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생명이야기 - 환경호르몬,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재미있는 생명이야기는 우리 일상과 연계되어 있는 생명과학의 주요 개념들을 살펴봅니다.
글_ 방재욱 명예교수(충남대학교 생명시스템과학대학 생물과학과)
환경호르몬 문제가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와 함께 ‘세계 3대 환경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으나 그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 인류가 미래 사회에서 겪으며 해결해 나가야 할 주요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환경호르몬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환경호르몬의 이해
어린이들이 환경호르몬에 많이 노출되면 성장은 물론 생식기의 발달이나 뇌의 발달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조숙증으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데, 성조숙증에도 환경호르몬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 일상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환경호르몬은 우리 몸의 내분비선에서 분비되는 정상 호르몬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뇌하수체, 갑상선, 생식선, 이자 등의 내분비선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은 혈액을 따라 표적세포로 전달되어 특정 생화학 반응에 관여해 우리 몸의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에 비해 인체 내에서 정상적인 호르몬 기능에 영향을 주는 체외 화학물질인 환경호르몬은 생체 내의 내분비계 기능에 나쁜 영향을 미쳐 건강에 장애를 유발하며 후손에 전달되기도 한다.
환경호르몬(Environmental Hormone)의 정식 명칭은 ‘외인성 내분비 교란물질’이다.
‘외인성(外因性)’이라는 말은 환경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생성되어 분비되는 물질이 아니라 산업 현장이나 쓰레기 소각장 등에서 방출되거나, 컵라면 용기나 플라스틱 일용품 또는 어린이 장난감 등에 함유되어 있는 특정 인공합성 화학물질이 몸으로 들어와 원인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내분비 교란물질’이란 말은 환경호르몬이 우리 몸에 들어와 정상 호르몬의 작용을 교란시키는 물질이라는 말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다이옥신, 비스페놀 A, 스티렌다이머, 프탈레이드, 폴리카보네이트 등 70여 종의 물질이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
표 1은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는 물질들의 명칭과 주요 발생원을 보여준다.
환경호르몬의 한 실례로 쓰레기 소각장에서 분출되는 다이옥신의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다이옥신이 체내로 들어오면 정상 호르몬의 작용을 교란시켜 유전자 변이나 간의 손상, 기형아 출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다이옥신은 면역체계와 신경계의 교란, 피부 질환이나 우울증, 분노 등의 유발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쓰레기 소각장에서 배출되는 다이옥신이 대기 중으로 올라가 비에 섞여 지상으로 내려오면 생물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빗물에 섞여 내린 다이옥신을 흡수한 채소나 목장에서 생육한 소의 고기나 우유를 먹을 경우 다이옥신이 몸에 축적되어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게 된다.
강물에 섞여 바다로 흘러 들어간 다이옥신은 생태계에 더욱 심한 영향을 미친다.
식물성 플랑크톤에 흡수된 다이옥신은 그를 먹이로 하는 물고기의 몸속에 축적되고 그 생선을 먹게 되면 다이옥신이 대량으로 우리 몸속에 축적될 수 있다.
이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특정 화합물이 영양단계가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10배씩 농축되는데, 높은 영양 단계에 있는 육식성 물고기를 먹을 경우 몸에 농축되는 다이옥신의 농도가 매우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고엽제가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되며 7월 18일이 ‘고엽제의 날’로 제정되어 올해로 22회를 맞이하게 되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고엽제는 베트남 전쟁 시 미군이 베트콩들이 숨어 활동하는 밀림의 숲을 고사시키기 위해 정글에 뿌린 인공적으로 합성해 만든 제초제의 일종이다.
플라스틱을 만들 때 사용하는 합성수지 원료인 비스페놀 A(BPA)도 위험성이 높은 환경호르몬의 일종으로 젖병이나 플라스틱 장난감, 통조림이나 음료수 캔 심지어는 계산기에서 뽑아내는 영수증이나 은행의 대기 순번표 등에서도 검출이 된다(그림 2).
비스페놀 A는 불임, 유방암, 기형아 출산, 성조숙증, 생식 기능 장애 등을 유발하며, 당뇨병, 비만, 지능이나 행동 장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음료수 병으로 많이 애용하고 있는 플라스틱 텀블러는 비스페놀 A의 위험성이 알려지며 비스페놀 F나 비스페놀 S가 대체물질로 사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환경호르몬,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평소 환경호르몬에 노출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일상에서 빠르고 간편함을 위해 거의 매일 접하는 생수병, 비닐 랩, 음료수 캔, 종이컵과 같은 일회용품은 물론 전자계산기의 영수증 등에도 환경호르몬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환경호르몬은 유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식세포에 붙어 5대까지 유전될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환경호르몬 문제는 인류의 미래 사회에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주요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재난관리, 미세먼지, 신기후 체제 대응, 해양환경 보전, 탈원전 정책 등은 제안되고 있으나 환경호르몬 문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환경호르몬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나 부처별 역할 분담을 이유로 공동 대응체계 구축 및 대책 마련의 어려움을 표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환경호르몬 문제에 대한 정부나 관련 부처의 관심도가 낮은 이유는 환경호르몬의 영향이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며,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지적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 5년 임기의 정권에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환경호르몬의 피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환경호르몬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유기농산물 섭취, 과자나 라면 봉지, 비닐 봉투, 플라스틱 제품 등의 쓰레기 배출량 줄이기, 자주 손 씻기, 플라스틱 장난감을 살 때 재질 표시 확인 등이 제안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정부 관계 부처, 시민단체들은 물론 언론에서도 환경호르몬 문제의 본질에 관심을 가지고 대처 방안을 마련해 실천해 나가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환경호르몬의 영향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의 시행으로 가정이나 사회의 환경호르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해 나가는 방안 마련도 시급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