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 Tech - 생체자기 측정 기술
Win Tech는 공공연구기관의 연구성과 확산을 위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와 공동으로 우수 공공기술을 선별하여 게재하고 있습니다.
▲ 김기웅 책임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첨단측정장비 연구소
자기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석 등을 통해 실제로 물건을 띄우거나 움직일 수 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신비로운 힘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상 전기와 자기는 상보적이고 밀접하게 얽혀있는 표리관계의 현상이다.
하지만, 전기의 사용이 일반화되고 익숙해진 지금도 자기장에 관한 일반인들의 이해는 깊지 않다.
아마도 생활 속 물체들과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자기장이 전기장보다 더 미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탓인지 생체자기라고 하면 동양철학의 기를 떠올리거나 자석 파스, 자석 팔찌 같은 물건들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생체자기학(Biomagnetism)에서 이르는 생체자기는 보통 신경세포와 근육세포에서의 세포막전위의 이온채널 동작에 의한 이온전류로부터 발생하는 자기장의 측정을 말한다.
특히, 뇌에는 많은 신경세포들이 집단적으로 활동하는데, 신경과 신경이 결합하는 부분인 시냅스에서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시냅스후전위가 발생하여 작은 전류쌍극자를 구성하게 된다(그림 1).
이 전류쌍극자가 형성하는 전위를 두개골 표면에서 전극을 붙여 측정하면 흔히 이야기하는 뇌파, 즉, 뇌전도(Electroencephalography)이다.
뇌전도는 뇌의 기능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기술로서, 임상의학에서 각종 뇌질환 및 정신질환의 진단은 물론 각종 고차인지기능과 실험심리의 연구, 범죄수사(거짓말 탐지) 등에 활용된다.
기초과학적으로는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신약 및 감염에 의한 뇌기능의 변화, 동물인지 연구 등에 활용되고 있다.
다만, 두개골의 전기전도도가 매우 낮아서, 조각나 있는 두개골의 구조에 의해 전위의 분포가 많이 왜곡되므로, 정확한 뇌 활동의 위치를 특정하기가 힘든 단점이 있다.
자기장은 수분에 녹아 있는 이온에도 영향을 받는 전기장과는 달리, 웬만한 물질과 상호작용하지 않으므로 한번 발생한 자기장은 공기든 뇌든 두개골이든 투명하게 보고 왜곡 없이 전파되는 특성이 있다.
뇌신경세포의 활동을 생체자기장을 측정하여 기록하는 기술을 뇌자도(Magnetoencephalography)라고 한다.
뇌자도는 뇌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왜곡 없이 측정할 수 있으므로 현재 개발된 뇌 연구 수단 중에서 진보된 장비 중 하나이다.
특히, 뇌전증(간질) 환자의 20~30%는 약으로 증상이 완화되지 않는데, 이 경우 과도한 뇌 활동을 처음 촉발하는 발생부위를 찾아 수술적인 방법으로 절제해야 한다.
뇌신경의 과도한 활동은 대부분 기능적인 것으로, 외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뇌의 형태상의 이상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X선 CT나 MRI 등의 해부학적인 정보로는 병변 위치를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는 뇌전도를 측정한다.
하지만 뇌전도의 경우 두개골에서의 전위 왜곡으로 전혀 다른 부분이 특정되는 경우가 많아서, 의심되는 부분의 두개골을 열고, 뇌피질에 전극 어레이를 직접 붙여서 측정하게 된다.
하지만, 전극 어레이의 단가가 매우 높고, 최악의 경우 뇌 전체를 덮으려면 20~30장 정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두개골을 열어야 하는 위험 부담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이다.
이 경우 뇌자도를 활용하여 측정하면 비침습적, 비접촉적인 방법으로 안전하고 정확하게 뇌전증 촉발부위를 찾는 것이 가능하다.
국내에 뇌자도 장치가 없을 때는 50대 이상의 뇌자도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일본에 환자를 보내서 수술 부위를 특정해 오기도 하였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체자기 측정시스템을 개발하고 국내외 유수의 병원에 설치하여 임상연구를 수행하였다.
앞서 언급한 뇌자도는 물론이고 심근세포의 막전위에 의해 발생하는 생체자기장의 측정으로, 관상동맥협착으로 인한 심근경색의 조기 진단이나 심방세동 수술위치 특정 등에 활용되는, 심자도(Magnetocardiography)의 개발도 수행하였다(그림 2).
뇌자도와 심자도는 비침습적으로 환자에게 어떠한 외부의 에너지도 가하지 않고 매우 안전하면서도 정확하게 질환을 진단할 수 있으므로, 태아나 노인들에게도 부담 없는 의료진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최첨단 차세대 의료기기이다.
그림 2의 뇌자도와 심자도 시스템 기술은 각각 2016년과 2010년에 호주와 독일로 기술이전되어 현재 해외에서 제조되고 있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차세대 의료기기를 국내 기업에서 제품화하여 국내 시장은 물론 세계 시장 경쟁력까지 제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아쉽게도 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규모와 경험이 충분치 않아서, 대당 수십억 원에 이르는 고가 의료기기 기술을 받아 임상승인을 받고 마케팅 망을 갖추어 사후관리까지 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기술의 일부인 초전도 냉각장치 기술과 자기 차폐실 제조 기술 등은 국내 업체들과의 공동개발 혹은 기술자문의 방법으로 국내 생산 설비를 갖춰 새로운 생체자기 의료기기의 시장 확대에 대비하고 있다.
생체자기측정 시스템의 핵심 기술은 자기장 센서이다. 생체자기의 크기는 예상할 수 있듯이 매우 작다.
