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기술혁신으로 글로벌 Top 기업으로 서다
▲ 박태영 교수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환경변화로 인해 기업 생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평균 수명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 하에서 장수기업이 되기 위한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는 다각화 전략이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산업에서 세 가지 다각화 사례를 복기해 보며 기업이 당면한 신사업 결정 및 진출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머리말
한국인에게 삼성전자(이하 삼성)는 어떤 존재일까? 아마도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애증의 존재’가 아닐까싶다.
2017년 기준 삼성은 포춘(Fortune)의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12위를, 인터브랜드(Interbrand)의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6위를 차지했다.
또한, 지난 24년간 세계 반도체 1위를 지켜온 인텔을 매출액과 영업이익에서 모두 앞질렀으며, 지난 8년간 글로벌 영업이익 1위를 지켜온 애플을 제치고 삼성은 글로벌 Top 기업이 되었다.
한국이나 서울을 모르는 외국인은 있을지 몰라도 삼성 갤럭시폰을 모르는 외국인은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인은 삼성을 국위선양을 톡톡히 한 국민기업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한다.
반면, 한국인에게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한국 경제를 흔들리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끼게 만드는 기업 또한 삼성이다.
대표적인 이유로는 전 세계적으로 돈을 가장 잘 번다고 하는데 국내 고용률은 점차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 및 확보에 많은 비용을 써서 투자 위축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총매출이 한국 국내 총생산(GDP)의 약 14%나 차지하는데,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화웨이, 샤오미, 오포 등 중국 기업들에게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내주고 있고, 중국 기업의 공격적 기술개발로 인해 조만간 반도체 기술격차가 1년도 채 되지 않을 거라고 하며, 수년째 차세대 사업을 탐색하고 있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부정적인 내용뿐이다.
어찌되었든 한국인은 삼성이 노키아처럼 사라져 한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보다 글로벌 Top 기업으로 지속·생존하여 한국인의 자랑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케네디와 무어(2004)의 「100년 기업의 조건」에 따르면 세계 기업의 평균수명이 고작 13년이고, 30년이 지나면 80%의 기업이 사라진다고 한다.
또한, 맥킨지 컨설팅사의 연구에 따르면 S&P500대 기업에 머무는 기간이 점점 짧아져 1930년대에는 65년 정도였는데 2000년 이후에는 평균 10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장수기업이 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의 경우 1969년 창립했으니 올해 50주년으로 반세기를 생존한 셈이다.
상대적으로 오래 생존했으니 그 생존력으로 더 오래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수명을 다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도 할 수 있다.
기업의 평균수명을 단축시키는 데는 급격한 환경변화가 큰 몫을 하는데,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환경변화가 기업 생존의 불확실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이는 기존 사업을 파괴시키고, 새로운 사업을 등장시키며, 사업 간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불확실성하에서 장수기업이 되기 위한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는 합리적인 다각화(Diversification)전략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업의 생존·경계·창출 등에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 속에서 어떤 비즈니스에 진출할지, 성공적인 진출을 위해 무엇을 할지, 진출 후 성과가 낮으면 어떡해야 할지 등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라고 한다.
따라서 과거 삼성이 최초로 글로벌 1등 기업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 세 가지 다각화 사례의 복기를 통해 기업이 당면한 신사업 결정 및 진출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의 다각화 사례
DRAM, TFT-LCD, 마이크로프로세서로의 다각화 배경 및 성과
DRAM(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은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으로 저장된 데이터가 시간과 전원의 끊김에 따라 소멸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휘발성 메모리라고도 부른다.
DRAM은 데이터를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곳에 사용될 수 있는데, PC,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각종 가전제품 등이 그 예이다.
삼성이 DRAM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그 당시 국내 소비가전 시장의 주요 경쟁자였던 골드스타(현 LG전자)를 능가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했으며, 소비가전에 들어가는 칩(Chip)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어 수입지연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체생산을 통해 이 같은 손해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1983년 2월 삼성은 이병철 회장의 강력한 의지 아래 DRAM 시장에 진입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 결과 1995년 256M DRAM의 세계 최초 개발자가 되었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TFT-LCD(Thin Film Transistor-Liquid Crystal Display)는 박막트랜지스터(TFT) 기술을 사용하는 액정디스플레이로 TV, 노트북, PC, 태블릿, 스마트폰, 옥외광고 등의 스크린에 적용된다.
