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역발상 과학세상은 역발상으로 우리 삶을 유익하게 만드는 과학기술들을 다양한 실례들과 함께 소개합니다.

글_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Recycle)의 합성어로서, 재활용을 넘어 버려지는 제품을 새롭게 재가공하여 가치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직원수가 7명에 불과한 일본의 한 중소기업이 버려지는 채소를 역발상의 개념으로 새롭게 가공하여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으면서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맛을 가진 업사이클링 식품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채소를 김처럼 만들어 맛과 영양 다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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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애써 키운 농산물들이 출하되기도 전에 갈아엎어지는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과잉 생산으로 인해 가격이 폭락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농림축산식품부의 자료에 따르면 이렇게 버려지는 농산물들이 연간 1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문제는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매년 1,300만 톤 정도의 채소가 생산되었다가 가격 문제나 병충해 등의 문제로 200만 톤 정도는 그냥 버려지는 등 일본도 농산물 처리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한 중소기업인 (주)아일(이하 아일)이 버려지는 채소를 업사이클링 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바로 채소를 김처럼 만드는 것이다.
 
'시트(Sheet) 채소'로 불리는 이 제품의 정식 명칭은 '베지트(VEGHEET)'이다. 영어단어 'Vegetable'(채소)과 'Sheet'(시트)의 철자를 따서 만들었다.

시트 채소는 잘게 갈은 채소에 ‘한천’을 섞은 다음, 이를 말려서 만든다.

주요 품목으로는 당근을 갈아 한천과 섞어서 건조시킨 ‘당근 시트’와 무를 갈아 한천과 섞어 건조시킨 ‘무 시트’ 등이 있다.

이외에도 토마토와 레몬을 소재로 한 제품도 판매되고 있다.

현재 대량생산이 가능한 베지트는 당근과 무 시트로 한정되지만 조만간 토마토, 호박, 파프리카, 바질, 매실, 레몬도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이 제조사 측의 계획이다.
 
특히 매실 같은 경우는 채소의 색과 맛이 그대로 살아 있고, 신맛과 짠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해외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두께가 1㎜ 정도인 시트 채소는 김처럼 바삭바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평소에는 김처럼 바삭한 식감으로 즐기다가, 물에 살짝 적신 다음에 월남쌈처럼 다른 재료들을 싸서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제조사 측의 설명이다.

이 회사의 대표인 소다 케이스케(Soda Keiske) 대표는 시트 채소를 개발한 배경에 대해 “가격이나 품질에 문제가 있어 버려지는 농산물을 조금이라도 활용해 보고자하는 생각에서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개발 초기에는 마치 종이를 먹는 듯한 식감에 그쳤으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김처럼 바삭바삭하면서도 입에 넣으면 부드러워지는 신개념 채소식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소다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시트 채소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어린이들의 편식을 고칠 때 요긴하게 사용된다.

채소를 싫어하는 어린이들에게 시트 채소로 싸서 주면 채소의 식감의 냄새를 잘 알 수 없어서 잘 먹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유통기한이 1년이라는 점도 시트 채소만이 가진 장점이다. 채소는 냉장보관을 하더라도 길어야 일주일 정도가 적정 보존기간이다.
 
하지만 시트 채소는 상온보관이 가능할 뿐더러 유통기한까지 길기 때문에 채소가 가진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보존식품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시트 채소는 장식용 식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마치 종이로 장식을 만들 듯이 접거나 잘라서 다양한 모양을 꾸밀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당근시트로 만든 학 모양의 장식이 대표적이다.

장식용으로 선보였다가 마지막에는 식용으로 처리하면 되기 때문에 버려지는 폐기물도 없다.


당질 제한 다이어트 식재료로도 주목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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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 채소를 개발한 아일은 일본 규슈 지방의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소기업이다.

소다 대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자, 기존에는 없었던 채소상품을 선보인다는 목표로 제품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는 “시트 채소를 개발하기 위해 수천 번 실패했다”고 회고하며 “김처럼 바삭바삭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로 김을 말리는 건조기를 개조하여 특허를 따내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소다 대표의 이 같은 노력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미슐랭 인증을 받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납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슐랭은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레스토랑 평가 잡지다.

이들 레스토랑에서는 시트 채소를 다양한 모양으로 잘라 장식으로 사용하거나, 치즈 및 초콜릿 등을 넣어서 새로운 메뉴에 활용하고 있다.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에서도 시트 채소를 사용한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편 시트 채소는 최근 들어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당질 제한 다이어트’에 적합한 식재료로서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탄수화물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에서도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당질 제한 다이어트는 일본의 의사인 에베 코지(Ebe Koji) 박사가 창안한 다이어트 요법이다.

그는 당뇨병에 걸리고 난 뒤 당질제한 식이요법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는데, 이때 살이 빠지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당질을 제한하는 것이 다이어트의 핵심임을 깨달았다.

에베 박사의 당질 제한 다이어트는 ‘구석기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당질 제한 다이어트의 영양소 비율이 지방 56%와 단백질 32%, 그리고 당질 12%로서 구석기 시대의 식생활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질 제한 다이어트의 비율을 다시 말하면 지방과 단백질 비율이 합해서 88%이고, 당질이 12%”라고 설명하며 “고기와 채소를 충분히 먹어야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는 만큼, 시트 채소같은 제품을 꾸준하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당질제한 식품의 시장 규모는 앞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나타났다.

조금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한 초밥 전문점은 쌀을 사용하는 대신 무로 만든 초밥과 면을 제외한 라멘 같은 ‘당질 오프(Off) 식품’을 시리즈로 출시하여 발매 10일 만에 100만 개 판매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