나침반을 움직이는 지구자기장의 세기에 비해 심장의 신호는 백만 배, 뇌의 신호는 일억 배 이상 작다.
이런 미세한 자기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소자가 필요한데, 인류가 개발한 가장 정밀한 자기장 센서인 이 소자를 초전도양자간섭장치(SQUID, Superconducting Quantum Interference Device)라고 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시간, 길이, 질량, 온도, 광도, 전류, 물질량 같은 기본단위를 연구하고 국제비교를 통해 표준을 유지하는 기관이다.
특히, 전압의 표준은 액체헬륨 온도인 영하 269도의 극저온 초전도 상태에서의 조셉슨 접합의 특성으로부터 결정되는데, 조셉슨 접합은 초전도 박막 기술을 활용하여 제조되며, 초전도체 사이에 얇은 부도체가 끼어 있는 구조이다.
본 연구 그룹은 약 30년 전에 전압표준을 위해 초전도 금속인 Nb의 박막공정을 개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조셉슨 접합 두 개를 고리형태로 연결하여 자기다발(Magnetic flux)을 전압으로 변환해 주는 소자인 SQUID를 개발하였다.
특히,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SQUID인 DC SQUID에 비해 자기장-전압 간 변환비가 10배 이상 큰 2세대 Double relaxation oscillation SQUID의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덕분에 기존 SQUID에서 요구되는 고사양의 신호증폭 전자회로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대당 수십~수백 개의 SQUID 센서로 구성된 생체자기측정 시스템의 단가를 비약적으로 낮추어 시장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는 오랜 기간 축적된 생체 자기 측정 기술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작은 규모의 소동물용 생체자기 측정 장치를 개발하였다(그림 3).
실험쥐는 유전자와 장기 구조가 사람과 유사하여 전 세계 동물실험의 97% 이상에 활용되고 있다.
신약개발이나 치매 등의 뇌질환 연구에서는 실험쥐를 이용한 뇌기능의 변화를 관찰한다.
이 경우에 약의 투여기간이나 질병 진행상황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같은 처치를 한 여러 마리의 실험쥐를 시간에 따라서 차례로 해부하여 관찰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연구과정에서 수천수만 마리의 실험쥐가 희생된다는 점에 대해서 생명윤리, 효율성, 정확성 등의 이슈들을 계속하여 제기하였다.
특히, 뇌파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수술로 실험쥐의 두개골 윗부분을 제거한 뒤 뇌에 전극을 삽입해야만 했다.
이 경우 수술로 인한 뇌의 오류 반응, 체내 분비물로 전극이 산화됨에 따라 생기는 신호 잡음 등으로 정확하게 뇌파를 측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반면 SQUID를 이용한 소동물용 생체자기 측정 장치는 자기장을 두개골 밖에서 비접촉적으로 측정할 수 있으므로 희생 없이 한 개체에서의 변화를 연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그림 4).
한편 장치가 반드시 동물과 접촉할 필요는 없으므로 민감한 실험의 경우, 동물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실험쥐의 경우 뇌의 크기가 1~2㎝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인간용 뇌자도 시스템에 비해 공간 해상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측정 공간해상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SQUID 센서로 자기장 변화를 차폐전류로 변환하여 전달하는 픽업코일의 직경을 줄여야 한다.
이 경우 감도의 저하와 더불어 외부자기장을 상쇄하는 미분계 성능의 저하가 발생하는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배치를 계산하였다.
두 번째로는 액체헬륨 냉각장치의 진공단열층을 최대한 얇게 만들어야 한다.
전류쌍극자가 발생시키는 자기장의 공간분포 특성 때문에, 센서와 신경 전류원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공간적인 저역통과필터링 효과가 생기면서 Nyquist의 샘플링 이론보다 더 조밀하게 센서를 배치하더라도 실제 측정되는 정보는 증가하지 않게 된다.
이를 위해 얇아도 진공에 의해 휘어지지 않는 충분한 강도의 재료인 사파이어 글래스를 사용하고, 내외통 간격이 슬라이딩 가능한 극저온 단열통 구조를 개발하여, 액체헬륨 속의 센서와 측정 동물 사이의 간격을 최소화하였다(그림 5).
소동물 생체자기 측정장치는 뇌는 물론 심장의 기능도 측정할 수 있다.
실험쥐의 심근이 발생시키는 자기장을 정밀 측정하면 Long-QT 증후군과 같은 심장질환을 신약개발의 초기단계에서 진단할 수 있다.
전도성 심장질환인 Long-QT 증후군은 신약개발 시 부작용으로 자주 발생하는데, 최종 검증단계에서 발병하는데다 사전에 진단하기 어려워 이로 인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거의 개발 완료된 신약이 막판에 탈락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동물실험뿐만 아니라 급증하는 애완동물 시장에서 동물의 뇌 및 심장질환을 진단하는 기기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동물실험 윤리성 문제가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현황에서 동물의 희생을 줄이며 효과적으로 뇌 연구를 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함으로써, 동물연구에 대한 긍정적 시각 변화를 주는 사회적 파급효과 역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SQUID 센서를 이용한 생체자기 측정과 활용에 관해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첨단 측정 기술의 개발은 현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현미경의 개발이 세포와 면역학 등의 발견을 통해 의학체계 자체를 바꾼 것과 같이, 전기 기반의 측정이 자기장 기반의 측정으로 바뀌었을 때, 기존에 보지 못하던 현상을 보게 됨으로써 인간과 자연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해지리라 믿는다.
Win Tech는 공공연구기관의 연구성과 확산을 위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선정한 “2018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기술을 선별하여 게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