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경영 심리학 - 계획오류 현상의 이해와 방지를 위한 대책
자기경영 심리학은 리더십,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등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생각의 원리(심리)’를 다양한 실례들과 함께 다룹니다.
"왜 계획대로 되지 않는가? Planning Fallacy!" : 계획오류 현상의 이해와 방지를 위한 대책
글_ 김경일 교수/센터장(아주대학교 심리학과,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
이제 다시 한 해의 시작이다. 많은 분들이 올 한 해를 위한 계획을 세우셨을 것이다.
야심찬 사업계획에서부터 작은 습관을 고쳐보고자 하는 것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들의 대부분은 왜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걸까?
다시 말해서 왜 늘 예측과 다르게 진행되는 걸까? 인간의 중요한 고민 중 하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실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심리학자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왜 계획대로 되지 않은가를 한 번 알아보자.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부르며 꽤 오래전부터 연구를 해왔다.
‘언제까지 무엇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解) 예측이 틀리는 경우들을 통칭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 그만큼의 달성이 어려운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낙관적 기대에 의해 시작했다가 나중에 낭패를 보는 모든 경우들을 일컫는다.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신이 아니면 어떤 계획도 세워 보지 않은 사람 둘 중의 하나다.
심리학자들이 농담을 할 정도로 우리 모두가 꽤 자주 겪는 낭패들이다. 그리고 계획 오류는 대부분 이런 후반부를 포함하고 있다.
목표시점이 가까워지면서 그제야 시간과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많은 일들을 허둥지둥 대면서 동시에 진행하려는 혼란스러운 상태들 말이다.
이런 상황에 도달하게 되면 당연히 성공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일의 성과도 예측과는 달리 저조하게 된다. 직무 만족도도 떨어지고 그로 인해 다른 일에도 의욕이 떨어진다.
이러한 오류는 정부, 기업 심지어는 친목단체 등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하며 그 낭패의 후유증으로 구성원들 간의 다양한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즉 계획오류가 반복되면 그 부작용은 의외로 계획된 일의 실패에만 그치지 않고 일파만파의 폐해가 확산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이러한 낙관적 예측과 그에 따른 실패를 맛보게 되는가?
가장 흔하면서도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그 일을 완성할 수 있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과 목표를 하나로 묶어서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있을 집들이를 준비하는 새내기 주부가 있다고 치자.
집들이 준비를 하면서 “저녁 전까지 식사준비를 마치자”라고만 마음먹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시간의 잣대도 하나(오늘 하루)고 목표도 하나(집들이 마치기)가 된다.
목표가 하나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그거 하나를 오늘 내에 못하겠어?”라는 낙관적 생각이 들게 된다.
게다가 그 최종목표를 위해 해야 할 세부적인 일들(국, 다양한 반찬들, 밥, 후식으로 사용할 과일, 심지어 거실과 화장실 청소 등)이 모두 하나의 시간잣대와 목표로 들어간다.
따라서 일의 경중이나 우선순위, 더욱 중요하게 개별적인 하나의 일들이 어떤 시간을 요구하는가에 대한 안목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반면, 재치 있는 주부라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무언가 간단하지만 큰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먼저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종이 한 장을 꺼내 놓고 오늘 할 일들을 적어내려 가는 것이다.
그렇게 써내려 가면서 일의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연관성 있는 일들을 서로 이어붙이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시간잣대와 하나의 목표는 여러 개의 시간 구간과 세부목표들로 구성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하면서 허둥지둥하게 되는 현상을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게 되고 차근차근(즉, 하나하나씩)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오해가 하나 풀리게 된다. 우리는 흔히 개인이든 조직이든 시간이 없고 조급해 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하려고 허둥지둥 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 혼란스러움 역시 낙관적 기대에 의한 계획오류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위에서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을 해본들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이미 앞에 나와 있다. 하나의 일을 여러 가지로, 무조건 쪼개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 쪼개진 일들을 더 작게. 이러한 작업을 심리학에서는 보따리를 푼다는 것에 비유해 Unpacking이라고 부른다.
Packing이 보따리를 싸는 것이니 un이 붙으면 풀어내는 것을 뜻한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게 되면 그 큰 목표를 이루고 있는 하위 목표들(즉, 구체적 일들)로 다시 열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걸 가장 쉽게 해 주는 도구가 있다. 그것이 바로 ‘시간’을 정해 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내로’와 ‘OO 시까지’는 심리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류의 데드라인이다.
‘오늘 내로’라고 하는 데드라인은 엄밀히 말하자면 데드라인이 아니다.
단지 오늘의 거시적인 최종 상태일 뿐이다. 그런데 ‘OO시 까지’는?
예를 들어 ‘오후 6시까지 그 일을 마친다’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 전인 오후 4시까지 그 일의 하위목표 하나를 마쳐야 한다.
그리고 오후 2시 전에 다시금 더 작은 목표를 마쳐야한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일들을 Unpacking 하기가 쉬워진다. 게다가 이렇게 일을 쪼개고 집중하는 과정에서 성취감 역시 더 잘 느낄 수 있다.
오늘 해야 할 일의 제목 하나만 덩그러니 가지고 있으면 오늘의 결과는 0점인 실패 아니면 만점인 성공이다. 그리고 아마 실패의 날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제목을 명확한 데드라인에 힘입어 10개로 쪼개어 놓으면 나의 오늘 하루에 대한 점수는 100점 만점에 70점, 80점, 혹은 90점도 부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점수는 재빨리 다음날 획득하면 된다. 그러니 성취감과 일의 연계성 역시 덤으로 가져올 수 있다.
하버드 대학의 다니엘 길버트(Dianel Gilbert) 교수와 버지니아 대학의 티모시 윌슨(Timothy Wilson) 교수는 ‘배고플 때 더 많은 쇼핑을 한다’는 사람들의 오류를 어떻게 하면 바로잡을까 하는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실제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쇼핑 시 음식과 상관없는 물건들도 카트에 마구 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쇼핑센터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 살 물건들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하고 그 종이를 들고 입장하게 하면 이런 현상이 말끔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심지어 만만해 보이는 일일수록 계획은 더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구체적이지 않은 것은 계획이 아니다. 목표일 뿐이다.
‘목표를 만들어 놓고 계획이라 착각하지 말라’는 이 한 문장만 책상 위에 붙여 놓아도 계획오류의 대부분은 막아낼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