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1 - 창의적 혁신조직으로 가는 길, 왕도(王道)가 있을까?
▲ 장필성 부연구위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추격형 성장을 넘어 선도형 성장으로의 전환이 요청되는 시점에서 혁신의 결과물보다는 혁신을 이루는 과정을 점검해 보아야 할 때이다.
이 글에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안하고 이를 성공적인 혁신으로 연결해 내는 것에서 경쟁력을 획득하는 ‘창의적 혁신조직’의 특징을 살펴본다.
혁신,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 되기 위하여
혁신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날까? 한 연구자에게서 떠오른 희미한 아이디어는 가시적인 성과로 발전하기까지 그가 속한 조직과 사회의 상호작용 과정을 거친다.
불행히도 많은 아이디어는 혁신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곤 하는데, 이를 둘러싼 환경에 따라 어떠한 의미나 족적도 남기지 못할 수도 있고, 혹은 차곡 차곡 축적되어 지속적으로 혁신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지금은 과거 추격형 성장을 넘어 선도형 성장으로의 전환이 시급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혁신의 결과물보다는 혁신을 이루는 과정을 점검해 보아야 할 때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초연결·초지능화 사회에는 우리가 따라갈 만한 롤 모델이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독자적인 답을 찾아가기 위한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시스템으로의 진화가 요구되고 있다.
창의적 혁신조직이란?
창의성과 혁신은 서로 비슷하면서 다르다.
두 개념 모두 수행 방식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의미하지만, 창의성은 새롭고 유용한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것을, 혁신은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유용한 제품, 서비스, 기술 등을 생산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새롭고 유용한 아이디어의 창출 단계와 창출된 아이디어의 활용 단계를 모두 강조하기 위해 ‘창의적 혁신조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들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창의적 혁신조직’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안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혁신으로 연결해 내는 것에서 경쟁력을 획득하는 조직을 의미한다.
창의적 혁신조직의 특징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창출되는 과정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혁신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태어나기까지
창의적 아이디어 창출에 미치는 요인들과 메커니즘을 살펴보자.
심리학 및 경영학의 창의성 관련 이론들에 따르면 개인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착안하는 데는 사고방식, 성격, 전공, 전문성 등의 개인적 요인과 업무 및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동기부여, 심리상태, 업무특성 등이 영향을 끼친다.
특히 동기부여, 심리상태, 업무특성이 결합되어 몰입(Flow)되었는지 여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요컨대,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가 몰입에 적합한 상태에 있을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원활히 창출될 수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의 첫 발상은 성숙하지 못하거나 타인에게 전달 불가능한 형태의 아이디어일 수 있다.
이때 수평적인 소통과 협력을 추구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토론과 보완을 통해 미성숙한 암묵지(Tacit Knowledge) 형태였던 아이디어는 성숙한 형식지(Explicit Knowledge)로 자랄 수 있게 된다.
종합하자면, 고유한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몰입하고 소통·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디어가 혁신으로 성장하기까지
창의적인 개인과 창의 지향적인 조직 환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조직 내에서 창출되어도 그것이 혁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들은 미성숙하거나 개별적으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전문성과 공정성을 갖춘 선정 절차도 중요하지만, 미성숙한 아이디어를 성장이 필요한 아이디어로 간주하고 부화과정(Incubating)에 대한 고려가 있는지도 중요하다.
아이디어가 조직에 의해 채택되어 인적·물적 자원을 공급받고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유연한 관리가 요구된다.
확장 가능성이 확인된 과제에 대한 자원의 추가 지원 여부나, 혹은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과제의 중단에 대한 결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실패한 과제가 낙인이 되지 않고, 혁신적 연구의 필요과정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조직의 명시적인 경험과 지식으로 축적되기 위한 도구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창의적 혁신조직들의 특징
이상의 관점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창의적 혁신조직의 속성 연구>에서는 창의적 혁신 조직들의 특징을 분석한 바 있다.
연구에서는 국가(미국·유럽, 일본, 한국)와 산업(IT·SW, 제조업)에 따라 선정된 20여 개의 국내외 창의적 혁신조직에 대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조사를 수행하였다.
조사 분석 대상이 되었던 기업들은 표 1과 같다.
창의적 혁신조직들이 가지는 특징을 살펴보기에 앞서 유의할 사항이 있다. 창의적 조직들은 모두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변화와 다양성으로 대표될 수 있는 창의적 과정이 조직마다 모두 동일한 과정을 통해 발현된다면 그 역시 모순된 것일지 모른다.
본 연구에서 조사한 창의적 혁신조직들 사이에서도 개별 사례들은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창의적 혁신조직 중 다수의 조직이 공유하고 있는 여러 특징을 발굴할 수 있었으며, 이 특징들의 조합을 창의적 혁신조직의 원형(Prototype)으로 부르고자 한다.
