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3

03 - 도시제조업의 진정한 혁신은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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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화자 책임연구원
성균관대학교 하이브리드 미래문화연구소


도시제조업의 진정한 혁신이란 최적화된 디지털 자동화에 있지 않고, 제조 집합체(제작인의 솜씨, R&D, 유통과 판매라는 기업인의 역량, 사용자 경험, 제조공구와 디지털 플랫폼)의 기술적·정념적인 연결을 통해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새로운 문화경제적 의미와 가치로 해석해 내는 기술과 문화의 성숙한 상호작용에 있다.


도시제조업의 기술혁신: 숙성된 새로움

최근 기업과 정부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귀환한 제조업의 혁신을 최적화된 디지털 자동화에 두고 기존 제조공장을 지능형 기반의 스마트 팩토리로 바꾸고 있다.

그 결과 제조업체들의 새 일자리는 더 이상 생기지 않고, 인간의 ‘제조 솜씨’가 지닌 의미와 가치도 묵과된 채 숙련공의 일자리들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다른 한편, 2018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는 절반 넘게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집중화 현상은 인구의 82%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는 한국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처럼 점점 거대해지며 주거비용, 교통체증, 환경오염의 증가로 도시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조밀해지고 낡아가는 도시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주상복합건물로 밀집화 시키는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문화적 기억이 살아 숨 쉬는 기존의 전통적인 도시 제조업(특히 청계 2·4가 공구거리의 재개발 사업 등)은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게다가 섬유봉제업, 금속가공업 같은 노동집약형 제조업이 첨단 디지털밸리로 재정비되면서 생산의 주역이었던 숙련공들은 장인이란 대접보다 생산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또한 주문, 재료 조달, 제조, 판매가 분리되어 흩어지게 됨으로써 밀집된 공간에 함께 모여 협력했던 제조업 생태계도 무너지고 있다.

도시의 전통적인 제조업이 스마트한 도시재생과 조화롭게 공존하며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부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도시가 소비만이 아닌 생산능력도 지녀야 한다.

그렇다면 숙련된 장인들의 제조 솜씨와 상공인들의 협업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청계천 시장 같은 전통적인 도시 제조업에 필요한 혁신적인 기술이란 무엇일까?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기술(테크네, techne)이란 본래 ‘앎의 양식’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진정한 의미의 기술이란 산출 행위를 통해 평상시 익숙했던 진부함에서 깨어나 진리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 기술과 인식은 동일한 의미였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앎, 진리와 상관없이 기술혁신은 신속한 정량화와 자동 제어에 의한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 인간과 자연을 닦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메이커운동’은 기술혁신이 효용성만을 목표로 초연결적인 디지털 자동화를 완성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오히려 제조 기술의 혁신은 오랜 시간 ‘만듦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앎’을 드러내는 장인의 솜씨, 통용되는 사회적 규범, 기술을 ‘새롭게 숙성된 의미’로 해석해 내는 데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도시 제조업의 진정한 혁신이란 주문, 생산 공정, 판매가 한 구역에서 이루어졌던 전통적인 제조 생태계처럼 제작과 판매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기술공동체 같은 ‘제조 기술문화’로 숙성해 내는 ‘성숙’으로서의 기술에 있는 것은 아닐까?


자동화의 혁신: 인간행위의 개입

현재 한국에서는 융복합 기술 패러다임 중에서 ‘제조공정과 서비스의 디지털 자동화’가 주목할 만한 혁신기술로 추동되고 있다.

그런데 슈밥(Klaus Schwab)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을 ‘사람과 기술의 상호작용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곧 기술의 자동화가 ‘편의성, 효용성’만을 추구하는 목표에서 벗어나 ‘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제조공정의 혁신에 필요한 자동화란 무엇인가?

독일의 정치철학자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이란 ‘노동, 작업, 언행’을 통해 생명을 보존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고 보았다.

그런데 산업기계의 자동장치는 신체노동의 수고를 덜어준 반면 생존하기 위해 물질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노동의 파괴적인 속성도 닮았다.

게다가 생존을 해결하는 노동에 집착하다 보면 인간은 세계와 단절되기 쉽다.

이에 반해 제작인(Homo Faber)은 자유로운 제작행위를 통해 죽음 이후에도 기억될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로 구축해 놓는다.

인류 최초의 제작품으로서 동굴 벽에 화살과 창을 맞고 죽어가는 동물들을 그려낸 선사시대의 테크네는 단순히 수렵활동의 기술이나 주술활동의 기술을 연장시켜 놓은 것이 아니라 동물살해에 대한 속죄의 깨달음을 ‘성(性), 죽음, 종교’의 의미로 해석해 낸 문화적 행위였다.

기술은 ‘노동’에 의해 양적 생산력만 증가시키고 소비재만을 공급하지만 ‘제작’에 의해 소비로 사라지지 않는 지속적인 것을 만든다.

