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R&D 나침반 - 돼지로부터 인류의 새 삶을 보다

R&D 나침반은 최신 과학기술의 이슈와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글_ 류준영 기자(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의 해’가 밝았다.

인간에게 유용한 단백질 섭취원인 돼지가 최근에는 미래 지구촌 식량난 해결사로, 생명연장 과학기술의 게임 체인저로 부각되고 있다.


영화 속 슈퍼돼지 ‘옥자’ 차츰 현실화

SF(공상과학) 영화 ‘옥자’에는 무게 6톤, 키 2.4미터의 거대돼지가 등장한다.

이름은 옥자. 몸집만 큰 돌연변이 돼지가 아니라 글로벌 바이오기업에서 비밀리에 추진하는 유전자(DNA) 변형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한 ‘슈퍼돼지’다.

유전자변형(GM) 돼지라고도 부른다. 미래 식량난 해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실에서도 슈퍼돼지는 존재한다. 지난 2015년 한국과 중국의 공동연구팀이 유전자가위 기술로 만든 이중 근육 돼지가 대표적이다.

근육 성장 억제 유전자 ‘마이오스타틴’을 제거, 근육량이 많고 단백질 함량이 높다.

최근에는 국내 바이오기업 툴젠이 중국 옌볜대 윤희준 교수팀과 함께 근육강화 돼지를 개발해 주목받았다.

툴젠에 따르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돼지 DNA에서 근육 성장 관련 유전자를 교정, 근육량을 크게 늘린 슈퍼돼지를 개발했다.
 
하지만 현재 식용으로 판매되는 슈퍼돼지는 아직 없다.

GM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여전히 큰 데다 유전자 교정 농산물에 대한 규정도 없기 때문이다.
 
이밖에 GM 돼지로는 전염병에 안 걸리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질병저항 돼지’, 바이오 장기 생산이 가능한 ‘형질전환 돼지, 미니돼지, 무균돼지’ 등이 있다.


원숭이보다 왜 돼지인가

식품업계뿐만 아니라 생명의료계에서도 돼지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말기 질환 환자에게 돼지의 장기를 이식하는 ‘이종장기 연구’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이종장기 기술이란 인간의 조직 및 장기를 대처하기 위해 특수하게 개발된 동물의 조직 및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2~3년 내 실제로 환자에게 돼지의 피부, 각막, 췌도를 이식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종장기 공여 동물로 인간에 가까운 원숭이보다 ‘돼지’에 더 관심을 두는 까닭은 무엇일까.

영장류인 원숭이의 경우, 한 번에 태어나는 개체수가 적고 성장 속도도 느린데다 장기 크기도 인간에게 이식하기엔 너무 작다.

반면, 돼지는 인간 몸속 구조와 비슷하다. 임신 기간이 평균 114일로 짧고, 한 번에 5~12마리의 새끼를 낳아 장기 획득 측면에서 비교적 유리하다.

과학자들은 일찍부터 미니돼지를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했다. 미니돼지는 다 자라도 60~80㎏ 정도 밖에 안된다.

일반 돼지의 3분의 1 크기다. 이뿐 아니라 심장크기도 사람 심장의 94%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지난해 5월 국립축산과학원은 돼지의 각막을 원숭이에게 이식, 1년 이상 정상적인 눈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결과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라 사람에 다른 동물의 각막을 이식하는 임상 실험 시행 가능성도 높아졌다.

우리나라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는 하루 평균 4명 이상이 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최근 10년간 한국의 장기이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가 1,610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9년(829명)과 비교할 때 10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식 평균 대기일수는 3년 3개월, 하루에 4.4명꼴로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다.

이종장기 기술은 이 같은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박정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이종장기는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어 현재 동종 이식을 위한 장기의 심각한 부족 상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인공장기 관련 윤리적 논란이 거세다. 국제동물단체 '컴패션 인 월드 파밍(Compassion in World Farm-ing)' 측은 “인간들이 가축을 통해 인공장기를 생산하는 농장을 만들고 있다”며 큰 우려를 표했다.

이 단체는 “인공장기를 찍어내기보다는 장기를 기증하는 기부문화 확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동물애호 단체들의 비판 수위가 높아지자 한때 인공췌장 실험 지원을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장기에 대한 옹호론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하버드대 조지 처치 교수는 “유전자편집 기술로 취약한 유전자(DNA)를 없앤 인공장기는 그동안 사람들이 기증해온 장기보다 훨씬 더 청결하고,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령화로 장기 부전 환자 증가 추세

우리나라는 2017년 8월말 기준으로 고령 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고령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심혈관 질환, 신경 질환, 당뇨병, 골관절염 등 퇴행성 질환 및 말기 장기부전 환자의 숫자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인간의 손상된 장기를 완전히 대체해 줄 바이오 인공장기 개발에 대한 요구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바이오 인공장기는 돼지를 통한 이종장기를 비롯해 특정 세포 및 생체재료를 이용해 장기를 개발·대체하는 ‘세포 기반 인공장기’, 바이오 및 전자기계 기술을 융합해 만든 ‘전자기기 인공장기’도 있다.

현재 활용되고 있는 바이오 인공장기 기술은 인공피부나 연골과 같은 일부 구조적 조직에 한정돼 있다.

하지만 최근 면역조절기술, 역분화 줄기세포 분화 및 배양 기술, 3D 바이오 프린팅기술 등 각종 관련 기술들이 급속하게 발전함에 따라 바이오 인공장기 기술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약 10~15년 후면 바이오 인공장기 기술이 상용화되고 확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바이오 인공장기 시장 전망은 매우 밝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지온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이종장기이식 시장은 2022년 452억 달러(약 50조 5,000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