지속적인 창의적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창의적 혁신조직 원형이 가지는 속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의적 혁신조직의 원형은 개별 사례에서는 조금씩 다르게 구현되지만, 각 창의적 혁신조직이 지향하는 공통의 지향점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분석된 창의적 혁신조직의 속성 원형은 다음과 같다.
창의적 연구자: 창의적 혁신을 이루는 핵심 자산
창의적 조직에는 창의적 연구자가 필요하다. 창의적 연구자는 괴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역의 지식을 갖춘 전문성과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선호하는 개방성, 타인과의 협업 능력 등이 포함된다.
창의적 혁신조직들은 이와 같은 창의적 연구자를 조직 내에 유치하기 위하여 인력의 전문성과 협력 스킬 등에 중점을 두고 신중한 채용 절차를 가지고 있으며, 창의적 연구자들의 주요 특성인 자율성, 개방성(호기심), 내적 동기 추구 선호 등과 적합성이 높은 업무 문화와 업무 공간적 특성을 만들어 창의적 연구자들의 자발적 유입을 촉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공들여 선발하고 훈련한 인력이 퇴사하거나, 이직하게 되면 내부에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의 손실이 발생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가급적 고용에 대한 안정감 속에서 직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3M의 낮은 해고율은 창의적 시도의 바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직이 잦은 미국 IT·SW 업계 문화 속에서도 SAS는 해고를 매우 꺼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픽사나 블루홀 등은 계약직 기반으로 운영되는 콘텐츠 제작 산업의 풍토와 반대로 정규직 기반의 조직을 운영하는 등의 공통점이 있다.
몰입을 위한 장치: 측정 가능성과 자율성
독창성과 전문성을 갖춘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창의적 연구자의 몰입이 필요하다.
다양한 대안의 모색(발산적 사고) 과정과 대안들의 비판적 검토(수렴적 사고) 과정을 반복하며 창의적 아이디어의 파편이 창출된다.
몰입은 이 과정을 지속할 수 있게하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고 높은 성과를 거두게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칙센트 미하이 등의 몰입이론에 따르면 몰입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 설정에 있어서 개인의 능력을 고려하여 적정 목표를 선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목표는 구체적이고 명확하며 그 과정을 인지할 수 있도록 측정 가능한 것이 좋다.
그리고 연구자가 목표 달성 과정에서 자신의 진도와 현황 그리고 기대 결과를 스스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과 방식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조사한 창의적 혁신조직들 가운데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고려한 개인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기업들이 많았다.
구글의 경우 OKR(Objective and Key Results)이라는 측정 가능한 개인 목표를 수립하고 해당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는 지가 평가의 중요 기준으로 작용한다.
스스로의 목표설정을 통하여 몰입하기 적당한 수준의 도전적 목표를 설정할 수 있으며, 측정 가능한 목표치를 통해 지속해서 목표 대비 현재 상황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자율적으로 목표와 과정을 설정하는 것이 방만으로 이어지지 않는 큰 이유는 자율적으로 수립한 목표와 과정이 모든 동료 사이에 공개가 될 뿐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긴밀한 협력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각자에 대한 동료 평가를 담당하는 평가자이기도 하다.
각 조직에는 협력을 위한 타임라인과 기준이 존재하고 이를 준수하는 것이 강하게 요구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일례로 출퇴근 시간 자율, 근무 중 취미생활 등 자유로운 근무 문화로 알려진 픽사의 경우에도 매일 아침 상호 간의 진도를 공유하는 데일리스 회의가 주요 조직 문화로 꼽히며, 상호 간 설정된 마감일의 준수에 매우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여적, 개방적, 협력적 팀워크: 양과 질이 모두 중요
창의적 혁신조직들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을 통해 조직의 창의성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창의적 혁신조직들은 가급적 많은 정보와 의견을 활발히 공유할 수 있는 도구들을 활용한다.
사내 포털과 인터넷 설문들을 활용하여 의견을 모으며, 이들 질의에 대한 CEO의 답변이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을 통해 주기적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IT 기업들은 개방형 작업공간을 채택하여 직원들의 소통을 촉진하고자 하며, 마이크로 키친 등의 휴식공간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직원들 간의 우연적 충돌을 유발하고자 하였다.
공유되는 정보와 접촉하는 소통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건설적인 협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양보다도 중요한 것은 소통의 질이라고 할 수 있다.
픽사에서는 건설적 협력의 가장 중요한 재료로 솔직함과 상호 존중을 꼽는다.
