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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과학탐구 - 붉은불개미는 지구를 정복하는 중인가?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개미는 누구에게나 친근하다.

파리, 모기, 바퀴벌레 같이 당연히 박멸대상인 ‘해충’과 달리 – 개미 역시 방제 대상이지만 - 어린 시절부터 선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서 개미는 성실하게 협동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그려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공전의 베스트셀러 ‘개미’에서는 인간도 경탄할 만한 세계를 건설했음을 보여줬다.

최근 개미는 헐리우드 영화에도 주역으로 등장했다.

영화 ‘앤트맨’에서는 몸을 ‘개미’ 크기로 줄일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의 활약은 전적으로 개미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에 의지한 것이다. 개미야말로 영화 속 능력자요, 인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영웅이다.

이런 개미가 공공의 적,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9월 28일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붉은불개미’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정부는 관계부처 대책팀을 꾸려, 전국 34곳의 항만과 내륙 컨테이너 기지에 개미유인용 덫 3,467개를 설치하고 일제 조사를 벌인 뒤 감만부두 외의 장소에서는 서식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인천, 평택항에 이어 올해 9월에는 대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10월에는 안산 물류창고에서 6,000여 마리에 달하는 붉은불개미 군집이 발견되면서 다시 문제가 되었다.
 
최초 발견 당시 붉은불개미는 ‘살인불개미’, ‘붉은독개미’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북미 대륙에서 한 해 평균 8만 명이 쏘이고 100여 명이 사망”한다는 홍보자료를 배포한 것이 발단이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이 지정한 세계 100대 악성 침입외래종이란 꼬리표도 붙었다. 방역에 성공하지 못하면 한반도가 개미 떼에 점령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작된 계기다.

붉은불개미(Red imported fire ant)는 크기가 2~6㎜ 정도로 고온 다습한 곳에 서식하며 군집을 이뤄 산다.

강수량이 연간 510㎜이상이고 성장에 필요한 최저 온도는 24도로 알려져 있다.

붉은불개미는 생존력이 강하고, 서식지가 파괴될 위험에 처하면 독침을 쏘며 공격한다.

개미 전문가들은 붉은불개미는 ‘독개미’, ‘살인개미’로 불릴 정도로 독성이 강하지 않다고 말한다.

< 개미제국의 발견 >의 저자이자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최재천 박사는 신문 칼럼을 통해 “미국의 경우 해마다 1,400만 명이 쏘이지만 가시적인 면역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전체의 1% 미만이고 병원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과민 반응(Anaphylaxis)을 보이는 사람은 0.01%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름도 국내 서식하는 불개미와 혼동되지 않도록 ‘붉은열마디개미’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붉은불개미의 독성은 미국 곤충학자 저스틴 슈미트(Justin O. Schmidt)가 개발한 독성 지수(Schmidt sting pain index)로 1.2 수준이다.

꿀벌의 독성이 2.0이니 붉은불개미에 ‘살인’이란 이름을 달기는 과하다.

게다가 개미 중에는 이 붉은불개미보다 독이 강한 종도 있다.
 
붉은수확개미는 슈미트 독성 지수 3.0, 총알개미는 무려 4.0에 이른다.

독은 독이니 물려도 마냥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가벼운 경우 모기에 물린 정도의 통증과 가려움증으로 끝나지만, 심하면 현기증과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불개미 집은 30~50㎝ 크기의 흙무덤 형태로 조성되는데 이를 밟거나 건드리면 개미떼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붉은불개미 독에는 알칼로이드 계열의 ‘솔레놉신(Solenopsin)’이 포함되어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배포한 붉은불개미 대책에 따르면 붉은붉개미의 독은 알칼로이드 계열의 솔레놉신으로 예방약 제조나 독에 대한 면역체계 형성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솔레놉신은 의학계에서 치료약 성분으로 주목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미국 에모리대학교 의과대학 잭 아비저(Jack Arbiser) 교수 연구진은 솔레놉신 화합물을 이용해 피부질환을 줄일 수 있는지 여부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진이 쥐를 대상으로 솔레놉신 화합물을 투여하는 실험을 한 결과 피부에 염증을 일으키는 세라마이드(Ceramide) 생성이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한다.

연구진은 솔레놉신 화합물이 난치성 피부질환인 건선 치료 등에 사용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붉은불개미는 수박, 딸기 등 단 열매를 좋아하는데, 식물의 줄기와 뿌리를 따라 땅을 파며 열매와 씨앗을 먹는다.

뿌리를 뚫고 즙액을 먹기 때문에 나무와 농작물에 입히는 피해가 크다.

잡식성이라 열매나 씨앗 등 식물류 외에 개구리 같은 작은 동물을 공격해 먹기도 한다.
 
작은 가축들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붉은불개미 유입을 차단하려는 대응은 독보다는 농림업에서 예상되는 피해와 생태계 교란 때문이다.

붉은불개미는 본래 남아메리카가 서식지인 개미 종류로, 1900년대 초에 미국에 상륙했으리라 추정된다.

1930년대 미국 남동부로 진출한 뒤 매년 200㎞씩 서식지를 넓혀 60년여 만에 서부로 퍼져나갔다.

2001년 호주, 뉴질랜드 최근 중국과 일본까지 급속도로 퍼지는 중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서식지를 개척한 아르헨티나 개미는 여러 여왕이 동시에 군림하는 거대 군락을 형성하는데, 붉은불개미 역시 군락을 형성하는 초기에 여러 여왕개미가 동맹을 통해 세를 불려간다.

독보다는 붉은불개미의 적응력이 문제다.

고온다습한 지역의 풀밭이 주 서식지지만, 나무줄기 속이나 목재, 폐지, 전자제품 속에서도 살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적응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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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불개미는 홍수가 닥쳐도 살아남는다.

일개미들이 서로의 몸을 연결해 띠를 이루어 거대한 뗏목을 만든다.

개미들은 뗏목에 유충을 들고 타고 올라갈 나무나 땅을 발견할 때까지 물 위를 떠다닌다.

일단 서식하게 되면 농촌, 도시 가릴 것 없이 붉은불개미가 살지 못할 곳은 없다.

붉은불개미의 학명은 Solenopsis invicta이다.

인빅타(Invicta)는 ‘지지 않는’, ‘무적의’라는 뜻으로 ‘정복당하지 않는 로마제국’을 부르는 라틴어 경구에 등장하는 말이다.

붉은불개미는 로마처럼 이 지구상에 광대한 제국을 짓고 있는 중일까?

지도 위에 표시된 붉은불개미 서식지역은 이미 로마보다 광대하다.

남아메리카대륙에서 출발해 북아메리카를 거쳐 호주를 거쳐 동남아시아와 중국, 일본까지 이들의 붉은 점이 찍혀 있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이 개미의 서식지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래종에 대한 경계와 공포는 당연하다.

하지만 한때 언론을 달궜던 황소개구리, 블루길, 꽃매미 등이 우리 생태계에서 다른 종을 멸종시키고 독주하진 못했다.

처음엔 승승장구할 것 같아도 곧 견제를 받게 된다.
 
매일 수십 개의 항만에 컨테이너 박스가 내려지고 비행기가 무시로 화물과 사람을 나르는 상황에서 붉은불개미가 이 땅에 영영 들어오지 못하리라 장담하긴 어렵다.

하지만 설사 서식하게 된다 해도 이 땅을 ‘정복’하는 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