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자기경영 심리학 - 결정의 순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자기경영 심리학은 리더십,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등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생각의 원리(심리)’를 다양한 실례들과 함께 다룹니다.

글_ 김경일 교수/센터장(아주대학교 심리학과,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


심리학자들은 지난 세기인 20세기를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이성과 논리의 반대 저편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감정과 정서를 현명한 판단의 근거로 생각지 않고 오히려 천덕꾸러기 취급한 시대라는 것이다.
 
실제로 20세기에는 거의 모든 문화의 언어에서 ‘감정’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오늘의 주제인 ‘결정’이 정서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이성과 논리에 의해 아무리 길고 치밀하게 생각을 진행해 나간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정서가 확인 도장을 찍어주어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정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좋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 결정 자체를 내리지 못하는 극심한 어려움을 매일같이 겪게 된다.


‘결정’은 감정에 기초,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

사고로 뇌의 측면부에 집중돼 있는 정서 영역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사고 후 건강을 회복하고 자신의 일상생활로 돌아갔을 때 의외의 영역에서 큰 불행을 경험하게 된다.

이성과 논리를 담당하고 있는 뇌 영역은 전반적으로 손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논리, 수학, 퍼즐이나 미로풀기 같은 문제들을 풀어내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엉뚱한 곳에서 나타난다. ‘결정’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비단 사업 계획의 선택이나 내년도 주요 목표 등 중요한 결정에만 이런 장애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이번 주말에는 누구를 만나 어떤 레저를 즐길까’와 같은 일상적인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도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결정과 정서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현대 뇌과학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명확하다. 결정을 내릴 때는 무언가 어떤 느낌, 즉 정서가 확인도장을 찍어주어야 한다.

즉 결정 직전에는 정서와 관련된 뇌 영역의 활성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적 느낌이 없을 때 우리는 망설이거나 주저하게 된다.
 
실제생활에서 우리 자신은 이런 망설임을 자주 경험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점심에 짜장면과 칼국수 중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이 고민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결국, ‘짜장면을 먹고 난 후에 내가 더 좋은 (정서)상태일까? 아니면 칼국수를 먹고 난 뒤에 더 좋은 상태일까?’에 대한 나의 정신적 사전예측 즉, 시뮬레이션(사전 예측해 봄) 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미래의 정서를 예측해 보면서 그중의 가장 좋은 정서 상태를 예측하게 해주는 대상을 선택한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을 누가 어려워하겠는가? 당연히 감수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많은 뛰어난 리더들이 이른 아침 혹은 늦은 저녁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꺼이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른바 결정을 위한 직관 그리고 그 직관을 잠에서 깨워주는 감수성을 위해서다.

실제로 필자가 만나본 세상의 수많은 통찰력 있는 CEO와 리더들 중 감성과 연결된 직관체계가 잘 발달되지 않은 경우를 거의 본적이 없다. 감수성은 결정을 위한 정신적 기초체력이다.


오늘의 체력도 중요하다

좋은 결정을 위해 평소에 잘 길러 놓아야 하는 기초체력이 감수성이라면, 결정의 ‘직전’에 필요한 것도 있다.

아무리 기초체력이 좋은 운동선수라 하더라도 경기 직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면 자기의 평소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결정 직전에도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스포츠와 동일하다. 좋은 체력적 상태다.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무수히 연구를 반복해 봐도 결론은 같다.

신체적으로 지쳐 있는 상황에서는 정신적인 활동인 ‘결정’은 반드시 난항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결정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굉장한 양의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소모시키는 정신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실험의 예를 들어보자. 다양한 아이템들의 쌍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준다.
 
A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연이어 제시되는 각 쌍의 물건들이 지닌 특징을 ‘비교 및 분석’하는 작업을 1시간 동안 시킨다.
 
그룹 B에게는 각 쌍에서 둘 중 어느 물건을 선물로 사용하면 좋을지를 ‘결정’ 하는 비교적 단순한 일을 1시간 동안 하게끔 한다.
 
해야 하는 일의 양에 있어서는 당연히 그룹 A가 더 많은 일을 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룹 B에 속한 사람들이 1시간 후에 더 많이 지쳐 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게다가 모든 일이 끝난 후 온수가 담겨 있는 통에 손을 담그게 하면 그룹 B의 사람들이 더 뜨겁다고 손을 일찍 빼는 현상조차 관찰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인간은 지쳐 있을수록 고통에 민감해지면서 짜증도 그만큼 더해지기 때문이다.

사소한 결정이라도 연이어 내린 사람들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지쳐 있는 상태다. 그러니 역으로 생각하면 분명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에서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플로리다 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 교수는 자아고갈(Ego depletion)이라 부른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한 종류의 일에 에너지를 쓰게 되면 이후의 ‘무관한’ 일을 제대로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부하 직원에게 언성을 높여 질책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낸 상사, 반대로 상사의 강한 질책을 이 악물고 버텨낸 부하직원 양쪽 모두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며칠 전부터 자신이 금연 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담배를 입에 물게 된다.

이제 더 이상 금연의 결정을 지속시킬 의지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결정을 내리거나 이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급속히 하락하게 된다.

종합해 보면 결정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연산과 계산의 과정이 아니다. 물론 그런 과정을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결정은 이러한 심사숙고를 마친 후에 최종적으로 내리는 분명히 구분되는 마무리 과정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숙성된 감수성과 지금 이 순간의 단기적인 육체 및 정신적 에너지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심리적 결제도장’이 필요하다.

이 둘 중 하나만 크게 무너져도 우리가 그렇게도 자주 입에 담는 ‘결정장애’와 ‘결정오류’가 늘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희노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출하며, 경험하는 것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자.
 
그리고 중요한 경기를 준비하는 운동선수와 같은 마음으로 중요한 결정의 순간을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