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산업기술 혁신을 이끌어 온 정부의 혁신 지원정책
▲ 진영현 센터장
KISTEP 성장동력사업센터
인류가 기존 삶의 방식의 한계를 넘어 큰 경제적 발전을 거둘 때에는 항상 기술혁신이 밑거름이 되어 왔다.
세계 경제사로부터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도 기술혁신에 기인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정부의 기술혁신 지원정책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정부와 산업계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한강의 기적’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세계 경제사에서 평가한 상징적인 용어이다.
한국 전쟁이후 “이 나라가 재건되는 데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라던 맥아더 장군의 말이 무색하게, 우리나라는 5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기적’을 일궈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게 된다. 1945년 이후 50여 년간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받는 수원(受援)국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1995년 세계은행이 우리나라를 원조대상국에서 제외하였으며, 오히려 2009년 말 우리나라가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정식 멤버로 가입하게 된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국제 원조를 받던 수원국이 원조를 하는 공여국이 된 ‘세계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게 된 것이다.
인류가 기존 삶의 방식의 한계를 넘어 큰 경제적 발전을 거둘 때에는 항상 기술혁신이 밑거름이 되어 왔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 빈곤이 거듭된다.”는 멜서스의 덫을 풀어낸 것이 바로 증기기관의 발명, 즉 산업혁명이었다.
최근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정보를 쉽게 공유하고 확산하게 된 것도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기술의 혁신 덕분이었다.
앞서 언급한 기적이라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도 기술혁신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광복과 전쟁 후 초기에는 기술개발보다 노동과 자본의 투입을 통해 경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이 있었으나, 그 이후의 경제 발전의 동인은 주로 기술혁신으로 설명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의 경제 성장은 연평균 약 3%에 이르는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성 제고 효과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01이 보고되었다.
경제 성장에서 생산성 제고 효과는 노동과 자본 투입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산량의 증가분으로 측정하는데, 이는 기술혁신과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1993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나라 전체 산업 분야에서 약 60%의 생산성 향상이 일어났으며, 특히 전기전자, 자동차 산업의 경우 같은 기간 매우 급속한 생산성 향상이 관찰되었다고 보고되었다.
최근에 와서야 우리나라가 국제 무대에서 주요한 기술혁신국 중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광복 직후와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의 기술혁신 환경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극히 열악했던 것이 사실이다.
근대화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될 무렵 과학과 기술에 기반을 둔 산업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1961년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를 살펴보면, 1차 산업이 생산액 기준 40.2%, 고용 기준 65%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술 기반이 취약한 산업구조는 자연스럽게 민간의 자체적인 기술혁신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 결과, 기술혁신 노력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연구개발 투자에 있어, 1976년까지도 국가 총 연구개발비 중 민간 부문의 연구개발비 비중이 절반이 되지 못하였다.02
이런 환경에서 기술혁신을 이끈 것은 정부의 노력이었다.
비록 근대 과학의 도입이 다른 선진국보다 늦었고 관련 국가 정책의 수립과 추진도 경쟁국보다 빠르지 못하였지만, 1960년대 정부는 주요 정책 방향을 경제개발, 경제자립, 공업화로 설정하고 과학기술진흥정책을 본격화한다.
행정적으로는 1962년 경제기획원 내 기술관리국을 신설하여 과학기술 진흥을 도모하였으며, 같은 해에 “기술진흥 5개년 계획”도 공포되었다.
이후에도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기술사법(1963년)을 비롯, 과학기술진흥법(1967년), 전자공업진흥법(1969년)을 제정하여 기술혁신을 위한 디딤돌을 구축하게 된다.
과학기술 정책 초기, 산업기술 혁신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마일스톤 중 하나가 바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출범이다.
KIST는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 과학기술 연구소로 1966년 2월 출범하였는데, 출범 초기 부여된 임무가 바로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산업기술의 연구활동’이었다.
이를 위해 운영 형태도 외부로부터 특정 문제에 대한 연구 의뢰를 받아 수행 결과를 위탁자에게 돌려주는 계약연구체제를 채택하였다.
