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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경영 심리학 - 세대 공감, 관계주의의 이해가 답이다

자기경영 심리학은 리더십,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등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생각의 원리(심리)’를 다양한 실례들과 함께 다룹니다.


글. 김경일 교수/센터장(아주대학교 심리학과,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

심리학자들이 자주 지적하는 혼동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즉 한국문화를 집단주의 문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집단주의가 아니라 관계주의 문화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집단주의와 우리의 관계주의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거기에 세대 공감과 소통의 중요한 단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 심리학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관계주의와 집단주의로 요약한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두 문화 사이에는 자아를 규정하는 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집단주의의 자아는 매우 분명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단순하다. 내가 속한 집단이 곧 나이며 따라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 자신의 자아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이로 인해 집단의 이익과 규칙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집단주의의 일본인들은 국가나 회사와 같이 자신이 속한 집단을 가족이나 다른 친분관계보다 우선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아니 단순한 미덕을 넘어 윤리와 도덕에 가깝다.

반면, 한국인들에게서는 관계주의적 성격이 강한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가 곧 자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보다는 우리 즉, 관계지향적인 말을 많이 쓴다. 심지어는 ‘우리 남편’ 혹은 ‘우리 와이프’라는 말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쓴다.

물론 두 문화 중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으며 따라서 장단점을 분명하게 바꿔 가지고 있다.

일본식 집단주의에서는 집단 내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그릇된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집단전체가 조금의 이견도 없이 향해가는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반면, 우리나라로 대표되는 관계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관계들에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는 과정이 빈번해 충돌과 갈등이 늘 빈번하며 단합된 모습을 보이기 어려운 경우가 늘 목격된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들 사이의 관계주의적 사고방식은 세대 차이를 거의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 X세대, 밀레니엄 세대, 더 나아가 ‘90년대생’들과 같이 각기 다른 세대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관계주의적 사고방식은 세대에 걸쳐 거의 같은 강도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관계가 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이전에는 없었던 온라인상의 네트워크로 옮겨가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한국인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자기소개서를 쓴다고 외국 언론에 자주 소개된다. 자기소개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계를 소개하기 때문이다.
 
“저는…” 해 놓고,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 사이에서 3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나서…”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한국인의 전형적인 자기소개서의 시작이다.
 
가족관계를 모두 언급한 뒤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여러 가지 관계적 위치나 역할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반면, 외국인들의 자기소개서는 자기의 이야기를 바로 꺼내면서 시작된다.

그래서 외국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한국 사람들의 이러한 전형적인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면서 “이 사람은 어디까지 읽어야 자기소개를 하는 걸까?”라면서 의아해 하기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종종 국제사회에 회자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 소통과 설득을 논할 때 다른 문화를 기본으로 한 외국의 이론서나 자기계발서가 잘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집단주의에 입각한 조직관리 이론이라든가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에 근거를 둔 동기부여 및 커뮤니케이션 기법 등 말이다.

그렇다면 소통과 대화에 있어서 관계주의의 특징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관계에 그 해답이 있다.

한국인은 자신과 다른 세대에 속하는 누군가가 자신과 소통하려고 할 때 자기 자신보다는 자신의 관계를 인정해 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며 바로 이점이 소통의 핵심이 된다.
 
반면, 타인의 관계를 인정하기는커녕 부정하고 폄훼하면 거기서 세대 간의 갈등과 불통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자녀와 부모 사이에서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인한 문제가 언제 가장 크게 불거질까?

부모가 자녀의 관계를 인정해 주지 않고 심지어는 단절시키려 할 때다. 자녀가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전화기를 뺏어들어 자녀의 친구를 나무라는 것과 같은 경우 말이다.

이런 경우 자녀는 심한 모멸감을 느끼는 동시에 부모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관계를 모욕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녀들과 부모들 사이에서 불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 된다.

더 나이가 많은 부모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노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가장 큰 단절감이 자신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홀로 사는 부모에게 “아버지. 그런 할머니 왜 만나세요?”라든가 “어머니. 그런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자식들 역시 부모의 관계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홀로된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섭섭함보다 훨씬 더 큰 단절감을 자식에게 느낀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인들은 자신에 대한 비난보다 더 큰 불편함과 섭섭함을 자신의 관계가 폄하될 때 느낀다.

한국인의 자아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 같지만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 결코 아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칭찬 역시 관계적 칭찬이 긍정적 효과를 보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고위 임원이 말단 사원을 직접 칭찬하는 것보다 임원과 사원의 먼 거리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를 인용해 칭찬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칭찬이 된다는 것이다.

한 임원이 “박 차장 눈이 정확하군 그래? 박 차장이 늘 자네가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업무에 임한다고 하더라고. 오늘 자네 일처리를 보니 박 차장이 사람 제대로 봤군.”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 말단 사원은 고위임원보다 더 자기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박 차장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끼며 더욱 잘 보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직접 칭찬보다 관계를 이용한 칭찬은 그 정당성을 더 잘 확보할 수도 있게 된다.

우리 문화에서의 세대 소통과 화합은 나와 다른 세대가 지닌 관계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이 상대방 세대가 가지는 장점을 칭찬하고, 부모와 자녀가 상대방의 관계를 인정해 주면 한국인은 마치 자기가 칭찬받는 것 같은 흐뭇함을 느낀다.

이미 우리는 부인하려야 할 수 없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이는 단순히 사회 구성원들이 평균적으로 늙었다는 이야기 이상을 의미한다.

바로, 하나의 조직에 매우 다양한 세대가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와 다른 세대가 가지는 장점을 인정하면서 상대방에게 이를 말해주는 것이 관계주의 사회의 진정한 소통의 시작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