자신의 작업물에 대한 동료의 솔직한 비평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동료의 작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허심탄회한 소감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픽사의 데일리스 회의는 상호 존중적인 소통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수행하는 데일리스 회의는 하루 간 진척된 미완의 내용을 서로 간에 드러내는 과정에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진솔한 의견을 공유하게 하는 역할로 기여하고 있다.
창의적 시도와 실패를 소중히, 전략적 스케일업과 자산화
창의적 혁신조직은 무엇보다 창의적인 시도를 소중히 여기고 계속 시도하게 하며 그 과정의 경험을 조직 내에 자산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특징이 있다.
먼저 조직 구성원들이 지속해서 창의적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창의적인 새로운 시도를 업무의 일환으로 포함한 대표적이고도 전통적인 사례로 3M의 ‘15% 룰’과 구글의 ‘20% 룰’이 있다.
자율적으로 선정한 새로운 연구나 활동에 대해 주 업무와 관련이 없어도 업무시간의 15~20% 수준을 할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조직 차원에서 새로운 문제와 기회를 포착하는 것을 업무로써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롭게 시도한 많은 아이디어 중 다수는 실패를 경험한다.
특히 조직이 기대하는 성과의 기대치가 높을 수록 실패율은 높아지게 된다.
과제의 성공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낮은 수준의 성과물을 용인하는 조직임을 의미할 수 있다.
창의적 혁신조직들은 결과물에 대한 높은 자체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많은 실패가 사내에서 반복된다.
대신 이와 같은 시도의 경험을 축적하기 위한 노력하고 있다.
다이슨은 실패한 아이디어의 경우 첫 아이디어의 시작부터 모든 시제품과 실패한 원인 그리고 앞으로의 제안까지 꼼꼼하게 기록하여 보관하게 되어 있으며, 구글은 도중에 중단되는 과제에 대해 내부 세미나를 통해 과정과 시사점을 동료들과 공유하도록 권장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실패를 용인한다는 관점을 넘어 심지어 해당 시행착오를 먼저 겪어준 동료와 그 경험을 귀하게 여기고자 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슈퍼셀(Supercell)의 경우, 5명 정도로 구성된 수십 개의 소규모 팀인 셀(Cell)들이 새로운 게임을 개발을 시도하는데, 기대한 만큼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 동료들이 모여 이를 기념하는 샴페인 파티를 개최한다.
실패의 부담을 완화시킬 뿐 아니라 실패의 원인을 공유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창의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지속하는 리더십과 시스템
창의적 혁신 기업들의 배경에는 대단히 혁신적인 창업가와 경영자들이 있었다.
스스로 창의적 과정에 몰입되어 본 경험이 있었던 창업자와 최고경영자들이 가진 철학은 창의적 혁신조직의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네이버 등은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였던 개발자들이 창업자였으며, 조직 문화의 형성에 토대가 되었다.
또한 다이슨의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은 엔지니어이며 발명가로서 많은 실패를 해본 엔지니어만이 좋은 기술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조직 문화로써 실현하고 있다.
직접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던 픽사의 에드 캣멀 역시 조직의 창의적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창의적 조직의 구현을 최대 경영목표로 삼고 있다.
길고 모호한 과정을 힘겹게 부여잡으며 창의적 성과를 창출해본 경험자들을 최고경영자로 둔 조직들은 그들의 창의적 과정에 대한 신념을 닮은 모습으로 형성되었다.
기업에서 리더의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구성원이 다양해질수록 보다 체계적인 방법으로 창의적인 조직 문화가 관리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구글의 경우 인사부서 내에 인문 및 사회과학 연구자들 수십 명으로 구성된 사람과 혁신 연구소(Human and Innovation Lab)가 존재하며 구글 조직원들로부터 수집되는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몰입환경 조성을 위한 체계적인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창의적 조직을 위해 필요한 환경은 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구성원들의 상호작용 또한 달라질 수 있다.
효과적으로 작동하던 제도가 어느 날 효과를 잃거나 악용될 수도 있다. 창의적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한 체계적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창의적 혁신조직으로 가는 길
창의적 혁신조직은 이상의 다섯 가지 속성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조직이 속한 국가적, 산업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의미에서 다섯 번째 속성인 ‘창의적 조직 문화의 구축과 지속을 위한 리더십과 시스템’은 창의적 혁신조직들이 추구하는 속성의 원형(Prototype)으로부터 해당 조직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찾아 나가게 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창의적 혁신조직으로 가는 왕도가 있다면 창의적 조직의 구현을 핵심 가치로 삼고, 이를 위한 자체적인 진단과 개선 노력을 지속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창의적 혁신조직은 백화점식 조직도구의 모음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대단히 맥락 의존적으로 그리고 구성원의 참여를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창의적 혁신조직이 되기 위한 답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