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리빙랩과 고령친화산업 혁신
▲ 글. 정덕영 부관장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
급속한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으로 고령친화산업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시니어 리빙랩을 통해 소비자 중심의 고령친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성공적인 사업화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소비 주체의 변화
세계 총인구는 약 77억 명이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9%로 2050년에는 약 16%까지 도달할 전망이다.
특히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15년에 이미 18%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 65세 이상 고령자 수가 국내 전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이미 진입했고, 2019년 현재 15%를 차지하여 매우 가파른 속도로 증가할 전망이다(그림 1).
이제는 우리나라도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치매, 고독사, 낙상, 만성질환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사회 각층에서 진행되고 있다.
반면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고령사회를 새로운 비즈니스로 보고 있으며, 특히 고령화를 가속화 시킨 베이비붐 세대를 파워소비자로서 주목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 출산율이 급증한 시점(1955년)부터 산아제한정책의 도입을 통해 눈에 띄게 출산율이 둔화하는 시점(1963)까지 9년의 기간동안 출생한 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은 2019년 국내 전체인구의 약 14%(약 720만 명)를 차지하고 있어 그 숫자만으로도 파워소비의 주체가 되고 있다.
이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전 고령 세대와 달리 교육, 소득, 소비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즉 과거의 고령층은 빈곤율이 높고 노후준비가 미흡했던 반면, 베이비붐 세대(현재 50~60대)는 스스로 부양할 능력과 문화·오락 등에 소비할 여력을 지녔다.
또한 자기중심의 소비성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며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과 자기 삶을 영위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러한 사유로 고령친화산업(시니어 비즈니스)에서는 이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 다른 시각에서는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베이비붐 세대가 소비보다는 절약과 절제된 소비를 지향하며 이로인해 베이비붐 세대의 적극적인 소비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자기중심적 소비경향과 니즈를 잘 분석하고 이들이 실생활에 필요로 하는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령친화산업의 과거·현재와 미래
고령친화산업이라는 용어는 2007년 고령친화산업 진흥법의 시행과 함께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법에서 고령친화산업의 범위를 용구·용품 또는 의료기기, 거주·주택, 식품, 여가 등 거시적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친화산업은 2008년 노인 장기요양법의 시행과 함께 복지 용구 급여품목(침대, 휠체어, 지팡이 등)과 요양 서비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현재까지도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령친화산업의 기본적인 틀의 변화는 없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달과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으로 고령친화 제품과 서비스의 형태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즉 기존의 고령자에게 제공되던 단품성 제품 또는 인간이 직접 수행하는 요양 서비스들이 첨단센서, IoT 등과 결합되어 토털케어 서비스 플랫폼(Total Care Service Platform)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 대상자(2019년 기준 전체 고령자의 약 10%)를 포함하여 건강, 안전, 여가 등에 관심을 가지는 비급여 고령자(베이비붐 세대 포함)를 대상으로 다양한 서비스 플랫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고령친화산업의 전통적인 제품과 서비스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시장을 재형성하며 침체해 있던 고령친화산업 범위를 새롭게 정의하고 더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생각된다.
고령친화산업 시장규모는 2012년 27조 3,809억 원이며,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성장률(이하 CAGR) 13.0%를 보이며 2020년에는 약 73조 원의 시장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된다(그림 2).
그 중 여가산업(34.0%)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식품산업(23.4%)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시장규모 중 2012년 대비 가장 큰 비중변화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 요양산업으로, 2012년 10.7%에서 2020년 13.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고령친화산업은 넓은 범위에서 보았을 때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리빙랩을 활용한 고령친화산업 혁신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니어 비즈니스는 소비의 주체인 고령자의 보험급여 대상 여부에 따라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마케팅 전략이 확연히 다르다.
즉,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대상 고령자는 국가가 지정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고 이것을 직접 사용하거나 선택하는 것은 간병인이나 가족이 대부분이다.
반면 비급여 대상(액티브 시니어 포함)은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본인 자신이 된다.
이렇듯 같은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라도 실제 소비 주체는 건강, 인지, 거주환경 등 확연히 차이가 나게 되고 이들에 대한 수요도 다를 수밖에 없으며 제공되는 제품과 서비스도 달리 개발되어야 한다.
고령친화산업이 시작되면서 많은 연구자와 생산자들이 고령자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정해진 범위 안에서 개발해 왔다.
해외제품을 모방하거나 또는 연구자나 생산자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연구자 또는 생산자 중심의 톱다운(Top-Down)방식으로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는 고령자의 신체나 인지 또는 거주환경이 고려되지 않아 실제 고령자에게 외면 받거나 아니면 고령자가 선택의 여지없이 그냥 쓰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고령자를 위한 다양한 첨단기술개발(근력 증강 로봇, 돌봄 로봇, 디지털 컴패니언 등)이나 IoT 기반 케어 서비스 플랫폼(독거노인 관리 플랫폼, 치매 어르신 돌봄 플랫폼, 근력 증진 플랫폼 등) 또한 고령자의 니즈와 그들의 실생활 환경이 고려되지 않고 개발되어 고령자의 실생활에 적용되지 못하고 그대로 사장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앞서 기술했듯이 현재 새로운 소비의 주체가 되고 고령친화산업의 틀을 새롭게 변화시킬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 고령자와 다르게 자기중심적이고 니즈가 매우 강하다.
