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 ‘플라스틱 재앙’ 속 생존법 찾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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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준영 기자(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죽은 고래의 뱃속에서 40㎏에 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해양생물학자 대럴 블래츌리(Darrell Blatchley) 박사는 고래 뱃속을 해부한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려 세계인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뱃속에는 천연색 플라스틱 봉투가 꽉 차 있었고, 쌀포대도 16개나 나왔다.
고래는 플라스틱이 장에 남아 있으면 포만감을 느껴 먹이를 제대로 먹지 않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신의 선물’, 플라스틱이 이렇게 불리던 때가 있었다. 천연자원이 전혀 없던 우리나라가 초고속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1970~1980년대)에 중화학 공업 위주의 경제성장정책이 있었고, 이 성장을 통해 우리는 ‘플라스틱 풍류’를 누렸다.
하지만 오늘날 플라스틱은 ‘신의 저주’로 돌변, 인류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한국 1인당 연간 소비량 전 세계 최고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쓰레기 재활용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오늘날 해양 생물 700종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 수준에 이르렀고, 2050년에는 모든 바닷새가 플라스틱에 의해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플라스틱 문제는 거의 재앙 수준이다. 우리나라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2016년 기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또 유럽 플라스틱제조자협회 조사(2017년)에서도 63개국 중 2위,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은 연간 1인당 약 420개로 핀란드의 100배에 달한다. 포장 폐기물 발생은 OECD 회원국 중 미국 다음으로 많다.
미세플라스틱, 먹이사슬 전방위 오염 진행
플라스틱 폐기량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세플라스틱(1㎛에서 5㎜에 이르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다.
영국 플리머스대 리처드 톰슨 교수가 2004년 ‘사이언스’에 논문을 등록하면서 처음 썼던 말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 심원준 소장은 “미세플라스틱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플랑크톤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며 “인체 오염까지 걱정해야 할 단계”라고 진단했다.
해양과학기술원이 최근 발표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낙동강을 통해 남해로 유입되는 플라스틱은 연간 53톤(t)으로, 조각수가 1조 2,000억 개에 달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의 최근 조사를 보면, 경남 거제와 마산 일대 양식장과 근해에서 잡은 굴과 담치, 게, 갯지렁이 가운데 97%인 135개 개체의 몸속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밑바닥부터 광범위한 미세플라스틱 오염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회용품 발생 줄이는 R&D에 투자해야”
플라스틱 공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다양한 정책과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선 2017년 7월부터 화장품에 미세플라스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하는 등 규제를 한층 더 강화하는 추세다.
일각에선 기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EPR은 제품이나 포장재 사용 후 발생하는 폐기물의 재활용까지 생산자가 책임지게 하고, 미이행 시 부과금을 매기는 제도이다. 환경 행정에서 폐기물 관리가 기술·제도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서 시행됐다.
2000년부터 전자제품 및 형광등, 유리병, 금속 캔, 종이팩, 전지, 타이어, 페트병, 윤활유, 플라스틱 포장재까지 확대·시행 중이다.
환경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EPR은 재활용 분야를 산업화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며 “EPR과 같은 환경 보전정책도 중요하나 무엇보다 매립·소각보다 발생 자체를 줄이기 위한 R&D 투자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차적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플라스틱의 썩지 않는 한계를 극복하는 등의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꿀벌해충으로 분해하고 친환경 비닐 만들고
최근 과학기술계는 효소를 이용한 플라스틱의 생물학적 분해 방법에 주목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류충민 감염병연구센터장은 “세계 최초로 꿀벌해충 ‘꿀벌부채명나방’에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3가지 효소를 찾았다”면서 “앞으로 미세플라스틱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에선 식물명나방 애벌레에서 음식포장재(폴리에틸렌, Polyethylene)를 분해하는 미생물을 발견했다. 일본에선 스티로폼을 먹고 사는 장내 미생물을 발견, 연구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땅속에서 100% 분해되는 친환경 비닐봉지를 개발해 이목을 끌었다. 현재까지 개발된 친환경 비닐봉지는 사탕수수·옥수수에서 추출한 자연 원료인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를 소재로 한 비닐봉지는 인장강도(잡아당기는 힘을 견디는 힘)가 약해 사과 4~5개만 담아도 찢어질 정도로 약하다. 이 때문에 실제로 널리 쓰이지 못했다.
연구진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목재펄프에서 셀룰로스, 게 껍데기에서 추출한 키토산을 나노미터 수준으로 가늘게 만든 뒤 바이오플라스틱에 첨가해 가로세로 30㎝ 크기의 친환경 비닐봉지를 제작했다.
이렇게 만든 새 비닐봉지의 인장강도는 65~70㎫ 정도로, 질긴 플라스틱의 대명사인 나일론과 유사한 수준이다.
환경오염을 측정하는 표준기술의 고도화로 최근에는 미세플라스틱을 넘어 ‘나노플라스틱’의 문제점을 지적한 논문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나노플라스틱의 생물체 몸속 흡수, 생물학적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스코퍼스에 등록된 나노플라스틱 관련 논문도 97편뿐이다.
한편, 연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동참 의지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을 비롯한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는 ‘플라스틱 프리챌린지’ 캠페인 동참에 하나둘 나서고 있다.
이는 2018년 11월 세계자연기금(WWF)과 (주)제주패스가 공동 기획한 릴레이 환경 캠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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