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김상선 원장
기업연구소 4만 개 시대의 글로벌 혁신전략
▲ 김상선 원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기업연구소가 4만 개를 돌파하였다. 2만 6천 개에 달하는 연구개발 전담부서를 감안하면 6만 개가 넘는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R&D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기업연구소가 1만 개를 돌파한 것이 지난 2010년인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엄청난 발전이다.
여기에는 R&D가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과 함께, 정부의 강력한 과학기술 드라이브 정책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R&D 지원제도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양적 확대는 비단 기업 부문만이 아니다. 정부 역시 R&D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지난 1982년 130억 원 규모로 시작한 정부 R&D 예산은 내년이면 2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녹록지 않은 국가재정 여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올해 대비 3.7% 증가한 20조 4천억 원으로 편성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과학기술을 둘러싼 최근의 주변 여건에 비추어 볼 때 이 같은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무인자동차, 드론, 바이오, 나노 기술 등 아침마다 책상으로 전달되는 과학기술 뉴스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빠른 속도로 우리 일상을 점령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기술이 제조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삶의 질 향상, 사회문제 해결, 외교, 안보, 문화, 예술, 체육 등 모든 분야의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핵심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바야흐로 과학기술 중심 사회가 본격화되고 있다.
날로 증대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국가 차원의 R&D 수요를 생각하면 정부 R&D 예산이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좀 더 증액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동안 외환위기(1997), 글로벌 금융위기(2008) 등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기업의 지속적인 R&D 투자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GDP 대비 R&D 투자비율 세계 1위, 절대 규모 세계 5위 등 비약적인 양적 성장과 함께 과학기술 국제경쟁력 세계 10위권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수학술지 논문 수, 인용 건수, 기술무역수지, 노벨상 등 질적 성과가 미흡하다는 소위 Korea R&D Paradox를 극복하기 위해 선도형 R&D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7월 R&D뿐 아니라 인력양성, 기술사업화, 산업진흥 등 국가 전반의 혁신역량 고도화를 위해 『국가기술혁신체계(NIS) 고도화를 위한 국가R&D 혁신방안』을 발표하였다.
혁신방안의 성공적인 이행을 위해 첫째, 연구자 중심의 R&D 지원시스템 혁신을 위하여 현재 각 부처별로 운영되고 있는 R&D 관리규정을 일원화·간소화하여 단일규정 체계로 전환하고, 고위험-고수익형 연구프로그램 확대 추진, 적재적소 투자를 위한 R&D 예타 제도 및 투자체계 개선, 국가적 현안에 대한 과학기술전략 프로그램 도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둘째, 산학연 및 지역 등 혁신주체의 역량을 제고하고 이들 상호 간의 연계를 대폭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혁신형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고 중소기업 지원 R&D 사업의 비효율 요인을 제거하여 기업 부문의 혁신역량 제고에 주력하고, 균형발전을 위한 지역주도 R&D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셋째, 미래 신산업 창출을 위한 혁신성장동력 육성 및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생활연구 투자를 확대하는 등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 창출에 주력할 계획이다.
아울러 10년 만에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복원하여 R&D 혁신을 위한 부처 간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통하여 반기별로 이행상황을 점검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혁신방안은 어느 때보다 기업 부문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대학, 공공연구기관과 함께 NIS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의 혁신역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국가 R&D의 3/4을 차지하는 기업 R&D는 여전히 소수의 대기업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4인 이하 소규모 연구소가 전체의 62%, 설립 10년 미만 연구소가 8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과 수도권 편중,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협업 부족, 기술정보 부족, 무엇보다 고급 연구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 기업연구소들의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간 정부와 유관기관에서 다양한 방안을 제안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우수 인재 확보 및 역량 강화, 핵심 원천기술 확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풍토 조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제안해 본다.
우선 기존의 기업 지원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지원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무려 260개 기관에서 1,300여 개가 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제도가 당초의 목적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여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늬뿐인 제도에 머물고 있지 않은지 검토하고 보완해야 한다.
지원제도가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에 힘이 되도록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수 인재 개발과 핵심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필요한 신규 제도를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발굴·추진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의 신입 직원을 일정 기간 동안 관련 분야의 출연(연)이나 대학에서 교육훈련(On-the-job-training)을 받도록 하고 정부가 일정률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방안이다.
신입 직원은 R&D 기본역량을 학습할 수 있고, 기업에 복귀한 후에는 기업과 연구소, 대학 간의 기술협력·기술이전의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기업 R&D의 애로사항 중 하나인 기술정보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연간 20조 원에 달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흔히 기초·원천연구의 경우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될 때까지는 기업과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여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 발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연구성과가 나온 후에 수요자를 찾는 것은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
연구개발 초기부터 전주기에 걸쳐 R&D 정보를 공유하고 수요자와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의 R&D 경쟁력 제고는 물론 연구성과의 이전·확산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산학연, 동종·이종, 대기업·중소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을 대폭 강화해 나가야 한다.
특히 대학이 배출하는 고급 인력과 연구성과의 최종 수요자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교육과 R&D에 대한 기업의 역할이 미미한 수준이다.
양적·질적 측면에서 산학 협력을 강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글로벌 R&D 경쟁력 강화를 장려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우수한 혁신사례를 발굴하여 널리 확산하고, 성실 실패를 용인해야 한다.
기업들이 기술혁신 과정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지속적으로 발굴·개선해야 한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4차 산업혁명에 기업들이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혁파하는 일에 가일층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