이다.

디자인 행위인 계획과 설계는 미래 인간에게 필요한 기술을 찾아내고 발전시킨다.

디자인의 강점인 시각화를 통해서 현재의 문제를 찾아 그려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은 인간 삶 안에 내재한 일련의 수많은 알고리즘의 단계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작업과 같다.

미래를 시각화해서 각각의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작업은 미래를 보다 선명하게 예측하면서 그 단계마다 예측되는 문제를 미리 찾아내 기업 구성원들이 효과적으로 미래를 이해하고 개선하며, 앞으로 인간 삶의 영역에서 요구되는 제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원형을 디자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디자인이 인간 삶의 의미화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천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준비에서 나온다.

디자인은 기술의 발전을 인본적으로 이끌 책임 준비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디자인으로 인간과 기술을 매개하여 인본주의를 실천하고 현실화하는 디자인 해석학적 R&D 작업에 몰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