말하자면 노동이 기계의 자동화를 유용성의 차원으로만 사용하는 데 반해, 제작은 기계의 자동성을 삶의 의미를 소통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

카메라의 자동기술로 촬영된 사진도 객관적인 기록 자료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때로는 사진이 육안으로 ‘볼 수 없거나 놓쳤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예기치 않은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해준다.

마치 블로스펠트(Karl Blossfeldt)가 촬영한 고사리 부분을 확대한 사진에서 폐허가 된 고딕 성당의 일부를 볼 수 있고, 보이타(Bernard Voita)의 동물 털로 만든 카펫 사진에서 파도 또는 산등성이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기술의 자동화’란 사용하는 제작자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자동화를 ‘기계의 완전성’의 척도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서 기계의 자동화를 ‘인간중심적인 사용가능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결정되지 않은 여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시몽동(Gilbert Simondon)의 사유에 주목해 보자.

기계의 자동화를 인간이 자신의 욕망이나 권력을 실현하기 위한 ‘사용 가능한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인간이 기계와 짝을 이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여지’로 보아야만 기술은 문화적으로 의미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제조업에서 자동화 기술은 신체 노동만을 대체하지 않고 어떻게 삶의 의미가 녹아 있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


메이커운동: 제조 기술의 사회문화적 가치

도시 재생사업으로 전통적인 제조업은 청계천 시장구역처럼 사라지게 되거나 구로공단처럼 산업단지가 디지털단지로 변화되고 있다.

생산경제에서 서비스경제로 혁신하기 위한 제조업의 자동화는 과연 제조행위의 사회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시몽동은 ‘기술문화’란 단순히 기술들을 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집단, 개체’ 사이를 능동적으로 중개하는 연결망을 통해 인간의 삶을 조절할 수 있도록 모든 기술 위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실례는 숙련공(장인)의 ‘감, 솜씨’와 디지털 작업환경 그리고 제작자와 사용자를 연결해 제조를 문화로 복원시킨 최근 메이커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픈소스 데스크톱, 3D 프린터의 출시에 의해 촉발된 메이커운동은 컴퓨터 전문서적 출판사인 오렐리(O’Reilly)의 「메이크」 잡지 창간과 실리콘밸리에서의 메이커 페어(2005년)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아두이노(Arduino),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에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응용해서 미니카부터 로봇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전통적인 제작공구와 디지털 제작 장치 및 플랫폼을 갖춘 ‘디지털제작공방’으로서 팹랩(Fab Lab)은 MIT의 거센 필드(Neil Gershenfeld)가 보스톤(Boston)(2002)에 최초로 만든 이후 전문가들의 창업을 위한 스타트업은 물론 지역사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개방형 시민참여 플랫폼’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메이커운동에서 사람들은 노동으로 변질된 ‘다양하고 창의적인 제작 능력(솜씨)’을 ‘지능형 디지털 제작공정’과 연결해서 상이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들을 교환하며 협력적인 가치를 살린 ‘제작문화’로 복원하고 있다.

그 결과 일의 가치와 의미를 제작자-사용자, 발명가-기업가, 개인 숙련공-기술 공동체, 로컬-글로컬(Glocal) 사이의 ‘새로운 협력 관계’에서 발견하게 해준다.

이때 자동화 기술은 오랜 기간의 제작 경험에서 축적된 장인의 ‘암묵적이고 직관적인 요령’과 ‘엔지니어의 합리적, 추상적인 지식’을 연결시키는 매개를 통해 물건을 제조하는 데 작동한다.

장인의 제작 솜씨에 깃든 전통적인 기술문화와 신기술의 조화는 기술과 사회, 개인과 사회가 통합된 혁신체제로서 대량생산과 소비 체제에서 불가능했던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게 해준다.

한국에서 메이커 운동은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되어 소비도시를 자급자족의 생산도시와 지속가능한 도시로 혁신하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대표적 실례로 새로운 제조문화로 자리 잡은 서울의 세운상가팹랩은 협동조합의 취지에 창의적인 제작인의 능력, 산학협력을 통한 R&D, 유통과 판매라는 기업인의 역량이 총체적으로 구현된 곳이다.

메이커운동은 ‘인간 솜씨’의 가치를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맞서 제작자 개개인의 고유한 능력을 구현하는 동시에 상호 교류하는 타인들과 함께 지역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도시제조업이 어떻게 각 지역마다 자급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공공성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제조 집합체: 인문적 공리계에 근거한 제조 기술문화체

근대의 대량생산과 소비 시스템은 인간의 노동을 철저하게 사적 차원으로 격리시켜 자유를 박탈해 왔다.

장인 또한 전통적인 연장과 도구로 개인의 제조 능력만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노동자는 시장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신체노동과 제작활동에서 벗어나 생산품을 교환하는 상인이 되거나 활용하는 사용자가 되면서 비로소 타인들과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다양한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현대의 장인은 클라우드 플랫폼과 접속해 제조에 관한 타인의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자신의 제작에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제작이란 고립된 작가의 제작품이 사용경험을 통해 완성된다.