삼성이 TFT-LCD로 다각화하고자 했던 핵심 동기는 DRAM과 비슷한데, TFT-LCD를 스스로 생산하면 자사의 다양한 전자제품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4년부터 삼성은 연구개발을 시작해서, 1993년 9월 기흥에 첫 번째 생산라인을 설치하고, 대량생산을 시작한 지 약 3년만인 1998년 일본보다 사이즈가 큰 14.1인치를 먼저 생산함으로써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였다.
이후 삼성은 LG디스플레이와 함께 대형 LCD 글로벌 시장에서 10년 넘게 1위의 자리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대만과 중국 업체의 과감한 투자와 가격경쟁력으로 삼성은 2000년부터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인 OLED 개발에 주목해 왔고, 2007년 세계 최초로 OLED패널 양산을 시작했다. 현재 OLED 세계 시장에서 넘버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는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의 핵심 기능을 통합한 집적회로로 컴퓨터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전자동 세탁기, 온도조절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 다양한 용도에 사용된다.
삼성이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관심을 갖게 된 주요 동기는 두 가지이다.
첫째, 삼성 반도체 사업의 70% 이상이 메모리(예: DRAM)이고 비메모리(예: 마이크로프로세서)는 겨우 10%뿐인 불균형적인 사업구조 탓에 메모리 가격이 급락할 때마다 매출이 출렁거리는 만성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동기는 외부적 요인으로 당시 새롭게 등장한 RISC(Reduce Instruction Set Computing)라는 아키텍처는 시장에서 지배적 디자인으로 군림하던 인텔의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ing)보다 성능이 월등하여 인텔의 독점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외부 동기에 의해 삼성은 RISC 아키텍처를 채택한 ‘알파칩’의 개발업체인 DEC(Digital Equipment Company)과 1997년 라이선스를 체결하고 DEC의 OEM업체로서 마이크로 프로세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심각한 재정문제로 DEC은 1998년 컴팩에 인수되었다. 다행히 삼성의 알파칩 라이선스 권한은 유지된 채 인수되어 삼성은 지속적으로 컴팩에 알파칩을 납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삼성과 컴팩은 API(Alpha Processor Inc.)라는 조인트벤처를 설립하여 컴팩의 주문량을 조달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마더보드와 같은 PC부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봄 컴팩은 HP에 인수되고 알파칩 부서는 다시 인텔에 인수되었으며, 인텔은 자사 제품인 Intanium을 위해 알파칩 생산을 중단시켰다.
결국 삼성은 API를 알파칩 라이선스 권리와 함께 AMD에 팔아버림으로써 마이크로프로세서로의 다각화는 성공하지 못한 채 종결되었다.
다각화의 성공요인
① 사업의 요구 역량과 기업의 기존 역량 간의 정합성이 높은 사업 선택
삼성이 다각화한 세 가지 사업의 특성을 비교했을 때 DRAM과 TFT-LCD는 주요 혁신 수단 및 요구 역량 면에서 상당히 유사하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많이 달랐다.
게다가 DRAM과 TFT-LCD사업의 특성이 유사하다보니 DRAM의 성공과정을 통해 삼성 내에 축적된 역량은 TFT-LCD사업이 요구하는 역량과의 정합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요구 역량과 기업 내 기존 역량 간의 정합성이 TFT-LCD에 비해 낮았다.
이 같은 이유로 TFT-LCD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그러지 못한 것이다.
② 기존 네트워크 및 자원의 활용도가 높은 사업 선택
DRAM사업을 시작하기 전 삼성은 소비가전 사업을 탄탄히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DRAM은 소비가전에 들어가는 부품으로서 소비가전의 구매자 네트워크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또한 소비가전의 글로벌 생산, 연구, 영업 네트워크 역시 DRAM사업에 활용 가능했다.
