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무비 & 사이언스 - 포스트휴먼의 탄생

무비 & 사이언스는 영화 속의 상상력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진 과학기술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사진 참조_ 네이버 영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

영원불멸인 신의 능력을 주고 싶었던 테티스는 불 속에 아킬레우스를 집어넣었다.

이를 본 펠레우스는 불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아킬레우스를 급하게 꺼내지만 발뒤꿈치에 화상을 입는다.

다친 발뒤꿈치에는 거인 다미소스의 뼈를 넣어 아킬레우스는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킬레스건’과 관련한 이야기에서는 아킬레우스를 스틱스 강물 속에 넣어 불사의 몸을 만들려고 한다.
 
두 이야기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테티스가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불사의 몸을 만들어주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노력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욕망을 지닌 것이 어디 테티스뿐이겠는가?


마블이 만든 아킬레우스 ‘캡틴 아메리카’

2차 대전이 한창일 때 ‘스티브 로저스’는 군대에 자원입대 한다.

조국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남달랐지만 허약하고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동료들에게 비웃음만 산다.

이때 그의 꿈을 실현시켜준 것이 ‘슈퍼솔저 계획’이다.

나치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특수 혈청을 이용해 슈퍼솔저를 만들겠다는 이 계획에 참여한 스티브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마블의 영웅이 ‘캡틴 아메리카’다.
 

16.png


캡틴 아메리카와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신체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의 산물이다.
 
600만 년 전 최초의 인류가 등장한 이래 꾸준히 이어진 이 욕망은 자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냉정한 자연에는 오로지 적자만이 생존하기 때문이다. 항상 강해지려고 하는 본능이 내재된 생물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환경에 적응하려 한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화를 거듭해야 한다. 그 진화의 방법이 바로 돌연변이다.

돌연변이는 유전자 변형을 통해 부모가 가지지 못한 형질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돌연변이이며 돌연변이 영장류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돌연변이는 인류를 꾸준히 진화시키는 원동력이었다.

지금도 인간은 진화하고 있으며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할 때까지 진화는 계속 된다.

호모사피엔스의 진화는 끝난 것이 아니다. 인간을 비롯한 자연에 있는 모든 생물은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진화의 경주를 하고 있다.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진화의 속도와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스스로 트랜스휴먼(Transhuman)이 되어 새로운 인류인 포스트휴먼(Posthuman)으로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과학기술 덕분에 트랜스휴먼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함투성이 인간

종교적으로 보면 인간이 완벽하게 창조되었으니 변화시킨다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자연주의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현재의 인간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변화시키는 트랜스휴먼이나 새로운 인류인 포스트휴먼의 등장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일까?

캡틴 아메리카나 아킬레우스뿐 아니라 더욱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많다.
 
운동을 통해 그 꿈을 실현할 수도 있지만 허약한 스티브 로저스를 근육질의 어깨깡패 캡틴 아메리카로 만드는 것처럼 과학기술의 힘으로도 가능하다.

2015년 한중 합작 연구팀은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마이오스타틴(MSTN)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도록 해서 ‘슈퍼 근육돼지’를 만들었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똑같이 운동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근육을 가지게 된다.

더 많은 근육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은 마이오스타틴 유전자를 억제하고 싶을 것이다.

2013년, 안젤리나 졸리는 유방암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유전자 검사결과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BRACA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종류의 암을 비롯해 상당수의 질병들이 유전과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유전체 의학의 발달로 유전자 치료를 통해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면 부모들은 더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을 것이다.

영화 < 가타카(Gattaca, 1997) >에는 유전자 편집을 통해 부모가 원하는 형질을 가진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는 사랑을 통해 자연적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유전자 선택으로 태어난 동생을 이기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즉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유전자를 타고 난다고 모든 형질이 발현되는 것도 아니며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노력을 통해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포스트휴먼의 등장

유전자 편집 이외에도 공학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개선하기도 하지만 정상적인 몸을 버리고 기계로 바꾸는 일이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계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처럼 트랜스휴먼은 보철공학 분야에서 먼저 시작될 것이다.
 
문제는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을 넘어 보철을 통해 보통의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때 생긴다.

후크 선장처럼 자신의 손 대신 갈고리와 목발처럼 생긴 다리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아이언맨이 되거나 600만 불의 사나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있지 않을까?

자신의 몸보다 뛰어난 사이보그가 되는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17.png


영화 < 알리타: 배틀엔젤(Alita: Battle Angel, 2018) >에서는 사이보그 앞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인간을 보면 그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니메이션 < 은하철도999 >의 테츠로처럼 영원히 살 수 있는 기계 몸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인간이 될지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가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과 포스트휴먼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사이보그의 시대가 도래 하더라도 심장만 바꾼 아이언맨이나 몸의 절반을 바꾼 사이보그의 인간성을 의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또한 겉모습은 로봇일지라도 알리타처럼 인간의 뇌를 가지고 있을 때도 여전히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로봇처럼 보이는 알리타를 인간이라고 구분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뇌과학자 서배스천 승 교수의 “나는 곧 나의 커넥톰(Connectome, 신경세포의 연결지도)”이라는 말처럼 인간의 의식은 뇌 속에 있으니 알리타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18.png


그렇다면 영화 < 트랜센던스(Transcendence, 2014) >처럼 뇌에 담긴 정보만 지니고 있어도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죽기 직전에 뇌에 담겨 있는 정보를 고스란히 컴퓨터에 업로드해서 살아있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이도록 했을 때 ‘그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냐는 것이다.

아직까지 인간의 마음을 업로드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면 결국 포스트휴먼은 유기물이 아니라 실리콘 기반의 생명체가 될지도 모른다.

특이점이 지나 등장한 포스트휴먼은 호모사피엔스와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포스트휴먼이 어떤 모습이건 그들의 등장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