이는 모든 제작은 모방에서 시작한다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통용되었던 ‘미메시스(Mimesis, 모방)’의 본래 의미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외관의 모방’이란 의미로 축소된 미메시스는 본래 배우가 춤, 동작, 소리 등을 통해 배역의 외적 모방을 넘어선 본질적인 성격, 행동을 표현한다는 ‘상연’을 의미했다.

여기서 미메시스는 ‘자연이 완성시키지 못한 것을 인간의 제작능력을 통해 완성한다’는 의미를 지닌 포이에시스(제작 규칙을 창의적으로 적용하는 제작능력)와 카타르시스(창작품에 대한 향유 체험)가 결합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즉 진정한 의미의 제작은 제조품의 완성이 아닌 그 제조품을 정념적으로 향유하고 사용하는 경험에 있다.

현대에 이르러 숙련공의 노하우와 기술은 개방형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디자이너(설계자), 판매자, 사용자와 연결된 제조 집합체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경험들과 신속하게 교류하게 되었다.

지능형 자동화 기술은 제작자 및 사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게 제조 기술로 진화해서 새로운 제작공간과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다.

숙련공은 제조 집합체에 통합되지만 분리 고정되어 일하지 않고 집합체의 일원으로 일할 수 있는 가변적 속성을 지닌다.

‘문화’가 인간이 세계와 동시에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조절하는 것이라면, 제조환경의 생태계는 단순히 제조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정량적인 총합이 아니라 상호 협력적으로 다양하게 피드백하는 ‘관계들의 시스템’으로서 문화 제조체를 의미한다.

결국 현대 도심의 전통적인 제조 생태계는 디지털 플랫폼이란 ‘연결망’을 통해 다양한 영역의 숙련공들이 단지 외부적으로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제조 기술 및 사용자 경험을 상호 정념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인문적 공리계가 우선 고려될 때에만 제작의 역사, 문화적 의미와 가치가 보존되는 제조 집합체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제조 기술의 혁신: 기술문화 공동체의 성숙

전통적인 물리적 제조업에 디자인과 제작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플랫폼과의 선택적 연결은 제조업을 ‘분산·협업’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시켜 준다.

이런 ‘분산·협업’의 패러다임은 ‘개인 제작’이 가능한 동시에 ‘공공 제조’ 및 제작소에서 분리되었던 판매도 가능해져 도시마다 현지의 물자로 생산해서 소비할 수 있는 자급자족의 기반도 마련해 줄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 공유가 가능한 ‘공공 제조’는 기존의 제작방식과 다른 새로운 발상에 의한 혁신적인 제조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만을 목표로 하거나 이윤만을 남기려는 노동으로 변질된 제작이 ‘제작자, 사용자, 연구개발자, 판매자’가 협업하며 지역 또는 주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작문화’로 복원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숙으로서의 기술’이란 완전 자동화의 생산-소비 시스템을 벗어나 해당 지역의 소재, 조합 플랫폼, 디지털 공구와 협력적으로 연결하면서 만듦과 사용 경험의 의미와 가치를 중요시한다.

나아가 성숙으로서의 기술은 ‘인간과 기술’, ‘제작자와 사용자’, ‘개인과 집단’ 사이의 ‘연결망’을 만들어 정념적인 교류와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 결과 개성적인 제작주체는 자신만의 독특함을 표명하면서도 타인들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집합체를 만들고 기술공동체의 의미와 가치를 복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제작인이 생산한 제품은 단순히 소모적인 소비품을 넘어선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여기서 현대 철학자이자 예술 비평가인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가 ‘새로움의 문화경제학’에 대해 언급한 다음의 글에서 ‘진정한 혁신’이 무엇인지 숙고해 볼 수 있다.

“새로움은 사회적 기억 속에 보존되는 가치 있는 옛것과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차이와는 다르다.

이러한 관계 맺음은 어떤 종류의 외적, 우연적 차이로 환원될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문화적 작용이다.

새로움은 이 작용을 통해서만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역사적 기억에 수용될 기회를 얻는다.

새로움은 문화경제적 현상으로, 개별적 기억 능력에서 연유하지 않는다.

새로움은 한 특정한 개인의 의식에 새롭다는 이유로 새로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아카이브와 관련해 새로운 것일 때 비로소 새로움이 된다.”(『새로움에 대하여』, 66쪽).

요컨대 진정한 혁신으로서의 ‘성숙’이란 유용한 소모품을 제조하는 자동화만을 목표로 삼지 않고, 문화적인 것들과의 연결을 통해 그것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구현해 내는 열린 기술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제조업 르네상스’는 바로 이런 제조 기술문화 집합체를 토대로 ‘문화적 장소에 보존된 기억’을 ‘성숙’으로서 기술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로 해석해 내는 혁신에 의해 성공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