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무비 & 사이언스 - 세상의 끝을 향해

무비 & 사이언스는 영화 속의 상상력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진 과학기술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사진 참조_ 네이버 영화


"우주, 최후의 개척지. 이것은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항해이다. 5년간 이들의 임무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생명과 문명을 발견하고,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대담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 TV 시리즈 < 스타트렉 >의 오프닝 중 -



공간의 자유를 허락한 기술
 

46.png


인류가 달에 발을 들여놓기 1년 전인 1968년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SF영화 한 편이 공개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대본을 작성해 만든 영화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 >다.

이 영화는 개봉한 지 50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미장센을 보여준다.

특히 원시인이 동물의 뼈를 하늘로 던지자 우주선으로 변하는 오프닝 장면은 한낱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던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진보하게 된다는 것을 극적으로 잘 표현한 장면으로 손꼽힌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20만 년 전 등장한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급급한 존재였다.

그들이 추위와 포식자를 피해 다니지 않고 자유롭게 영역을 확대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기술의 발달은 문명을 일으킬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공간의 자유를 주었다.
 
꾸준히 새로운 기술을 터득한 인류는 그때마다 새로운 공간을 탐험할 기회를 얻었다.

도구를 가진 인간은 들이나 산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강을 만나면 뗏목과 배를 만들어 건넜다. 해안가에 정착한 인류는 돛단배를 만들어 연안을 자유롭게 누비고 다녔다.

또한 돛과 노를 함께 사용하는 갤리(Galley)선을 만든 인간들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서로 경쟁하게 되었다.

갤리선은 해상전투를 할 수 있는 강력한 배였지만 그렇다고 먼 바다까지 나갈 수는 없었다.
 
노를 젓는 선원이 많으면 그만큼 식량과 물이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양 항해를 하려면 바람의 힘을 이용해 항해를 할 수 있는 커다란 범선을 만들어야 했다.

범선 제작을 위한 새로운 기술이 필요함을 깨달은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는 과학자와 기술자를 모아 캐러벨(Caravel)을 만든다.

캐러벨의 등장으로 신항로 시대가 열리게 되면서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캐러벨은 단순히 크게 만든 돛단배가 아니다.
 
거대한 사각 돛으로 더 많은 바람을 받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고, 삼각돛은 다양한 방향의 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된 배였다.


바다 끝으로 이끈 기술
 

47.png


영화 <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Pirates Of The Cari-bbean: At World’s End, 2007) >에는 세상의 끝에 커다란 폭포가 나온다.

단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신항로 시대 이전의 선원들은 진짜로 바다 끝으로 가면 떨어져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다고 믿었다.

영화에서 데비존스의 저승에서 잭 일행이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나침반과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범선과 나침반, 지도만으로는 대양 항해가 어렵다.

지도와 나침반만으로는 배의 방향만 알 수 있을 뿐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배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위도와 경도를 알아야 했다. 위도는 태양이나 별의 고도를 측정하면 알 수 있다는 사실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영화 <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Master And Commander: The Far Side Of The World, 2003) >에서도 전투를 하러 가는 중에 수시로 육분의(선박이 대양을 항해할 때 태양·달·별의 고도를 측정하여 현재 위치를 구하는 데 사용한 기기)(Sextant)를 사용하여 알아냈다.

이처럼 위도는 망원경이 부착된 육분의를 통해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문제는 경도였다. 경도를 알기 위해서는 배의 속력과 시간을 알아야 했다.

속력은 로그(Log)라고 불리는 나무 조각에 매듭이 있는 밧줄에 묶어 측정했다. 로그를 바다에 던진 후 30초 동안 매듭이 풀린 수를 헤아려 배의 속력을 알아냈다.

배의 속력을 나타내는 단위가 노트(knot, kt 또는 kn을 사용)인 이유는 바로 매듭의 수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크로노미터(Chronometer)라고 불리는 해상시계를 사용했다. 육지에서는 갈릴레이가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한 이후 진자시계가 흔히 사용되었다.
 
하지만 흔들리는 배에서는 진자시계의 정확도가 떨어져 태엽을 이용한 기계시계가 이용되었다.

항해술의 발달로 범선은 대양을 누비고 다녔지만 태풍보다 선원들을 더 두렵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바람이 불지 않는 것이었다.

범선은 바람이 없으면 꼼짝없이 바다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이 문제는 해결되었고, 인간은 자연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롭게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내연기관의 발달로 인간은 더 이상 육지나 바다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엔진과 로켓을 이용해 하늘을 날고, 지구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달을 정복했고, 일론 머스크와 같은 민간업자들은 화성에 도시건설계획도 발표했다.

영화 < 마션(The Martian, 2015) >이 더 이상 상상 속의 장면이 아닌 세상이 온 것이다.


세상의 끝을 향해

우리에게 남은 꿈은 영화 <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 >처럼 항성 간 우주비행뿐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또 한 번의 거대한 기술적 진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로켓으로 계속 추진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열화학추진 로켓은 갤리선과 비슷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멀리가기 위해 로켓을 크게 만들면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하고, 이는 로켓의 크기를 더욱 증가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서 성간 비행에서는 < 스타트렉(Star Trek) >에 나오는 워프 드라이브(Warp drive)와 같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우주선 추진 방법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워프 드라이브가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공상 같이 느껴지겠지만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멕시코의 물리학자 알큐비에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위배하지 않으면서도 초광속 비행이 가능한 워프 드라이브를 제안했다.

알큐비에르가 제안한 드라이브의 원리에 따르면 우주선의 앞쪽 공간은 수축시키고 뒤쪽공간을 팽창시키면 그 사이에 있는 우주선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이브를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음의 질량(에너지)을 가진 '특이한 물질(Exotic matter)'만 있으면 된다.

특이한 물질은 우주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을 이용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워프 드라이브를 곧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암흑물질은 그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아무도 그 정체를 모른다. 발견된 적도 없는 암흑물질을 이용해야 하므로 워프드라이브는 아직까지 영화 속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태양계 내의 우주여행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특히 흥미로운 우주선은 '라이트 세일(Light Sail)'이라는 이름의 '태양광 돛(Solar Sail)'을 단 우주범선이다.

범선이 바람을 이용하듯 솔라 세일로 우주 공간에서 태양 빛의 복사압을 이용해 항해하는 우주선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캡틴 하록의 해적선과 같은 모양은 아니겠지만 돛을 단 우주선으로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