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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 과학세상 -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할 때 ‘셋’을 택하는 방법이 있다?-우리나라의 이색 전시관

역발상 과학세상은 역발상으로 우리 삶을 유익하게 만드는 과학기술들을 다양한 실례들과 함께 소개합니다.

글_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양자택일(兩者擇一)’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양쪽 모두 명분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선택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선택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소개하는 ‘화석 위에 건립된 과학교육원’과 ‘유적지 위에 세워진 업무용 빌딩’은 바로 ‘개발’과 ‘보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해결한 역발상의 결과물이다.


화석 위에 세워진 차별화된 과학교육원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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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에 위치한 경남과학교육원 건물은 다른 지역의 과학교육원들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ㄷ’자형의 지하 1층과 지상5층 본관건물은 특별할 것이 없지만, 이 사이에 있는 반지하층의 전시관에 그 비밀이 숨어있다.
 
바로 천연기념물인 새 발자국 화석위에 교육원이 지어져 있는 것이다.

공사 중에 발견된 새발자국 및 공룡발자국이 찍혀있는 화석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그 위에 과학교육원 건물을 지은 것이다.
 
‘과학’과 ‘화석’이란 멋진 조합을 가진 차별화된 교육원 건물이지만, 처음 계획은 이런 형태의 건물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새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것은 과학교육원 공사가 착공된 지 1년쯤 지난 1997년의 일이었다. 지하층 공사를 위해 바닥을 파내다가 새 발자국이 찍혀있는 돌이 발견된 것이다.

교육원 측은 곧바로 정부에 신고를 했고, 문화재청 실사단의 조사 결과 1억 년 전 중생대 조류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무려 1억 년 전의 화석이 발견되면서 고고학계는 환호성을 질렀지만, 경남과학교육원은 난처한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사현장에서 문화재가 발견되면 대부분 공사를 포기하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배정받은 건축예산이 벌써 40억 원 정도가 투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문화재청의 정밀조사 결과를 기다리던 교육원측은 새 발자국 화석이 천연기념물 395호로 지정되면서 기대를 접게 되었다.

이때가 1998년 말로서, 화석이 발견된 지 꼭 1년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현장은 유물보존을 위해 흙으로 메워지면서 공사는 전혀 진척되지 못했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경남과학교육원 신축 문제는 새로 부임한 교육감이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면서 반전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새로 부임한 경상남도 교육감이 문화재청에다 재심의를 요청하며 과학교육원의 설립 취지를 강력하게 설명한 것이다.

그는 “과학교육원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 청소년들에게 과학이 무엇인지를 배우도록 하는 곳이 아니냐? 화석, 그것도 모형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화석이라면 다른 곳에 있어도 일부러 가지고 와서 보여줘야 할 형편인데, 교육원 아래에 화석 현장이 보존되어 있다면 이것 만큼 좋은 과학교육의 상징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설득한 것이다.

이렇게 교육감이 관계 기관들을 쫓아다니며 공사 재개를 위해 노력하는 동안 과학교육원측도 다양한 설계아이디어를 제공하여 힘을 보탰다.

특히 새발자국 유적을 건물내부로 끌어들여 유물도 보존하면서 교육원도 짓는 역발상 설계방안이 문화재청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심의를 미루던 문화재위원들도 “유적 보존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과학교육과 화석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하지 못했다”라고 미안해하며 2년 뒤인 2005년에 허가를 내줬다.

비록 당초 예상보다 8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유적발굴은 공사중단을 의미한다’는 불문율의 악순환을 끊고 진정한 의미의 과학교육원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공사 재개의 실마리를 풀은 교육감은 “취임직후 폐허처럼 방치된 공사 현장을 둘러보면서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창의적 방안이 없을까 하고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마을을 그대로 재현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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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위에 세워진 경남과학교육원 같은 건물은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다.

바로 ‘한국의 폼페이’라 불리고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다.

연면적 3800여㎡에 달하는 이 전시관은 서울시 최대 규모의 유적전시관으로서, 서울 종로구 공평동의 한 신축 빌딩 지하에 위치해 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조선시대 집터 및 골목길, 생활유물 등 총 1,000여 점의 전시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관계로 서울역사박물관의 별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의 탄생은 서울시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실시한 도시재개발사업 전에 문화재 발굴조사를 앞서 시행하는 정책과 맞물려 있다.
 
정책시행 전만 하더라도 서울 4대문 안의 땅속 문화재들은 경제성장을 위한 재개발 우선정책에 밀려 그냥 사라져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었다.

이후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에 눈뜬 서울시는 2004년에 시행된 청진 6지구 재개발사업부터 문화재발굴조사를 먼저 실시하도록 조치했다.

그 결과 청진지구를 비롯한 4대문 안 지역에서 조선시대의 마을흔적을 하나둘씩 발견했고, 국보급 백자들도 다량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재개발사업의 특성상 개발사업을 포기하고 문화재를 보존하기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개인 소유의 토지는 이익 추구와 문화재 보존이라는 명분이 맞물려 해결이 쉽지 않은 양상을 띠었다.

이 같은 난제(難題)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토지 주인들에게 역발상적 개발 방안을 제시했다.

발굴된 유적지 및 유물들을 전면 보존하기 위해 건물을 지을 시 용적률을 상향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 같으면 22층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는 토지이지만, 용적률을 높여 26층으로 지을 수 있도록 조정했다”라고 밝히며 “대신에 토지 주인들은 문화재가 발굴된 지하 1층에 유적지 전시관을 조성한 후 기부 채납하도록 하는 계약을 맺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공평도시 유적전시관 건립 사례가 기존의 문화재 보존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