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생명이야기 - 나라꽃 무궁화에 담긴 이야기들
재미있는 생명이야기는 우리 일상과 연계되어 있는 생명과학의 주요 개념들을 살펴봅니다.
글_ 방재욱 명예교수(충남대학교 생명시스템과학대학 생물과학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의 사회적 이슈들과 함께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2018 러시아 월드컵’으로 떠들썩했던 무술년(戊戌年)을 돌아보며, 나라꽃 무궁화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애국가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에서처럼 지금이 바로 우리 모두가 나라꽃 무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믿고 배려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라꽃 무궁화축제가 매년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올해도 ‘제28회 나라꽃 무궁화 전국축제’가 8월 10일~15일에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 무궁화축제’(7. 22~9. 2), 전북 완주의 ‘무궁화 테마식물원 무궁화축제’(8. 10~12), 강원도 ‘홍천 무궁화축제’(10. 5~6) 등 전국에서 무궁화 축제가 열렸다.
금년에는 독일에서도 9월 8일 고국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2018년 가을 무궁화축제’가 개최되기도 했다.
나라꽃 무궁화가 지니고 있는 특징은 무엇이며, 어떻게 나라꽃으로 전래돼 온 것일까.
그리고 국가의 표상(表象)인 국장(國章; 國家紋章의 줄임 말)이나 표장(標章)에 사용되고 있는 무궁화의 상징성은 무엇일까.
무궁화의 특징과 유래
꽃이 아름답게 오래 피는 무궁화는 오랜 옛적부터 우리 겨레의 사랑을 듬뿍 받아오고 있는 나라꽃이다(그림 1).
무궁화(無窮花)의 한자말에서 무(無)는 ‘없을 무’, 궁(窮)은 ‘다할 궁’으로 ‘공간이나 시간이 끝이 없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궁화는 목근(木槿) 또는 순화(舜花)로 불리다가 꽃이 오래 피는 특징에 따라 무궁화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무궁화의 영어 명칭은 ‘성스러운 땅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라는 의미를 간직한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이다.
나라꽃을 지칭하는 국화(國花)는 그 나라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역사와 관련이 깊은 식물이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국의 국화는 장미이고,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국화는 에델바이스이다.
일본의 국화는 벚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주(州)를 상징하는 주화(州花)는 있지만 국화는 제정되어 있지 않다.
무궁화의 학명(學名) ‘Hibiscus syriacus L.’에서 속명(屬名)인 ‘히비스커스(Hibiscus)’는 아름다운 이집트의 히비스 여신(女神)을 닮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종명(種名)인 ‘시리아커스(syriacus)’는 스웨덴의 분류학자 린네가 학명을 지을 때 무궁화의 원산지를 시리아로 생각하고 붙인 명칭이지만, 무궁화의 자생지는 중국과 인도 지역으로 우리나라에도 자생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가 3~5m 정도로 자라고, 7월부터 9월까지 100여 일 동안 계속 꽃망울을 터뜨리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무궁화는 병충해에 강한 특성도 지니고 있다.
무궁화의 유래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근역(槿域)이라 지칭한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역에서 근(槿)은 ‘무궁화나무’를 의미하는 말이다.
신라 때 최치원은 당(唐) 나라에 보낸 문서에 신라를 ‘무궁화의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근화향(槿花鄕)’으로 지칭했다.
무궁화라는 명칭은 고려 말에 이규보가 지은 동국집(東國集)에 ‘무궁한 꽃’을 의미하는 무궁화(無窮花)로 처음 기록되어 조선시대로 이어져 왔다.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는 데는 일제(日帝)강점기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일제는 무궁화가 독립 운동가는 물론 민중에게도 우리나라와 민족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음을 우려해 무궁화 말살정책을 펴나갔다.
어린 학생들에게 무궁화를 볼품이 없는 지저분한 꽃이라고 하며 심지 못하게 한 것은 물론, 자라고 있는 무궁화를 모두 캐버리도록 지시하고, 무궁화를 캐낸 자리에는 벚꽃을 심도록 해 우리 민족혼을 말살하고 일본인화 하려는 식민지정책을 강화해 나갔다.
이런 일제의 만행으로 무궁화가 나라 독립의 표상으로 민중들의 가슴에 더욱더 깊게 심어졌다.
무궁화 국장과 표장
1945년 해방 후 1948년에 수립된 정부에서 후렴에 ‘무궁화’가 들어간 애국가(愛國歌)를 제정하며, 무궁화는 자연스럽게 국화로 정해지게 되었다.
당시 정부는 무궁화의 상징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문교부령으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상징 문양(紋樣)을 무궁화 도안으로 지정했다.
무궁화 꽃은 1947년 7월 1일에 발행된 백원(百圓)짜리 지폐(그림 2)와 우표 등에 표기되어 왔으며, 현 지폐의 뒷면에도 작은 문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1949년 정부의 ‘국기제작법고시’에 따라 태극 문양과 사괘가 배치된 태극기가 국기(國旗)로 제정되었고, 1950년 1월 무궁화 꽃봉오리가 국기봉으로 선정되었다.
1963년에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이 태극 문양을 무궁화 꽃잎 다섯 개가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제정되었으며, 아래쪽의 리본에는 국호인 대한민국을 쓰고 있다.
무궁화 문양은 정부, 국회, 법원 등 정부 부처의 상징 표장(標章)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국회 의정실과 헌법재판소의 정중앙에도 무궁화 문양이 걸려 있다.
국장은 정부의 외교 문서, 훈장 및 대통령 표창장, 여권 등에도 사용되고 있다.
청와대 정문과 대통령 집무실 중앙에는 두 마리의 봉황 가운데에 황금색 무궁화 문양이 있는 상징물이 자리하고 있다.
무궁화 사랑은 가족과 이웃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제 무궁화가 간직하고 있는 ‘무궁(無窮)’한 마음으로 서로 신뢰하고 배려하는 사회 실현에 함께 나서보자.
남북이 진정한 통일을 이루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애국가의 후렴이나 동요 무궁화의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에서처럼 무궁화가 진정한 나라꽃으로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삼천리강산에 우아하고 아름답게 피어 우리민족의 기백을 높이는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