이러한 요구사항을 사전에 파악하여 제품과 서비스 개발 초기 단계부터 반영하는 것이 시니어 비즈니스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라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고령자의 삶의 질도 향상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업과 다르게 고령친화산업은 다품종 소량생산에 아직도 영세한 기업이 많으며, 새로운 시니어 비즈니스를 위한 1인 또는 스타트업이 많다.
이들은 적은 인력과 자금으로 인해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 출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고 사전에 소비자인 고령자의 선호도를 알고 싶어 한다.
성남고령친화체험관(이하 성남체험관)은 2016년부터 고령친화 제품 및 서비스의 개발을 위해 소비자 중심의 시니어 리빙랩을 운영하고 있다.
시니어 리빙랩은 소비자와 생산자 그리고 연구자가 체험관이라는 공간에서 고령자의 제품, 서비스 등을 같이 개발하는 것이다.
즉, 실 소비자인 고령자가 주체가 되어 제품과 서비스 개발을 위한 생애주기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그림 3).
시니어 리빙랩의 구성 요소로서 1) 소비자는 성남체험관을 내방하는 고령자들로 액티브 시니어 평가단이라는 이름으로 200명이 현재 활동하고 있다.
그중 전자, 기계, 경영 등 전문직에 종사했던 50명은 별도로 연구자와 함께 기술적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기술멘토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령자는 단순 성남체험관 방문객을 넘어 자신들이 쓰는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2) 생산자는 성남체험관에 입주해 있는 5~6개의 고령친화 기업(용품, 식품, 서비스 등)과 성남시 관내·외 동반 협력기업 약 180개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액티브 시니어 평가단에게 아이디어, 디자인, 시제품 제작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화 단계에서 이들의 의견, 기술 지도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3) 연구자는 성남체험관의 기술 개발 장비를 운영하며 생산자의 기술개발을 함께하며,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생산자가 기술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제품의 성능 및 안전평가 그리고 소비자의 니즈를 생산자에게 전달하는 윤활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시니어 리빙랩은 기존의 연구자가 주도하던 기술 개발에서 소비자 중심의 기술개발로 바뀌고 있다. 성남체험관에서는 2017년부터 매년 고령친화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참가대상은 주로 대학생과 고령친화 산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 공모전에서 심사는 전문가(교수, 개발자 등)와 고령자 평가그룹으로 나누어 수행된다.
놀라운 사실은 전문가와 고령자 평가그룹 간에 선정 결과가 상이하다는 것이다.
즉 성공적인 시니어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생산자와 연구자 중심보다는 고령자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 개발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시니어 리빙랩과 활용사례
고령친화 업체 A사는 기존 제품과 달리 새로운 재질을 사용하여 낙상 예방도 할 수 있는 신개념의 고령자를 위한 낙상 방지 매트리스를 개발하였다.
A사는 제품 양산에 들어가기 전에 디자인과 편의성에 대한 고령자의 평가와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성남체험관에서는 의뢰를 받아 액티브 시니어 평가단 중 낙상 경험이 있는 고령자 30명과 기술멘토단 4명으로 구성하여 사용성 평가를 실시하였다.
평가 결과는 생산자인 A사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그림 4).
첫 번째 디자인에서 모양이나 색상은 예쁘게 만들어졌지만 새로운 재질이 너무 미끄럽고 누워 있기에 너무 좁다는 결과가 나왔다.
두 번째 편의성에서도 설치나 보관이 용이하지만 매트의 턱 모양과 청소의 불편함을 지적했다. A사는 이번 결과를 통해 제품 양산을 보류하고 고령자의 평가와 인터뷰 결과에 따라 재질 및 디자인 변경에 대한 재검토를 하였다.
A사는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차기 전략품목 개발과정에 고령자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시니어 리빙랩의 과제
체험관의 인력, 장비 그리고 고령자의 실생활 환경을 그대로 모사해 놓은 실증실 등 성남체험관 내의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여 고령친화 제품과 서비스 기술 개발을 위한 시니어 리빙랩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니어 리빙랩을 활용하여 치매 어르신 관리시스템, 치매 예방 게임도구, 욕창 예방 침대, 독거노인 토이봇, 스마트 지팡이, 스마트 운동 재활기기 등 단순한 제품에서 서비스 플랫폼 형태까지 기업의 성공적인 사업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좀 더 실질적이고 포괄적인 리빙랩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체험관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제품과 서비스를 고령자 거주 및 실생활 공간까지 확장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초기 제품의 개발단계(브레인스토밍, 디자인 스케치 등)는 체험관 내 리빙랩을 활용하여 집중적으로 논의 및 평가하고, 최종 제품의 완성단계에서는 사용 용도와 목적에 부합되게 실생활 공간에서 평가와 검증이 진행되어 최종 서비스까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연구자는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 단계에서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종 서비스 단계까지 함께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니어 리빙랩을 운영하면서 모이는 고령자의 라이프로그 데이터는 사업화 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추후 다른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사용될 수 있도록 빅데이터화 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고령자와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리빙랩이 많이 만들어지고, 활발한 상호교류가 이루어져 곧 다가올 초고령 사회를 같이 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