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새로운 R&D-삶터-일터-산업의 혁신모델로서 리빙랩 추진 현황
▲ 글. 성지은 연구위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최근 사용자 참여와 현장지향성을 강조하는 리빙랩이 변화의 아이콘으로 등장하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리빙랩을 도입해 기술과 사용자 및 생활환경을 조화·발전시키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리빙랩의 개념과 국내 리빙랩 추진 현황을 살펴보고 정책적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서론
최근 사용자 참여와 현장지향성을 강조하는 리빙랩이 중요한 변화의 아이콘으로 등장하고 있다.
리빙랩은 ‘우리 마을 실험실’, ‘살아 있는 실험실’, ‘일상생활 실험실’이라는 뜻으로, 특정 지역의 생활 공간을 설정하고 공공-민간-시민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자 방식이다.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등 EU 주요국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리빙랩을 도입하여 기술과 사용자 및 생활환경을 조화·발전시키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다.
EU는 2006년 '유럽 리빙랩 네트워크(ENoLL, European Network of Living Labs)'를 조직하여 2019년 현재 440여 개의 리빙랩을 운영 중이며, 개방형 혁신 2.0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리빙랩을 강조하고 있다.
대만은 2000년대 들어 아시아 최초로 리빙랩을 새로운 ICT 혁신모델 및 실험 플랫폼으로 도입·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용자 주도형 혁신모델이자 사회·현장·지역 기반형 혁신의 장으로서 리빙랩이 강조되고 있다.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적 정책추진, 공급자 중심의 기술개발, 대기업과 경제성장 중심의 산업혁신 한계를 넘어 사용자·지역사회·주민·현장 중심의 혁신과 문제 해결의 핵심 수단으로서 리빙랩이 부각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리빙랩의 개념과 국내 리빙랩 추진현황을 살펴보고 정책적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리빙랩의 개념
리빙랩은 ‘사용자를 혁신의 핵심 주체’로 설정하고 이들과의 반복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기존 혁신 모델에서 사용자는 연구기관과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사용하는 주체로 인식했으나 리빙랩 모델에서는 산학연과 같은 전문조직과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대안을 찾아 나가는’ 주체로 보고 있다.
즉 리빙랩은 사용자와 전문조직이 ‘실증 및 테스트를 반복적으로 수행하고 피드백’함으로써 기술의 수용성과 사업화 가능성을 제고해 나가는 모델이다.
실생활 기반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하여 사용자 중심, 공공-민간-시민 파트너십(PPPP, Public-Private-People-Partnership)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혁신이론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또한 리빙랩은 린스타트업, 디자인씽킹 등과 유사한 철학적 토대를 가진 조직적·방법론적·문화적 접근법이다.
이들 방법론 모두 최종 사용자의 니즈를 구체화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안을 빠르게 개발·평가하고 진화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만 최종 사용자를 니즈나 반응 파악을 위한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의 주체로 인식하고 공공-민간-시민 파트너십을 고려한다는 점에서는 리빙랩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시장테스트 또는 테스트베드(실증) 사업은 개발된 기술·제품·서비스의 사용자·현장 지향성을 높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는 리빙랩과 일부 유사하다.
그러나 여전히 기술개발자 및 연구자 중심으로 개발된 기술·제품·서비스의 성능이나 기술적 성공 여부를 테스트한다는 점에서 리빙랩과는 차이가 있다.
국내 리빙랩 추진 현황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등의 중앙부처뿐만 아니라 서울, 대전 등 지자체, 중간지원조직, 풀뿌리 조직 등 다양한 주체들이 리빙랩 방식을 도입하여 R&D-삶터-일터-산업을 혁신하고 있다. 국내 리빙랩 추진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R&D 혁신모델로서 리빙랩
과기부 「사회문제해결형 기술개발사업」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에너지기술 수용성 제고 및 사업화 촉진」사업에 리빙랩 방식을 도입하여 기술의 현장 및 수요 지향성을 제고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기부 ‘사회문제 해결형 연구개발사업’은 삶의 질 저하, 양극화 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법·제도, 사회 및 문화 등의 혁신을 목적으로 리빙랩을 활용하고 있다.
산업부 ‘에너지기술 수용성 제고 및 사업화 촉진’사업은 리빙랩 방식의 도입으로 기존의 기술 중심, 연구개발자 중심의 R&D 개념을 탈피하여 에너지 기술의 수용성을 제고하였다.
즉,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수용성 등의 현장 문제를 진단·분석하여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삶터 혁신모델로서 리빙랩
서울, 대전, 포항 등의 지자체에서도 시가 직접 주도하거나 지역별 테크노파크 등을 활용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삶터로서의 지역과 사회를 혁신하는 모델로 리빙랩을 활용하고 있다.
