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과학자들의 ‘무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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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류준영 기자(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10월 ‘노벨상 시즌’이 막을 내렸다. 노벨과학상(생리의학·화학·물리) 중심으로 수상 업적을 해부한다.
암 ‘가면’ 벗긴 美·日과학자 ‘완치 기대’ 높이다
비정상적인 세포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 신체 장기 등을 못쓰게 만드는 치명적인 병 ‘암(癌)’. 이로 인해 매년 수백 만 명이 생명을 잃는다.
암 치료법에는 수술, 방사선 등이 있다. 이 중 일부는 이미 노벨상을 받았다.
이를테면 전립선암의 경우 호르몬요법(허긴스, 1966년), 백혈병의 경우 골수이식요법(토머스, 1990년)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진행성 암’은 여전히 정복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새 치료법이 절실한 가운데 미국·일본 과학자의 오랜 연구가 그 힌트를 제시했다.
혼조 다스쿠(76) 일본 교토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와 제임스 P. 앨리슨(70) 미국 텍사스대 주립대 면역학과(앤더슨암센터) 교수가 면역항암제로 불리는 ‘면역관문억제제’를 제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이들은 면역세포가 암을 공격할 수 있는 ‘면역관문’을 발견하고, 그 원리로 새로운 암 치료법(면역관문억제제)를 제시했다. 이는 인체가 가진 면역세포를 지원해 암을 치료하는 차세대 항암제이다.
면역관문은 쉽게 말해 면역세포가 자신의 건강한 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표지자다.
암세포는 체내에서 면역관문을 임의로 조종, 마치 자신을 정상세포인 것처럼 꾸며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한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가 면역관문을 조종하지 못하도록 막아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정조준하도록 도와, 공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즉, 인체 면역계가 본래 갖고 있던 종양공격능력을 향상시켜 완전히 새로운 암치료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면역체계를 이용하므로 기존 화학·표적항암제가 일으키는 부작용이나 내성이 적은 편이다.
또한 면역항암제는 인류로 하여금 향후 암 치료가 진행 억제 수준을 넘어 완치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전 세계 면역항암제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20조 원이며, 오는 2022년 91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다만, 면역항암제는 고가인데다 환자마다 치료효과가 달라 이 한계를 극복할 후속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더 정교해진 ‘레이저 집게·메스’…
라식·라섹 등 시력교정 활용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까지 집어내는 ‘광학 집게’, 작은 크기의 물질이나 세포 등을 자유롭게 다루는 고성능·고출력 레이저 등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레이저를 생명과학도구로 이용한 ‘과학자 트리오’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미국 벨연구소 소속인 아서 애쉬킨(96)박사와 제라르 무루(74) 프랑스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 무루 교수와 ‘쳐프 펄스 증폭’(CPA)을 공동 발명한 도나 스트릭랜드(59·여) 캐나다 워털루대학 물리학 교수를 올해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
애쉬킨 박사는 입자와 원자, 바이러스 등 작은 크기의 물질을 손상없이 집는 이른바 ‘광학 집게’ 개념을 제안, 미세한 물질을 처리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애쉬킨 박사는 1960년대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구(球)를 이용한 실험에서, 입자들이 광선빔이 센(강도) 곳에 몰린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는 레이저 빔으로 물체를 잡고, 공중에 띄워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이어졌다. 광학 집게는 바이러스나 세포와 같은 작은 물체를 움켜쥐고 제어할 수 있는 레이저빔을 말한다.
애쉬킨 박사는 1987년 광학 집게로 박테리아를 손상 없이 옮기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 분야 한 전문가는 “광학집게로 감염된 혈액세포에서 건강한 혈액세포를 분리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스승과 제자 관계인 무루 교수와 스트릭랜드 교수는 고강도·초단광 펄스를 발생시키는 레이저를 연구, 물질의 기본 특성을 분자 수준까지 확인할 수 있는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레이저’ 개발에 토대가 된 ‘쳐프 펄스 증폭(CPA)’ 기술을 공동 개발했다.
CPA를 이용하면 한 번의 심장박동 과정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이 레이저는 손상을 덜 야기하므로 작은 세포나 물질을 손상을 주지 않고 원하는 데로 자르고 뚫을 수 있다.
이 특성덕에 라식·라섹·노안 등 안과적 질환 수술에 널리 쓰인다.
‘진화의 힘’에서 영감 얻다
‘진화의 힘’, 올해 노벨화학상을 대표한 키워드다. 올해 수상은 ‘유도진화’와 ‘파지 디스플레이’ 개념을 제시한 미국·영국 과학자가 차지했다.
이들의 성과를 요약하면 DNA(유전자)의 변화·선택을 이용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단백질을 개발한 것. ‘유도진화’를 통해 생성된 효소들은 바이오연료, 의약품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파지 디스플레이(Phage·세균을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진화한 항체는 자가면역질환과 싸우고, 어떤 경우에는 전이암도 치료한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프란시스 아놀드(62)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 교수와 조지 스미스(77) 미주리대 교수, 그레고리 윈터(67) 영국 케임브리지대 MRC 분자생물학연구소 박사를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프란시스 아놀드 교수는 1993년 효소(화학반응 촉매 구실하는 고분자 화합물)의 유도진화에 성공했다. 효소를 생성하는 세균의 변이를 유도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이후 세균을 검사·선별함으로써 효소의 진화를 가속화했다.
아놀드 교수는 유도진화 기술로 효소 형질을 새롭게 변형시켜 인간 몸 안에서 원하는 생리적 변화 및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음을 밝혔다.
그의 연구덕에 지금의 과학자들은 유도진화를 일상적으로 이용, 새로운 촉매를 개발하고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특정 효소는 바이오연료와 제약, 섬유 및 농업용 화학제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활용된다.
조지 스미스 교수와 그레고리 윈터 박사는 ‘파지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다양한 종류의 파지를 이용해 특정 표적(항원)을 인식하는 단백질(항체)의 일종인 펩타이드를 발굴하는 것이다.
인간에 없는 항체를 생산하는 데 주로 활용된다. 조지 교수가 이 기술을 지난 1985년 학계에 처음 소개했고, 그레고리 박사가 이 기술을 활용해 새 의약품을 생산했다.
학계 관계자는 “이 기술로 독소 중화 및 암 전이를 치료하는 항체를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매출 1위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휴미라’는 이 기술로 최초로 만든 아달리무맙을 주성분으로 제작한 것이다.
노벨과학상 수상자에게는 메달·증서와 상금 900만 크로나(약 11억 2,200만 원)가 주어진다.
시상식은 노벨상 설립자인 알프레트 노벨의 기일(12월 10일)에 맞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