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혁신문화, 그리고 위대한 대한민국
▲ 홍대순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한국의 혁신 생태계는 외형적으로 최고의 수준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이는 혁신 생태계의 본질적 특성이 존재하지 않고 구시대적인 조직문화에서 탈피하지 못한 한국의 현실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이 글에서는 한국 혁신문화 조성을 위해 국가, 기업 차원에서 개선하고 갖추어야 할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 기술과혁신 >에서는 중국,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의 혁신문화에 대한 논의를 과월호(5월, 8월, 9월호) 스페셜 이슈에서 다루었으며, 이번 11월호에서는 한국의 혁신문화에 대하여 다각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불과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아프리카의 ‘가나’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적은, 빈곤하고 희망이 없는 국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20~50 클럽(1인당 국민 소득 2만 달러, 인구 5천만 명을 넘는 국가)에 7번째로 가입하기도 했다.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하는 국가로 변모한 경이로운 기록을 가진 대한민국의 경험과 노하우는 많은 개발도상국의 롤모델이 되고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주력산업은 약화되고 있고, 국내 벤처/유니콘 기업은 찾기가 쉽지 않다.
경제성장률 또한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며, 성장엔진이 꺼져가는 매우 힘겨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반면 중국은 거침없는 혁신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특유의 혁신정신에 기반하여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혁신DNA가 끊임없이 넘쳐나는 미국 기업들의 포진은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대한민국의 혁신문화 이대로 좋은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한다면, “아니오”다.
4차 산업혁명 대응 및 미래경쟁력 차별화에 있어서, 혁신문화는 보유하면 좋은 것이 아닌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경영철학이 되어야 하고, 이는 기업의 운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부창출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 글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생태계 문화혁신’과 기업차원에서의 ‘조직문화혁신’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하며, 이를 통해 혁신문화로의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열대우림 생태계 문화로의 대전환, 그리고 역동성
동물원에 가면 동물들이 존재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혁신 생태계는 역동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마치 움직이지 않는 동물원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다.
생태계의 외형과 형식에 있어서는 전 세계 최고의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모든 것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벤처캐피탈, 인큐베이터, 엑셀러레이터, 대학/출연(연) TLO 조직, 창업지원제도, 중소기업지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갖추어 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 생태계는 왜 작동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에는 결정적으로 생태계의 ‘역동성’, ‘고유성’, ‘유기성’이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내수규모가 작다는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특징이 있으며, 심지어 엄청난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조차도 글로벌화를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창업은 글로벌화에 대한 간절함이 미흡한 편이다.
이러한 글로벌화는 이스라엘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촉진제가 되며, 전 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투어 이스라엘에 연구센터를 설립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게끔 한다.
미국 기업들은 어떤가? 미국의 유니콘 기업들은 "Zero to one"의 도전적인 자세로 미래 세상의 그림을 그리면서 창조적 혁신 바람을 일으킨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하면 마치 ‘흥행보증수표’가 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실리콘밸리의 90%의 죽어가는 기업들 속에서 10%가 채 안 되는 성공적인 혁신기업이 탄생되는 정글구조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철저한 실력과 시장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과감한 도전을 하고 실패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실리콘밸리의 힘이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이러한 역동성이 매우 미흡하다.
'실패=패자(Loser)'라는 인식이 강해서 과감한 도전에 있어 미흡할 뿐더러, 실패는 안 하더라도 위대한 기업이 되기보다는 그저 그런 기업이 되기 쉽다.
정부 R&D 과제 성공률은 높은 반면에 상용화·사업화가 낮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않다.
더군다나 도전적, 혁신적이지 않은 기업/창업가에 정부자금지원이 투입되면 자칫 좀비기업이 탄생될 수 있고, 이는 자본투자의 왜곡을 일으키게 된다.
오히려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에 투입되어야 하는 자금이 좀비기업에 투입되어 혁신유인을 하락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살아있는 기업의 모습이 아니다. 전 세계 포춘 500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산업군은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주력산업은 고령화된 지 오래다. 그만큼 역동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대학 역시 살아 움직이는 혁신의 산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대학 중 하나인 와이즈만 연구소의 경우 연간 기술사업화 성과가 미국 대학 200여 개 성과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로 대학의 기술사업화가 활성화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들의 나스닥 상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의 강점이자 특징이며, 생태계의 ‘유기성’ 속에서 혁신이 유발되고 있다.
나스닥 상장기업 수가 전 세계 4위이며,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보유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대학이 혁신의 산실로서 변모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혁신을 위한 생태계 구성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구글캠퍼스와 아산나눔재단에 따르면 글로벌 누적투자액 상위 100대 스타트업 중 57%가 한국에서 사업했을 경우 규제로 인해 사업추진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한 것을 보면, ‘규제’는 혁신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물임에 틀림없다.
규제 완화는 상대적으로 돈을 투자하지 않고 산업과 기업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특성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활용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혁신전략이 될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 혁신청의 경우 민간 부문이 절대 접근하지 못하는 고위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여 모험처럼 보이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혁신의 새순이 돋아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의 선전시는 40년 전만 해도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당 GDP가 25,000달러, 인구 1,200만 명, 평균연령 33세, 한 해에만 80만 개의 스타트업이 탄생하는 세계적인 창업도시/제조메카로 급부상하며 텐센트, 화웨이, BYD, DJI 등 세계적인 혁신기업이 탄생한 곳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성과에는 중국 정부의 과감한 개혁/개방정책들이 주효했다.