‘서울시 민간주도 IoT 기반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리빙랩’ 사례는 ‘북촌한옥마을 IoT 리빙랩’을 파일럿 프로젝트로 하여 서울 전역으로 확산시킨 사례이다.
포항시 ‘포항을 바꾸는 100일의 생활 실험: 시민과 함께하는 포항의 미래’, 대전시 ‘도시문제 개선을 위한 리빙랩-센서 기반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 관리 리빙랩’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전 ‘건너유’와 성대골 ‘에너지 전환 리빙랩’은 시민이 주도하는 대표적인 리빙랩 사례로 볼 수 있다.
성대골 에너지 전환 리빙랩의 경우 에너지 수용성 제고를 위한 산업부 과제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지역주민이 중심이 되어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 마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일터 혁신모델로서 리빙랩
중앙소방학교 소방과학연구실의 ‘소방119 리빙랩’, 경찰청·과기부의 ‘치안 현장 맞춤형 연구개발(폴리스랩)’은 특수상황에서 근무하고 있는 일터를 혁신하는 모델로서 리빙랩을 활용하고 있다.
소방119 리빙랩은 2016년부터 재난 대응 현장의 특수성과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자 현장 수요 및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리빙랩이 도입되었다.
반면 폴리스랩은 국민과 경찰, 연구자가 협업하여 치안 현장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치안 현장의 문제를 과학기술과 ICT를 기반으로 해결하고 실증하는 문제해결형 연구개발 사업으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총 10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시행되고 있다.
산업 혁신모델로서 리빙랩
최근 리빙랩은 새로운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로도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이하 성남체험관)의 ‘한국시니어리빙랩’이다.
성남체험관은 2012년 시니어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를 토대로 시니어 대상의 연구개발자, 생산자, 소비자가 집결하여 지속적인 피드백 과정을 거쳐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는 한국시니어리빙랩이 구축되었다.
한국시니어리빙랩의 범위는 체험관 전체이며 운영주체는 소비자인 시니어, 생산자인 기업, 연구자이다.
사용자는 커뮤니티, 건강, 여가, 운동을 위해 자발적으로 체험관에 찾아오는 액티브 시니어들로, 2018년 선발된 액티브 시니어 평가단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개발 제품과 서비스를 직접 체험해 보고 아이디어와 개선점, 고령친화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자는 소비자의 니즈를 생산자에게 전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자에게 제공한다.
생산자는 이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선하고 사업 방향을 조정하며 기술고도화, 제품 사업화를 하고 있으며, 현재 성남시 관내·외 동반 협력기업 183개 사가 참여하고 있다.
향후 정책적 과제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리빙랩 활동이 변화와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해결될 필요가 있다.
첫째,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명확한 문제 인식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혁신 방식으로서 리빙랩이 도입되고 있으나 기존의 연구개발체계 내에서 진행되다 보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리빙랩 활동은 기존 R&D 중심의 국가연구개발사업 기획·추진·평가체계 전반의 혁신을 요구한다.
리빙랩 추진 체계 및 평가 지표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참여 및 역할에 대한 수당 지급, 전문가 활동비 등 예산집행의 유연성 확보도 중요한 과제이다.
둘째, 관련 사업 및 활동과의 연계·협력이 필요하다.
리빙랩은 사용자와 개발자가 반복적인 교류를 통해 문제해결까지 이어가는 것이 핵심적인 요소인데 지금 상당수의 연구개발 과제가 부처별, 소규모, 백화점식으로 추진되면서 지속적인 교류를 통한 문제해결이 어렵다.
또한 지자체, 중간 지원조직 등 관련 주체들의 리빙랩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조례·규칙·운영 가이드라인 정립 등 제도적·행정적·재정적 지원이 중요하다.
셋째, 리빙랩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공익성을 지닌 똑똑한 최종 사용자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이다.
조직화된 사용자 그룹이 참여해야 연구자·기업들과 지속적인 상호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문제는 선도 사용자 그룹의 조직화 문제로 귀결된다.
또한 돌봄 케어, 보건·의료, 자원 순환 및 에너지 등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현장 활동가나 실무 주체들의 지식·경험·노하우가 수요를 발굴하고 실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넷째, 리빙랩 교육 프로그램과 다양한 툴킷 개발이 필요하다. 아직 리빙랩은 초기 개념이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더구나 현재 리빙랩 개념은 계속 진화하고 있으며, 실제 현장은 이론보다 더 빠르고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운영이 중요한 과제이다.
다섯째, 리빙랩 관련 경험 공유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중앙·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중간 지원조직, 사회적 경제조직 등의 다양한 주체들이 사업에 착수하고 있으나, 여전히 소수의 전문가가 의제를 주도하고 있을 뿐 리빙랩 전반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다양한 리빙랩 실험과 함께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체계 구축이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