또한, 운영 초기 국내 기업들이 주로 해외 기술도입에만 관심이 있을 뿐 자체 기술개발에 큰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계와의 접촉을 강화하고 적은 연구비로도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통해 KIST는 기술혁신에 대한 필요성과 가치를 국내 산업계에 전파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정부는 대덕연구단지를 조성하고 출연연구기관을 잇달아 설립하는 등의 정부 주도 기술혁신 노력과 더불어 민간 기업의 자체적인 연구능력 확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게 된다.
1977년 ‘기술개발촉진법’을 제정하고, 1978년에는 매출액 300억 원 이상의 기업을 우선 선정해 기업 내 부설연구소 설립을 촉구하였다.
1979년 민간기술연구소협회가 결성되면서 기업부설연구소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1979년 말까지 총 46개의 기업부설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민간의 연구개발 투자가 점차 확대되어 1980년에는 민간 부문의 연구개발비가 1,016억 원으로 국가 총 연구개발비의 48%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1976년 민간 연구개발비 214억 원의 다섯 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1980년대 들어서 DRAM 개발, VTR 헤드드럼 국산화, B형간염 백신 개발 등 민간의 기술혁신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반도체, 영상기기, 백색가전 등 전자 산업에서 기술혁신을 통한 기업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산업기술의 고도화를 위한 지원 정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1982년에는 정부가 대규모의 연구비를 직접 지원하는 특정연구개발사업을 출범하여 조직적인 국가연구개발사업을 본격화하였다.
시행 첫 해 133억 원의 예산으로 시작된 특정연구개발사업은 민간이 시도하기에 위험부담이 크거나 공익성이 높은 기술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과,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기업 주도 연구개발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였다.
특정연구개발사업은 비록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연구비 금액과 과제 수 등 규모 면에서 초라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국가가 향후 경제 성장을 책임질 핵심 전략 기술을 발굴하는 데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또한 이를 시작으로 당시 상공부 등에서 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 등이 추진되는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정부의 기술혁신에 대한 지원은 꾸준히 지속되었으며, 특히 경제위기 상황에서 그 역할이 두드려졌다.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민간 영역의 연구개발 투자는 외부효과로 인해 시장실패가 일어나는 대표적인 영역이 된다.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 기업은 경제위기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기존 국가 간 경쟁질서가 변화되고 선진 기술의 도입과 개량을 통한 추격형 전략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등 난관에 직면해 있었다.
또한 여러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연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민간 기업이 사업 기획 단계에 참여하지 못하는 정책적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고자 기획된 정부연구개발사업이 ‘선도기술개발사업’, 소위 ‘G7 프로젝트’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범부처 공동 기획 연구개발 사업이자 최초로 정부 주도하에 민간 기업들이 합동으로 기획에 참여한 사업이었다.
21세기 선진국 진입의 국가 발전 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해 1992년에서 2001년까지 집중 개발해야 할 중점 전략 기술 분야를 선정하여 추진하였는데, 1991년 12월에서 1992년 4월까지 약 5개월간 다수의 산학연 전문가가 참여한 기획이 추진되었다.
그 결과 제품 기술 개발 분야 9개, 기반 기술 개발분야 9개 총 18개 사업이 추진되었으며, 4조 782억 원(이 중 정부 부담 1조 6,064억 원)이 투자되었다.
당시 진행된 사업 중에는 향후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지니게 된 산업 분야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더라도 차세대 평판표시장치, 차세대 반도체, 고선명TV, 차세대 자동차, 고속전철, 차세대 원자로 등이 있다.
G7 프로젝트의 성과를 수치화하여 제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과분석에 관한 연구를 통해 그 효과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02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서 수행한 연구에서는 당시 종료된 7개 G7 프로젝트에 대해 설문조사 등을 통해 기술자립도, 기술격차 등 산업 경쟁력 확보 현황을 분석하였는데, 사업별로 차이는 있으나 기술자립도 향상, 관련 핵심 기술 확보,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단축 등 참여한 기업의 기술수준 향상에 큰 효과(5점 만점 기준 4.15 이상)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HDTV의 경우 사업 착수 전 30%였던 기술자립도가 사업 직후 90%까지 수직 상승하였으며, 차세대 평판표시장치도 36%에서 82%로 기술자립도가 향상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에 따라 같은 분야의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도 각각 3년에서 1년, 5.25년에서 2년으로 줄어들었다고 분석되었다.