이처럼 기업, 정부, 대학 주체들이 역동적이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도전과 혁신 그리고 글로벌화와 세상의 변화를 위해 전력 질주할 때 혁신생태계가 숨을 쉬고 살아 꿈틀거리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이제 대한민국에도 역동적인 열대우림 구조와 더불어 고유의 특성과 유기적 연계를 지닌 생태계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늬와 형식만 잘 갖춘, 그러나 안타깝게도 살아 움직이지 않는 생태계가 될 것이다.
역동성, 고유성, 유기성의 속성을 지닌 열대우림 생태계 속에서 혁신의 씨앗이 하나하나 피어오를 수 있는 것이다.
조직혁신문화의 핵심! 미션과 자율성,
그리고 직장에서 뛰어노는 어른이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열심히 하는 인재가 주목을 받았고, 효율성/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개인의 개성과 자율보다는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식 조직문화가 성과 극대화에 기여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장점인 이러한 방식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물리적인 측면에서 기업의 사무실을 보면 일반적으로 팀장들이 팀원들을 용이하게 관리할 수 있는 구조의 책상배치를 보인다.
이미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구성원의 관리라는 보이지 않는 요소가 스며들어 있는 것 역시 기존 산업혁명 시대의 잔재물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늘 회의가 많은데, 회의 모습을 보면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A사의 회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면, 신입 직원이 어떤 아이디어를 고민 끝에 이야기했는데 선임급의 임원/부장이 “그건 내가 과장 때 해봤는데, 안 돼! 그다음 사람?”이라는 말로 일단락을 지었다고 한다.
심지어 회의가 끝난 뒤 최고경영진이 언급한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해를 위한 회의’를 만들어 임원들이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회의 방식대로 진행되면 그 누구도 의견을 제시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수없이 이루어지는 회의들은 사실상 창의성 말살 회의에 가깝다.
창의성과 수평문화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많은 기업들이 예술작품을 사옥 전면에 걸어둔다.
그뿐만 아니라 회의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꾼다거나 위계서열 형태의 직급을 변화시키고, 복장도 캐주얼하게 바꾸어 나가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투자가 빛을 보아야 하는데,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갖춘다고 한들 앞서 언급한 A사처럼 일한다면 혁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동안 너무나도 외형적인 것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이러한 외형적인 환경을 갖추는 데 많은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경영진들이 안타까움을 피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조직문화혁신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에 기인한다.
즉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외형적/형식적’ 측면이 아닌 ‘내용적/질적’인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내용적/질적 측면에서의 핵심은 기업의 ‘미션’과 ‘자율성’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미션’은 조직구성원의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등불과 같은 것이며, ‘자율성’은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정신적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일하는 근본적인 방식을 바꾸게 되며, 구글 등을 비롯한 혁신적인 기업들이 갖추고 있는 DNA이기도 하다.
‘미션’은 모든 기업이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냥 벽에 액자화되어 단어로만 존재하고 있기에 문제가 된다.
미션이 기업 및 조직구성원의 모든 활동과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도록 하고, 조직구성원에 마음속에 체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냥 지갑 속에 있는 종이미션이 되는 오류를 반복한다면 조직문화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특히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리더는 기업의 미션에 부합하는 행동과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리더가 에디슨의 불굴의 정신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초등학교 중퇴자인 에디슨을 본인 기업에서 채용하지 못하는 구조라면 이미 해당기업의 미션은 종이로 남게 되는 것이다.
기업의 미션은 기업의 존재 이유가 되며, 구성원들로 하여금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일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어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조직문화혁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 단추인데, 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심지어 기업의 미션은 그냥 형식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부터 교정해야 한다.
두 번째인 ‘자율성’ 부여는 기업을 창의적인 조직으로 이끌게 한다. 조직구성원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에 자율성이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일사불란한 조직문화가 아닌 개인의 개성과 아이디어가 존중될 때, 더욱 철저한 고민 속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 서비스가 탄생한다.
이러한 자율성은 인간의 내적동기를 일으켜 조직구성원의 모티베이션을 제고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일=놀이’ 형태로 전환되어 “직장에서 뛰어노는 어른이(?)”의 형태가 되는 모습을 지니게 된다.
이는 그간 조직구성원을 인적자원(Human Resource)으로 바라보고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방식에서,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사람(Human Being)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내포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혁신문화는 일하는 방식에서부터 일으켜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러한 본질적인 요소를 외면한 채 외형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혁신문화를 구축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혁신문화의 초점과 방향이 대대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비록 창고 같은 열악한 물리적 환경이라 해도, ‘미션’과 ‘자율성’이 체화되어 있는 조직은 혁신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도모하고 혁신문화를 구축해 가야 한다.
향후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본질적 경쟁력인 ‘혁신문화’의 아이콘이 되어 파괴적 혁신을 통한 지속성장을 이루고 유니콘/데카콘 기업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