TFT-LCD 역시 소비가전의 부품으로 구매자 네트워크를 공유했고, 글로벌 네트워크 역시 소비가전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TFTLCD는 DRAM과의 사업유사성 때문에 DRAM에서 구축된 R&D 인력, 핵심 경영 인력, 투자전략, 생산 및 품질관리 전략 등과 같은 자원도 공유할 수 있었다.
③ CEO의 강력한 의지, 독립적인 연구조직,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
DRAM사업의 다각화를 결정할 때 대다수 임원들은 부정적이었다.
창립자인 이병철 회장이 DRAM의 미래 성장잠재력을 내다보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벌기업 구조의 장점인 계열사 간 재정지원(Crosssubsidization, WTO가입 이후 금지됨)까지 끌어들여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또한, 미국과 한국 양쪽에 DRAM만을 위한 독립적인 연구조직을 만들어 상호경쟁과 협력을 촉진하여 오직 DRAM연구개발에 헌신토록 했다. TFT-LCD도 마찬가지이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약 4년 동안 매년 1억 달러에 달하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을 지속시켰고, 한국에 TFT-LCD만을 위한 독립적인 연구조직을 조성하여 오직 TFT-LCD연구에만 매진했다.
④ 기술획득 전략의 상황적합적 진화:라이선싱-내부 R&D-선진기업과 전략적 제휴
기술 기반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기술의 확보이다.
DRAM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삼성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진기업들이 쉽게 기술을 이전해(라이선싱) 주었다.
그러나 삼성의 내부 기술역량이 진보하면서 견제가 심해지고 라이선싱이 어렵게 되어 1M DRAM부터는 내부 R&D를 통해 기술을 획득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이유로 TFT-LCD사업 역시 처음부터 내부 R&D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은 DRAM과 TFT-LCD 양쪽에서 피나는 내부 R&D 과정을 성공함으로써 선진기업으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그 결과 그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더 큰 기술적 진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⑤ Path-following(경로추종)이 아닌 Path-creating(경로창조) 전략의 활용
삼성은 처음에 DRAM의 글로벌 리더인 일본 기업이 하는 대로 따라서 기술투자를 했으나 1993년 다른 결정을 내렸다.
당시 6인치 웨이퍼 생산설비가 표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8인치 웨이퍼 생산설비에 투자했다.
즉, 기존 경로를 따라가기보다 새로운 경로를 창조하였고 이것이 성공의 주요 단초가 되었다. 이 같은 전략은 TFT-LCD에서도 동일하게 활용되었다.
삼성은 일본이 주도하고 있던 11.3인치 패널을 건너뛰고 12.1인치 패널 생산라인을 가장 먼저 시도하였던 것이다.
⑥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의 효과적 활용
삼성은 CEO 중심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력한 실행, 내부 R&D를 통한 자사 설계 및 브랜드화한 제품 생산을 선호하는 경로의존성을 가지고 있었다.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 같은 경로의존성 덕택에 ‘알파칩’이 시장성을 잃고 자사 설계 및 브랜드화 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자마자 신속하게 그 사업에서 퇴출함으로써 사업의 손실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알파칩에서 축적한 자사 기술을 기반으로 제품화할 가능성을 모색함에 따라 DDI, CMOS 카메라폰 이미지센서, 모바일 CPU 사업으로 다각화 방향을 선회할 수 있었다.
기존 기업들의 경로의존성은 ‘경쟁력의 덫(Competence trap)’이 되기도 하지만 삼성처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결론
최근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여러 사업들이 융합되고 사업의 경계도 사라져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차세대 사업을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이 같은 시기는 불확실성의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과거에도 있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과거 삼성은 반도체 산업에서 신사업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결정했고 거기에는 나름의 성공비결이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사업이 요구하는 역량과 기업이 가지고 있는 역량 간의 정합성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정합성이 높을수록 기업 내 활용가능한 자원도 많아지고, 내부 연구개발의 성공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리고 설사 실패했더라도 신속하게 성공적으로 사업의 방향을 전환할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는 모든 것이 힘들어지고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게 된다.
독자 중에는 20세기에 일어난 해묵은 삼성의 다각화 사례를 21세기에 꺼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원칙’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20세기의 삼성의 성공사례가 21세기의 삼성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