그 외 다른 분야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기술자립도 향상, 기술격차 해소 등의 효과와 향후 시장 확대 등 경제적 효과도 검증이 되어 이후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는 기초가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G7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과 맞물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는 당시의 경제 상황은 물론 기술혁신을 위한 기반마저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97년 12.2조 원에 달하던 국가 총 연구개발비는 1998년 11.3조 원으로 감소했으며, 기업의 연구 인력은 구조조정 1순위 대상으로 지목되어 당대 기업의 혁신역량 감소와 동시에 후속 세대에게 이공계 직업의 이미지를 나쁘게 각인시키는 효과까지 가져오게 되었다.
이에 당시 정부는 주력 산업의 경쟁력 유지와 미래 신산업 창출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인식하고, 1999년 4월 국정개혁보고회의에서 프론티어사업의 추진 방향을 보고하고 사업기획에 착수하게 된다.
그 결과 추진되게 된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은 ‘2010년까지 전략 기술 분야에서 선진권 진입을 위하여 국가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선진 경제를 실현하고 선진국 수준의 삶의 질 구현, 특히 기술혁신의 성과를 사회 기반 전 분야로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1999년 12월, 2개의 시범사업 착수를 시작으로, 2003년까지 순차적으로 총 22개의 사업단이 출범하였으며, 사업 초기부터 2009년까지 누적 투자금액은 정부 1조 2,450억 원, 민간 3,306억 원으로 총 1조 5,757억 원이다.
2008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수행한 21세기 프론티어사업의 성과분석은 당시 교과부 지원 16개 사업단만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경제 효과가 30조 7천억 원, 고용창출 효과가 49만 명에 이른다고 보고하고 있다.
특히,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이 개발한 차세대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16.9조 원의 경제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어 다른 사업단에 투자된 금액을 포함하더라도 투자 대비 10배가 넘는 경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 외에도 나노소자 및 소재, 중질나프타 분해 기술, 뇌기능 혈관조영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진국 수준에 근접한 기술을 개발하여 향후 관련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함은 물론, G7 프로젝트의 한계로 지적되었던 국제 기술혁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성과도 거둘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까지 민간의 기술혁신을 지원해온 정부의 노력들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21세기 프론티어사업의 종료 이후에도 산업기술 혁신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계속되어 왔다.
프론티어사업의 후속 사업이 추진되었으며, 신성장동력, 차세대 성장동력, 미래 성장동력 등 여러 가지 정부연구개발사업들을 통해 미래를 대비해 왔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 산업계는 또 다른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을 통해 기존 산업계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생산성 증가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소수 플랫폼 독점 기업의 글로벌 지배 강화, 핵심 기술 분야 혁신 기업의 합종연횡으로 인한 시장 독과점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기존의 기술개발이 소품종 대량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에 집중되었던 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시장의 경쟁질서가 변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변화되는 시기에 다시 한번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기술혁신에 대한 노력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올해 정부는 최초로 20조 원을 넘긴 연구개발 예산을 편성했다.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연구개발비도 확대할 계획이며, 연구개발과 제도개선, 인력양성을 연계한 투자 시스템도 가동 중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산업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이제 주도자가 아닌 촉매자여야 한다.
변화의 속도에 대처하고, 시장에서 민첩성, 유연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 결국은 기업의 몫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도해야 할 시장과 뒷받침해야 할 시장을 균형 있게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시장의 요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산업계 또한 정부를 바라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요구와 의견개진으로 서로 협력하고 조율해 나가는 파트너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궁극적인 기술혁신의 주체는 결국 기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어느 한 가지 개발된 기술을 여러 주체들이 나눠 쓰던 이전의 산업혁명과는 다르다.
모든 기업, 모든 기술이 혁신의 주체이며 대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정부와 산업계와 연구자들이 함께 대응할 때, 우리나라 산업혁신이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01 백철우 (2015), "R&D 투자의 산업생산성 제고효과 분석", KISTEP 위탁연구보고
02 1976년도 연구개발비 중 정부공공재원 392억 원(64.3%), 민간재원 214억 원(35.2%), 외국재원 3억 원(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